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5.12.16(화)

여천NCC 구조조정 놓고 한화-DL 또 충돌

DL, 1·2공장폐쇄 일방 발표 … 한화 “밸류체인 붕괴” 반발

안재후 CP

2025-12-16 10:31:37

사진=여천 NCC

사진=여천 NCC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구조적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가운데, 아시아 최대 나프타분해설비(NCC) 업체인 여천NCC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1999년 정부 주도 빅딜의 성공 신화로 불렸던 여천NCC는 이제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라는 두 거대 주주 간의 정면충돌 속에서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자율 구조조정 데드라인인 12월 말까지 불과 보름이 남은 상황에서 여천NCC를 둘러싼 공방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DL케미칼 '벼랑 끝 전술'... 90만톤 폐쇄 카드 꺼내다

갈등의 중심에는 공장 폐쇄 규모를 놓고 벌어지는 주주 간의 첨예한 이견이 있다. DL케미칼은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여천NCC의 수익성을 회복하려면 연 90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용 나프타분해설비 1기를 폐쇄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이는 사실상 여수 1공장(90만톤) 또는 2공장(91만5000톤) 중 하나를 닫자는 의미로, 기존에 논의되던 3공장(47만톤) 폐쇄 계획의 두 배에 이르는 규모다.

DL케미칼의 주장은 수치에 기반하고 있다. 지난해 1503억원이던 여천NCC의 영업적자 규모는 올 1~3분기 1989억원으로 확대됐다. 지난달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도 불구하고 4분기 실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DL 측의 판단이다. DL케미칼은 중국발 공급 과잉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에틸렌 스프레드 회복이 2027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장 전망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달 에틸렌 가격은 톤당 740달러로 연초(880달러) 대비 17% 하락했고, 프로필렌 가격도 톤당 1000달러에서 880달러로 15% 떨어졌다. 중국 업체들이 물량을 쏟아내면서 한때 연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내던 여천NCC의 실적이 급락한 것이다. DL케미칼의 핵심 주장은 '찔끔한 감산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식의 대증요법을 벗어나 확실한 고정비 절감이 필수적이라는 강경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한화솔루션, DL돌발행동에 강한 불쾌감

한화솔루션은 DL케미칼의 '돌발 행동'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공동 대주주와의 합의 없이 90만톤 감축 필요성을 일방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DL케미칼의 주장은 일방적이며 의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의 불만은 더 깊다. 90만톤 생산 규모를 갖춘 1·2공장이 폐쇄되면 주로 이곳에서 나오는 에틸렌을 원료로 사용하는 한화의 피해가 DL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여천NCC에서 생산하는 에틸렌 228만5000톤 중 한화가 140만톤(약 61%)을, DL케미칼이 73만5000톤을 사용한다. 지분은 5대 5이지만 제품 활용 비율은 2대 1인 셈이다.

한화솔루션은 1·2공장에서 공급받는 에틸렌으로 에틸렌디클로라이드(EDC), 염화비닐모노머(VCM), 폴리염화비닐(PVC) 등 주력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직접 연결된 이 공장들이 멈추면 한화의 전체 밸류체인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한화솔루션은 "1·2공장을 폐쇄할 실행 가능성은 낮다"며 "공급망이 산단 전체에 촘촘히 얽혀 있고 정부 협의도 필요해 복잡하다"고 반박했다.

비대칭적 의존도...누가 핏줄을 쥔 자인가
여천NCC를 둘러싼 두 주주의 입장이 이렇게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에틸렌 활용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겉으로는 50대 50의 지분을 가진 대등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비대칭적 구조다.

한화솔루션은 여천NCC가 생산하는 에틸렌의 약 61%를 확보하며 극도로 의존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1·2공장에서 생산되는 에틸렌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한화솔루션의 여수 공장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서 공급받은 에틸렌은 PVC와 VCM 같은 한화의 주력 제품을 만드는 핵심 원료다. 만약 이 공장이 폐쇄된다면 한화의 원료 수급은 차질을 빚고 전체 산업 밸류체인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면 DL케미칼의 에틸렌 사용량은 약 74만톤에 불과하며 여천NCC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히 낮다. 게다가 DL케미칼은 최근 범용 석유화학 제품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부족한 물량은 외부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으며, 현재처럼 에틸렌 가격이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DL의 1·2공장 폐쇄 카드가 명분상으로는 수익성 개선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아킬레스건을 잡힌 한화를 압박하는 수단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향후 진행될 수 있는 회사 분할 협상이나 원가 보전 비율 산정, 추가적인 자금 분담 논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는 해석이다.

황금 분할의 저주...50대50 구조의 함정

1999년 정부 주도 빅딜은 기업 구조 조정의 성공 사례로 칭송 받았다. 당시 한화석유화학(현 한화솔루션)과 대림산업(현 DL케미칼)은 서로의 NCC 부문을 통합하며 기계적 균형을 맞췄고, 이는 지난 20여 년간 '황금 분할'로 불리며 성공적인 합작 모델로 평가받았다. 호황기에는 이 구조가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투명한 경영을 가능하게 했고, 막대한 배당금을 양사에 안겨주었다.

그러나 차이나 리스크가 닥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중국의 설비 증설로 인한 구조적 불황이 심화되자 이 황금 비율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서로에게 손실을 떠넘기는 교착 상태(Deadlock)의 원흉이 되었다. 51% 이상의 지분을 가진 절대 주주가 없어서 어느 한쪽도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양사의 경영 철학 차이도 갈등을 부추겼다. 한화는 불황일수록 투자를 지속해 사이클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공격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해온 반면, DL은 철저한 현금 흐름 중심의 보수적인 경영을 선호하며 추가적인 자금 투입을 극도로 꺼려왔다. 이러한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가 현재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7월 유상증자 논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갈등이 노출된 바 있다. 당시 DL 측이 지원 난색을 표하며 여천NCC가 부도 위기까지 몰렸으나, 한화의 설득과 여론의 압박 속에 가까스로 자금을 수혈했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구조조정 대상을 놓고 다시금 정면충돌하면서 양사 간의 신뢰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금이 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수 산단의 한 관계자는 "파트너십은 이미 깨졌고, 남은 것은 누가 더 적은 손해를 보고 헤어지느냐 하는 계산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전했다.

정부의 시간 제한...세 가지 시나리오 대두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까지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에 1차 구조개편 초안 제출을 강력하게 요구한 상태다. 정부가 바라는 시나리오는 자율적인 대규모 설비 감축과 사업 재편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얽힌 기업들이 단기간 내에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마감 시한에 쫓겨 3공장 폐쇄와 추가적인 가동률 조정을 섞은 미봉책을 제출하며 급한 불을 끄는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의 합의 수준인 50만톤 규모 3공장 폐쇄에 머무르는 방식이다.

둘째는 합의에 실패해 빈손으로 정부에 보고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 경우 금융권의 여신 회수 압박이 거세지며 워크아웃이나 법정 관리까지 거론될 수 있다. 여천NCC가 내년에 315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만큼 금융권의 요구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시나리오는 조기 분할(Split)이다. 더 이상 동행이 불가능함을 인정한 양사가 여천NCC가 보유한 4개의 공장을 물리적으로 나눠 각자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미 7월의 유상증자 논의에서 보여준 것처럼, 대주주 간의 신뢰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손상된 만큼 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업계관계자는 "충남 대산 NCC의 통폐합이 확정된 데 이어 여천 NCC까지 감축 국면에 들어서면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 '2호 사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여천 NCC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기준을 만드는 사례"라며 "3공장 폐쇄에서 멈출지 추가 감축으로 이어질지에 따라 정부 정책의 신뢰도와 향후 지원 기준도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름 남은 운명의 선택

보름 남은 2025년 말까지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내놓을 선택은 단순히 여천NCC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을 넘어 한국 석유화학산업 전체의 구조조정 방향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요구대로 에틸렌 생산량을 줄인다는 큰 방향에는 이미 합의했지만 세부안을 놓고 대주주 간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권이 만기연장을 거부하는 식으로 압박할 수 있는 만큼 협상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여천NCC의 대주주들이 어느 정도 책임을 분담할지, 그리고 정부가 요구하는 '실질 감축'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가 이 결정적인 시기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6년간 유지해온 동거 체제가 어떤 형태의 결말을 맞을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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