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과 시장의 주주환원 요구가 결합되면서 미래에셋생명,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등 주요 보험사들이 연이어 대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신규로 취득하는 자사주는 1년 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법 시행 후 1년 6개월 내 소각하는 것이 의무화된 가운데, 현재 추진 중인 소각은 기존 보유분이므로 자본 건전성의 직접적 악화를 초래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향후 주주환원 압력이 심화되면서 신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반복될 경우 자본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6일 정부 및 국회에 따르면, 상법 3차 개정안은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달 6일 공포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했다. 개정안은 자기주식 소각을 원칙으로 하며, 신규 취득분은 취득일로부터 1년 내, 기존 보유분은 시행일부터 1년 6개월 내 소각하도록 강제했다. 시행 전 회사가 취득·보유한 기존 자기주식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소각의무를 부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기업의 자사주를 통한 경영권 방어와 우호 지분 형성 행위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자사주를 우호 의결권 확보와 지배력 확대에 활용해 온 기업들의 관행에 제동을 걸고 주주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뜻이 구체화된 것이다. 개정안은 상장기업뿐 아니라 비상장법인도 예외 없이 적용되며, 주주총회 승인 없이 1년 안에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을 경우 이사 개인에게 5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부과된다.
보험회사는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 따라 보험사가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15% 이상 보유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는 보험업계에서 자사주 소각이 단순한 주주환원을 넘어 복잡한 지배구조 재편까지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보험업계 현황: 높은 자사주 비중과 대규모 소각 물결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장 보험사들은 다른 업종 대비 자사주 비중이 높은 편이다. 미래에셋생명의 자사주 보유 비중은 26.3%로 가장 높고, DB손해보험(15.2%), 한화생명(13.5%), 삼성화재(13.4%), 현대해상(12.3%) 등도 10%를 웃돌고 있다. 이처럼 높은 자사주 비중으로 인해 상법 개정 이후 보험사들의 소각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미래에셋생명 관계자는 "이번 자사주 소각은 주주가치 희석에 대한 시장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안정적인 자본 건전성을 기반으로 주주 친화적인 경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주요 보험사 자사주 소각 전략: 규모와 방식의 차이
자사주 소각 움직임이 보험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각 사의 대응 전략은 자본 여력과 지배구조에 따라 차별화되는 모양새다.
DB손해보험은 두 차례에 걸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DB손해보험은 지난해 12월 1천751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추가 소각을 결정했다. 이번 소각 대상은 기취득 자사주 388만3천651주로, 이사회 결의일 전일 종가 기준 약 7천981억원 규모이며, 발행주식 총수의 약 5.6%에 해당한다.
현대해상은 더욱 신중하면서도 단계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현대해상은 보유 중인 자사주 12.29% 중 3%를 임직원 보상 목적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9.29%는 전량 소각할 예정이며, 해당 계획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진행된다. 현대해상은 자본 여력 관리를 고려한 시간차적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오너 지배구조 보험사의 전략적 선택
오너 일가가 존재하는 보험사들의 대응은 다소 복잡한 편이다. 삼성화재는 이미 대규모 자사주 소각을 단행하면서 지배구조 변화를 겪었으며, 현대해상은 단계적 소각으로 주주환원에 나섰다. 반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구체적인 자사주 소각 계획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삼성화재는 밸류업 일환으로 2025년 4월 5천126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소각했다. 이로써 자사주 비중이 15.9%에서 13.4%로 줄었고 2028년까지 5%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소각하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의 지분율이 기존 14.98%에서 15% 이상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에 보험업법상 15% 초과 보유 제한 규정으로 인해 삼성화재는 삼성생명의 자회사로 편입되기도 했다.
한화생명과 삼성생명의 경우 자사주 소각 계획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한화생명은 13.5%라는 높은 자사주 비중에도 불구하고 다소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사주 소각으로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면 최대주주인 한화그룹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추가적인 규제 리스크나 시장의 부정적 평가를 피하기 위해 대응 시기 결정에 신중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 역시 자사주 소각 계획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정몽윤 회장이 약 22%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인 현대해상은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비중이 12.3%에 달한다. 자사주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만큼, 의결권이 있는 주식 기준으로는 정 회장의 영향력이 실제 지분율보다 더욱 크게 작용해 왔다. 자사주가 사실상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에 자사주 소각 이후 현대해상은 지배구조 관리 전략을 어떻게 재정비할 것인지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주주환원과 자본 건전성의 양립: 소각 방식에 따른 킥스비율 이중 효과
보험사별로 자사주 소각 관련해 상이한 대응을 펼치는 가운데, 보험업계는 자사주 소각이 자본 건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 확대가 주주가치 제고에는 긍정적 신호이지만, 보험사 자본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 방식에 따라 자본건전성 지표인 킥스비율(K-ICS)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킥스비율을 130%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2027년부터는 요구자본 대비 기본자본 비율을 50% 이상 유지하는 규제도 도입할 예정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사주 소각 방식에 따라 킥스 비율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하는 경우와 신규로 취득한 후 소각하는 경우는 재무 영향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발표한 자사주 소각은 이미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정리하는 것으로 이 경우 추가적인 현금 유출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킥스 비율에 직접적인 악화를 초래하지 않는다. 자사주를 새로 사들이는 시점에 현금이 외부로 나가면서 가용자본이 줄어드는 영향은 이미 그 시점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에셋생명, DB손해보험, 현대해상이 발표한 자사주 소각은 건전성을 추가로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우려할 부분도 제기된다. 규제 당국이 자사주 신규 취득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향후 보험사들이 주주환원을 명목으로 새로운 자사주를 대량 취득했다가 소각하는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취득 시점의 현금 유출로 인한 자본 악화와 소각 시점의 회계 처리가 분리되면서, 실제로는 자본이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킥스비율이 낮은 보험사들도 현재와 같은 기존 자사주 소각은 건전성에 직접적 타격을 주지 않지만, 향후 배당 확대나 신규 자사주 취득 등을 추진할 경우에는 자본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유 자사주 효율적 활용이 바람직
상법 개정으로 인한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보험업계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킥스비율이 높은 미래에셋생명은 충분한 자본 여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소각을 추진하는 반면, 지급여력비율이 낮은 일부 회사들은 신중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보험사별 자본 여건 차이가 주주환원 전략에도 차이를 가져오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기존 보유 자사주 소각은 건전성에 직접적 악화를 초래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향후 신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반복될 경우 자본 악화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신규 자사주 매입보다는 기존 보유 자사주의 효율적 활용과 배당 정책 합리화가 더욱 현명한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주주환원과 자본 건전성, 소비자 보호라는 세 가지 경영목표의 균형을 찾는 것이 보험사들의 주요과제로 지적하고 있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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