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재보험협회는 김기환 전 KB손해보험 대표를, 여신금융협회는 이동철 전 KB국민카드 대표를 각각 수장으로 맞아들이며 조직 혁신과 회원사 이익 대변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보험개발원장 공모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출신 관료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지며 사뭇 다른 기류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하마평에 오른 인물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는 "참신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냉소적 반응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올해 4월 대폭 강화된 공직자윤리위원회(공윤위) 취업 심사 기준까지 막판 복병으로 부상하면서, 과연 누가 공윤위의 칼날을 비켜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혁신 과제 많은데 올드보이로 채워진 후보군
원장후보추천위원회(원추위)는 조대규 교보생명 대표, 박경원 iM라이프 대표, 이문화 삼성화재 대표, 배성완 하나손해보험 대표 등 사원사 대표 4명과 공익위원 4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됐으며, 서류·면접 심사를 거쳐 이르면 오는 8월 중 단수 후보를 선정해 사원총회에 올릴 예정이다.
보험개발원의 특수성상 관료 출신 선호가 나오는 배경은 이해할 만하다는 시각도 있다. 보험개발원은 단순 이익단체가 아니라 요율 산출·통계 관리는 물론 정부가 올해 최우선 과제로 드라이브를 거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플랫폼 '실손24' 운영까지 전담하는 핵심 인프라 기관인 만큼, 당국과의 조율 능력을 갖춘 인선이 유리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원자 대부분이 이미 수년 전 당국을 떠났거나 유관 기관장을 한 차례씩 거친 이른바 '올드보이'들이라는 점에서 업계 내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 전산화나 AI 기반 요율 산출 등 보험개발원이 처리해야 할 혁신적인 과제가 많은데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은 과거지향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며 “시장의 변화를 이끌 참신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 인선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도 "금감원이나 금융위에서 한 자리하고 나면 두 번 세 번 유관 기관을 돌아가며 거치는 게 관례처럼 굳어진 것 같다"며 "수년 전 퇴직한 인물들이 이름을 올리고 원서를 내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작 관료 선호의 핵심 근거인 실손24 현장 안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금융위원회·보험개발원 집계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 기준 전체 요양기관 10만4천925곳 가운데 실손24 연계를 완료한 기관은 2만9천849곳으로 연계율이 28.4%에 그쳤다.
2단계 의원·약국 연계율은 26.2%로 더욱 저조하고, 전체 실손의료보험 계약(3천915만건) 대비 실제 청구 건수(180만건)는 약 4.6%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하반기까지 연계율 80~90% 달성을 범정부 목표로 제시했지만, 대형 EMR(전자의무기록) 업체의 참여 거부와 기술적 진입장벽이 확산 속도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개발원을 앞세워 기술 지원을 직접 떠맡고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미참여 EMR 업체 점검에까지 나서는 등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정책 과제가 관료 선호의 명분이 되고 있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인물 풀 고착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나온다. 역대 보험개발원장 13명 가운데 11명이 관 또는 금감원 출신이었다는 통계가 이 같은 시각에 힘을 싣는다. 새로운 과제 앞에서도 인물 풀은 바뀌지 않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 '정책통' vs 금감원 '감독통' vs 민간…구도만 있고 신선함은 없다
이런 배경 속에서 후보군은 금융위 정책통, 금감원 감독통, 민간 전문가의 3파전으로 나뉘지만 어느 쪽에도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분위기다.
금융위 라인의 유재훈 전 국장(행시 39회, 1968년생)은 기업구조개선과장·자본시장조사단장·기획조정관·금융소비자국장 등을 역임하며 거시 정책 기획력을 쌓은 인물로 거론된다. 실손보험 제도 개편 관련 업무 경험도 강점으로 꼽히지만, 신현준 전 신용정보원장과 마찬가지로 업계에서는 이미 익숙한 얼굴이라는 반응이 많다.
금감원 라인의 박상욱·설인배 전 부원장보는 보험 검사·감독 부서를 두루 거친 이력으로 전통적인 '보험개발원장 코스'를 걷는 인물들로 통한다. 박 전 부원장보는 손해보험검사국 검사기획팀장·생명보험검사국장을, 설 전 부원장보는 보험영업검사실장·금융소비자보호총괄국장을 역임했다. 현 허창언 원장도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이어서 정책 연속성 면에서 장점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동시에 과거 감독 관행에 익숙한 '과거형 인물'이라는 지적도 따라붙는다.
민간 카드로 꼽히는 안철경 전 보험연구원장은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 등을 거쳐 2019년 보험연구원장에 취임해 2022년 기관 사상 최초로 연임에 성공하며 업계 소통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다만 결국 기존 보험권 인맥 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안적 성격이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공존한다.
'퇴직 3년 프리패스' 올드보이…유재훈에 공윤위 리스크 집중
각 후보가 저마다의 강약점을 안고 있는 가운데, 막판 가장 강력한 변수로 부상한 것은 올해 4월 대폭 강화된 공윤위 취업 심사 기준이다. 다만 이 규정이 후보군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직자윤리법상 퇴직 후 3년이 경과한 인물은 취업 심사 대상 자체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후보군의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설인배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2019년 4월, 박상욱 전 부원장보는 2022년 8월 각각 퇴직해 현재 기준 이미 3년이 훌쩍 지났다. 신현준 전 신용정보원장도 2022년 3월 8일 임기가 만료됐다. 이들은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심사를 받지 않고 즉시 취임이 가능한 이른바 '프리패스' 후보들인 셈이다.
반면 유재훈 전 금융위 국장은 사정이 다르다. 2026년 초 금융위를 떠난 유 전 국장은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공윤위 심사대를 통과해야 하는 처지다.
올해 4월부터 강화된 새 기준은 특정 부처 출신이 동일 유관기관에 '직전 3회 중 2회 이상 연속' 취업할 경우 이를 '대물림 재취업'에 따른 이해상충으로 보고 사실상 취업을 제한하는데, 올해 4월 심사에서는 총 77건 가운데 26건이 취업제한 또는 불승인 결정을 받을 만큼 윤리위의 칼날이 날카로워진 상태다.
더욱이 공윤위가 금융위와 금감원을 하나의 '금융당국' 뿌리로 묶어 판단할 경우, 유 전 국장의 발목을 잡는 강력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윤위 심사 변수는 사실상 최근 퇴직한 유 전 국장 한 명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며 "나머지 후보들은 퇴직한 지 이미 3년이 넘어 심사 대상 자체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법조계 관계자도 퇴직 3년이 지난 후보들은 법적으로 자유롭지만 최근 퇴직한 유 전 국장은 강화된 공윤위 심사를 정면으로 통과해야 하는 처지라며, 윤리위가 금융위·금감원을 동일 계열로 볼 경우 정책 역량과 무관하게 당락이 갈릴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 원추위는 '심사 리스크 없는 올드보이 카드'와 '정책 역량은 높지만 공윤위 심사를 안고 있는 카드'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8월 원추위 결정…'프리패스 올드보이'냐 '심사 관문의 유재훈'이냐
결국 이번 보험개발원장 인선은 참신한 인물이 부재한 가운데, 퇴직 3년이 지나 법적 심사를 피할 수 있는 올드보이들과 정책 역량은 높지만 공윤위 심사 관문을 정면 돌파해야 하는 최근 퇴직자 사이의 구도로 압축되는 양상이다.
정책 역량의 우열보다 윤리위 심사 통과 여부가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인선 구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보험업계에서는 오는 12월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과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의 임기 만료도 예정돼 있어, 보험개발원장 인선 결과가 하반기 보험권 기관장 인사 전반의 향방을 가늠하는 선행 지표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혁신 없는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재연될지, 아니면 강화된 공윤위 허들에 막혀 금융권 인사 판도가 요동치게 될지를 두고 보험업계의 이목은 8월 원추위 결정에 모아지고 있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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