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조건부 승인을 투자확정 합의로 봐”
소송의 발단은 한미약품그룹의 시니어케어 사업을 둘러싼 주주 간 갈등에서 비롯됐다. 신 회장을 포함한 네 주주는 2024년 7월 의결권 공동 행사 등 경영 의사결정에 관한 주주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 위반 시 600억 원의 위약벌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주주들은 협약에 따라 서울 반포동 시니어 레지던스 개발 사업 투자를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1차 이사회에서는 "서울성모병원의 적극적 협력을 조건으로 160억 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의 결의가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는 조건부 승인이었다.
그러나 2차 이사회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병원 측의 구체적 확약이 어렵고 투자금 회수가 장기화할 우려가 제기되자 이사회는 투자 계획 철회를 결의했다. 송 회장 측은 이를 놓고 신 회장을 포함한 주주들이 투자 여부 재논의 안건을 합의도 없이 상정시키고 이를 부결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시니어 레지던스 사업 투자를 "반드시 진행한다"는 확정적 합의가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첫 번째 이사회 결의가 조건부 승인인 만큼, 조건 충족 여부를 확인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재논의 안건을 상정하는 것은 주주 협약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판결이었다.
이해충돌 구조 위에 세워진 투자 제안
법원의 판단 밖에서도 살펴볼 쟁점이 남아 있다. 시니어케어 사업의 구조 자체가 갖는 이해상충의 문제다.
투자를 주도한 폴캐피탈코리아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9.8%를 보유한 킬링턴유한회사의 핵심 출자자다. 킬링턴의 업무집행자로 운용 책임을 맡은 라데팡스 파트너스의 김남규 대표는 한미사이언스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는 투자자의 이익과 회사 전체 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수 있는 구조였다.
신동국 회장 측은 이러한 이해충돌 가능성이 클수록 투자 건에 대한 경제성 평가(Due Diligence) 등 절차가 더욱 철저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2차 이사회 당시 그러한 절차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게 신 회장 측의 입장이다. 결국 이사회의 독립적 경영판단으로 사업이 부결되었는데, 송 회장 측은 이를 신 회장의 '약속 위반'으로 의도적으로 프레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판결 이후 남겨진 과제들
그러나 신동국 회장 측은 이 사건이 단순한 소송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킬링턴이 라데팡스를 매개로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과 경영권 분쟁에 어느 수준까지 영향을 미쳐왔는지, 투자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가 사업 무산 후 최대주주에게 거액 책임을 묻는 과정이 적절했는지 등이 객관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그동안 한미약품그룹의 경영 안정을 고려해 공개 대응을 자제해왔다고 밝혔다. 판결을 계기로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과 전문경영 체제를 더욱 확고히 다져나간다는 방침을 내놨다. 한미약품 내부의 지배구조 정립이 이사회 중심의 합리적 경영 체계로 수렴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경영 방향에 달려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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