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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연금제도...500년 전 사회안전망, 휼양전

신규섭 금융·연금 CP

2025-12-17 08:54:26

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박사).

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박사).

[김성일 이음연구소장] 현대 사회에서 ‘연금’은 안정적인 노후 보장과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핵심적인 사회 안전망으로 여겨진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 다양한 형태의 연금 제도는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둥 역할을 한다. 많은 이들이 조선 시대를 엄격한 신분제 사회로만 기억하지만, 그 이면에는 백성의 삶을 보살피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선진적인 복지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휼양전(恤養田)’은 오늘날의 유족연금 또는 공공부조와 매우 흡사한 형태를 띠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휼양전의 정의와 운영 방식

휼양전은 말 그대로 ‘가엾은 이들을 구휼하고 부양하기 위한 토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제도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관리 유족을 위한 유족연금으로서의 성격이다. 조선 초기의 토지제도인 과전법(科田法) 체제하에서, 국가에 봉사한 관리가 사망하면 그에게 지급되었던 과전(科田)은 원칙적으로 국가에 반납되었다. 하지만 만약 관리와 그의 부인이 모두 사망하여 어린 자녀들만 남게 될 경우, 이들의 생계는 막막해질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휼양전 제도를 마련했다. 즉, 부모를 모두 잃은 관리의 어린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받았던 토지의 수조권(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을 일정 기간 상속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는 국가에 헌신한 관리에 대한 예우인 동시에, 남겨진 유족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여 사회적 불안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국가의 책임 의식이 반영된 제도였다. 자녀가 성장하여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되면 토지는 다시 국가로 환수되었으므로, 이는 일시적이면서도 목적이 분명한 공적 부조의 성격을 지녔다.

둘째는 일반 백성 중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부조로서의 성격이다. 휼양전은 단순히 관리 유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쟁, 전염병, 기근 등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 장애로 인해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사람, 의지할 곳 없는 과부 등 사회의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해서도 운영되었다. 국가는 특정 농지를 휼양전으로 지정하고, 그 토지에서 나오는 소출이나 수익을 이들의 생활비로 지급했다. 이는 국가가 직접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 기반인 ‘토지’를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복지 재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지방의 관아는 해당 지역의 휼양전을 관리하며 수혜 대상자를 선정하고, 정기적으로 곡식이나 옷감 등을 지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중앙정부의 복지 이념이 지방 행정의 실무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음을 보여준다.

휼양전과 현대 연금제도의 유사성

휼양전은 그 운영 방식과 목적에서 현대의 연금제도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생활 보장의 목적이다. 휼양전은 갑작스러운 부모의 사망이나 장애, 재난 등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해진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였다. 이는 오늘날 연금제도가 노령, 장애, 사망 등으로 인한 소득 단절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활을 보호하고 소득 안정을 꾀하는 근본적인 목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둘째, 지속적인 지원의 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휼양전은 일회성 구호 물품 지급에 그치지 않았다. 토지라는 생산 수단에서 나오는 수익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수혜 대상자가 자립하거나 사망하기 전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했다. 이는 매월 정기적으로 급여가 지급되는 현대의 연금과 같이, 수급자의 장기적인 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사회적 보호 기능을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셋째, 공공 자원의 활용이라는 측면이다. 휼양전은 개인이 아닌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토지를 활용하여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이는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나 조세로 조성된 기금을 국가나 공공기관이 관리하고 운용하여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현대 연금제도의 구조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즉, 사적인 자선이 아닌 공적인 책임 아래 자원을 배분하고 사회 통합을 꾀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현대적 의의와 한계

물론 휼양전은 현대 연금제도와 명백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현대 연금은 개인이 기여한 만큼 돌려받는 ‘보험의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반면, 휼양전은 국가의 시혜적 성격이 강한 ‘구휼 제도’에 더 가깝다. 또한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경 사회의 제도였기에, 지급 형태가 현금이 아닌 현물(곡식 등) 중심이었고, 적용 범위나 규모 면에서 오늘날의 보편적 연금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신분제 사회의 한계 속에서 모든 백성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휼양전 제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이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단순히 백성 위에 군림하는 통치 기구가 아니라, 백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책임지려는 복지 국가의 이념을 일정 부분 실현하려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이다. 특히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토지를 활용해 지속 가능한 복지 재원을 마련하고, 사회적 위험에 처한 약자들을 체계적으로 보호하려 했다는 점은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라 할 수 있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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