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힘없이 펼쳐진 바다와 멀리 서 있는 산. 화면은 화려한 수사도, 격렬한 감정도 앞세우지 않는다. 고요하고 담담하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그 풍경 안에서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가족에 대한 마음, 그리고 삶을 대하는 깊은 시선이 천천히 드러난다.
김혜진의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산과 바다 자체가 아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응시의 주체’, 바로 작가 자신이다.
그가 바다를 바라볼 때 그곳에는 함께 살아온 남편이 있고, 성장하여 자신의 가정을 이룬 자녀들이 있으며,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함께 놓여 있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자연의 재현을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붙잡아 둔 회화가 된다.
그 선택의 이면에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
50대에 찾아온 암 판정과 수술, 그리고 다시 발견된 두 번째 암. 긴 투병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가족은 그의 곁을 지켰고, 그는 다시 캔버스 앞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병실도, 절규도, 비극적인 이미지도 없다.
대신 바다가 있다. 산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묵묵히 삶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바다는 병을 말하지 않으면서 삶을 말하고, 그의 산은 고통을 그리지 않으면서 견딤을 보여준다. 이것이 김혜진 회화가 가진 힘이다.
김혜진은 그것을 ‘응시’로 바꾸었다.
산을 오래 바라보고, 바다를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결국 그 너머에 있는 자신의 삶과 가족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미술관의 벽에서만 완성되는 그림이 아니다. 누군가의 집에 걸렸을 때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되는 그림이다.
아침의 빛 속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저녁에 바라보는 바다는 다를 것이고, 기쁜 날 바라보는 산과 힘든 날 바라보는 산 또한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림은 변하지 않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은 변한다. 좋은 소장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유명한 작품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갈 한 점의 그림을 선택하는 일이다.

사진제공=서울한강비엔날레
김혜진의 풍경에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 처음에는 산과 바다가 좋아 선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고, 배우자를 생각하고, 성장하여 떠나간 자녀를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 어느 순간에는 그림 속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혜진의 그림을 소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풍경화를 구입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한 사람의 견딤과 사랑, 가족과 시간, 그리고 끝내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려 했던 시선을 자신의 공간에 들이는 일이다.
김혜진은 자신의 고통을 앞세워 그림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그렸다.
아픈 날에도, 다시 병을 마주한 순간에도, 예순을 넘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반복된 하루와 축적된 시간이 마침내 화면의 깊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고, 바다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그 풍경에는 한 가족의 시간이 있고, 한 여성의 생이 있으며,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려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
김혜진의 회화는 고통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고통을 지나온 사람이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기로 선택한 그림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앞에서는 이런 마음이 생긴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이 풍경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 다른 누군가의 벽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오래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 그림을 소장하게 만드는 가장 강한 힘은 가격이나 명성이 아니라 어쩌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그림과 오래 함께 살고 싶다.”
서울한강비엔날레 대상 김혜진의 작품은 그렇게, 보는 그림에서 머물지 않고 곁에 두고 싶은 그림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글로벌에픽 이성수 CP / wow@globalepic.co.kr]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