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와 주가 상승에 힘입어 보험업권 전반적으로 개선 흐름이지만, 신계약을 늘려 활로를 모색하는 중소형 보험사들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 영업력을 확대할수록 오히려 자본 지표가 뒷걸음질 치는 역설적 구조 속에서, 이들의 고민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2023년 새 회계기준(IFRS17)과 함께 도입된 지급여력제도(K-ICS·킥스) 체제 아래, 신계약 실적이 개선될수록 자본 적정성 지표가 하락하는 구조적 한계가 반복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영업 성과가 도리어 자본 규제 압박으로 이어지는 이 같은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이 대출(영업)을 늘릴 때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해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듯, 보험사 역시 신계약을 확대할수록 K-ICS 비율(가용자본/요구자본)이 하락하는 구조적 유사성을 갖는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행 K-ICS 규제가 중소형사에게 유독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은 대출 이자 수익이 비교적 단기간 내 자본(당기순이익)으로 적립돼 BIS 비율을 회복시키는 반면, 보험은 신계약 체결 시 미래 이익을 뜻하는 계약서비스마진(CSM)이 부채로 먼저 산정된 뒤 수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자본에 전환되기 때문이다.
반면 신계약 유치 즉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적립해야 하는 요구자본(분모)은 해당 분기에 곧바로 반영되는 특성을 갖는다.
보장성 보험 신계약을 확대해 CSM을 1천억원 늘리더라도, 당장 적립해야 하는 요구자본이 수백억원 단위로 함께 늘면서 당기 K-ICS 비율은 오히려 수 %포인트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가용자본(분자)의 적립 속도가 요구자본 증가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여기에 GA(법인보험대리점) 등 판매채널에 선지급하는 신계약비(모집수수료) 부담도 겹친다. 관련 이익인 CSM은 수년에 걸쳐 나눠 인식되는 반면,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현금으로 즉시 빠져나가기 때문에 신계약이 늘어날수록 단기 가용자본 차감 압박은 한층 커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기대가 이미 장기 시장금리에 선 반영된 데다, 단기적으로는 보유 채권의 평가손실과 조달비용 상승이라는 짐도 함께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부채와 자산의 만기(듀레이션) 격차가 큰 보험사일수록 금리 상승기 채권 평가손실 부담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자산부채관리(ALM) 여력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중소형사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오는 2027년 시행이 확정된 기본자본 K-ICS 규제에 대응하려면 결국 이익잉여금 등 질적으로 우수한 자본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는 점에서, 신계약 확대에 따른 구조적 부담은 금리 변수와 무관하게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좁아지는 자본 조달 창구…중소형사 셈법 빠듯
이 같은 구조적 압박은 중소형사의 자금 조달 여건에도 부담으로 이어진다. 자본력과 높은 신용도를 갖춘 대형 보험사들은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를 4%대 금리로 발행하며 자본을 채워 넣는다.
반면 신용도가 낮고 조달 여건이 열악한 중소형사는 6~7%대의 높은 발행 금리를 제시하고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미달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결국 중소형사의 자본 확충 전략은 더욱 빠듯해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자본성증권 발행 시장 자체가 얼어붙는 양상이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보험사의 자본성증권(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발행 규모는 약 1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분의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발행에 나선 회사도 지난해 13곳에서 올해는 DB손해보험과 흥국화재 단 두 곳으로 줄었다. DB손해보험이 2월 4천420억원, 6월 4천100억원 등 두 차례에 걸쳐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고, 흥국화재는 3월 1천억원 규모의 공모 후순위채를 낸 게 전부였다.
2027년 시행이 확정된 기본자본 K-ICS 규제 강화를 앞두고, 보완자본으로만 인정되는 자본성증권을 발행할 유인 자체가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신용도가 낮은 중소형사 채권은 가산금리를 높여 제시해도 투자자들이 외면해 미달을 겪는 사례가 반복되는 수급 요인도 겹쳤다는 분석이다.
M&A마저 난항…자본 부담이 가로막는 매각 시장
기업 매각(M&A) 시장에서도 자본 부담은 결정적인 저해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잠재적 인수자 입장에서는 인수 대금 외에도 K-ICS 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추가 자본 확충을 함께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K-ICS 감독 기준 비율은 지난해 4월 150%에서 130%로 낮아졌지만, 2027년 시행이 확정된 '기본자본 K-ICS' 규제(규제 수준 50%, 자본증권 조기상환 요건 80%)가 새로운 잣대로 떠올랐다. 미달 시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될 수 있어 중소형사들의 긴장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실제로 인수자가 떠안아야 할 추가 자본 확충 규모는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은행이 추진 중인 KDB생명 매각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말 유상증자로 완전자본잠식은 벗어났으나, 경과조치 적용 전 순수 기준 기본자본 K-ICS 비율은 여전히 마이너스권에 머물러 있어 인수 후보들이 요구하는 사전 증자 규모가 매각 협상의 핵심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지난 7일 한화생명·흥국생명·한국투자금융지주가 최종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가운데, 산업은행은 이달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이런 사정은 롯데손해보험도 마찬가지다. 최대주주인 JKL파트너스는 신한금융지주와 단독으로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지분 가격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근 결렬됐다. 롯데손보는 지난 3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적기시정조치 2단계에 해당하는 경영개선요구를 받은 상태로, 인수자는 지분 취득과 함께 신주 유상증자까지 떠안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다소 반전되는 조짐도 감지된다.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인 예별손보는 지난달 OK금융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며 매각에 속도를 냈고, 롯데손보 역시 희망 매각가를 2024년 매각 추진 당시의 2조원대에서 1조원 안팎으로 낮추며 눈높이를 현실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수 후 요구되는 대규모 자본 확충 부담은 여전히 가격 협상의 최대 변수로 지목된다.
중소 보험사 관계자는 "영업 현장에서는 보장성 신계약을 늘리라 독려하지만, 재무·리스크 부서에서는 신계약이 들어올 때마다 분기 K-ICS 비율이 떨어져 마케팅을 강제로 제어해야 하는 모순이 반복된다"며 "자본 확충도, 인수합병을 통한 활로 모색도 쉽지 않아 사면초가에 빠진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대로 가면 보험산업 전체의 역동성과 혁신은 사라지고 대형사 위주로 시장이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2027년 도입될 기본자본비율 규제 역시 자본 확충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사에 더 큰 장벽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획일적 기준 탈피…'맞춤형 연착륙 지원' 필요
이처럼 자본 조달과 매각이라는 이중의 벽에 부딪힌 중소형사들 사이에서는, 획일적 규제 적용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보험산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건전한 시장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중소형사에 대한 정교한 제도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중소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산업 안정성을 위해 만든 K-ICS 규제가 대형 보험사 관리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다 보니, 혁신과 변화를 시도하려는 중소형사에는 오히려 신규 진입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우려는 업계 전반에서도 감지된다. 보험산업의 다변화가 소비자 선택권과 시장 경쟁력 제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소형사의 퇴출이 능사는 아니라는 인식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각 사의 자산 규모와 리스크 관리 역량, 영업 특성을 반영한 유연한 제도 운용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당국은 경과조치 적용 회사에 대해 적용 전후 K-ICS 비율 비교 공시 의무, 경영실태평가 자본적정성 등급 상한(최고 3등급) 등 일정한 완충 장치를 이미 운용 중이다.
기본자본 K-ICS 규제 역시 2027년 도입과 함께 2035년 말까지 9년간 경과조치를 적용하기로 확정했지만, 자본 확충 여력 자체가 부족한 중소형사 입장에서는 당장의 기초 체력 요건을 충족하는 것부터 빠듯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조달 여건의 격차가 제도 대응력의 격차로 이어지는 셈이다.
보험업계 한 전문가는 "K-ICS의 본래 취지인 자본 건전성 강화는 유지하되, 자본 시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중소형사에게 동일한 속도를 요구하면 대형사 쏠림과 시장 양극화만 심화될 수 있다"며 "금융당국이 중소형사의 자본 부담을 완화하고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적 연착륙 장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보험업권 평균 지표는 금리·주가 상승에 힘입어 개선되고 있지만, 개별 중소형사의 체감 부담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신계약 확대와 자본 건전성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이들의 다음 행보에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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