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10.23(금)

한국마사회 말박물관 초대전, 이소희의 ‘읽히지 않은 시간’ 개막

이성수 CP

2026-10-23 12:02:57

[글로벌에픽 이성수 CP] 경주로의 순위와 주파 기록은 말의 삶을 설명하는 가장 분명한 언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마리 말의 일생은 그 숫자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한국마사회 말박물관이 10월 23일 여는 이소희 초대작가전 《읽히지 않은 시간》은 바로 그 기록되지 않은 순간들에 주목한다. 어떤 결과로도 남지 않는 평범한 하루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이번 전시는, 말과 사람의 시간을 같은 자리에 놓고 바라보게 한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이 삶의 대부분을 채운다
경주마는 달리고, 도착하고, 순위와 주파시간으로 남겨진다. 하지만 말의 일생은 그런 기록의 바깥에서 더 길게 흘러간다. 태어나 어미 곁에 머물고, 젖을 먹고, 풀을 뜯고, 천천히 걷다가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시간들은 어떤 결과로도 남지 않지만, 한 생명의 시간을 실제로 채우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말의 시간에서 발견한 사람의 삶
작가는 말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사람의 삶을 발견한다.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특별한 순간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평범한 하루와 그 안의 소소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전시 제목 '읽히지 않은 시간’은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아직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시간이라는 작가의 시선을 담고 있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제목 안에 조용히 담겨 있다.
흔적이 느껴지는 붓 터치와 현실과 꿈의 경계
작품은 세밀한 묘사보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중첩된 붓 터치와 색의 융합으로 완성됐다. 그 결과 현실과 꿈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정교하게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기억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풍경에 가까워, 관람객이 각자의 일상을 겹쳐 볼 여지를 남긴다.

대표작 《시간의 시작》이 말하는 평범한 신화
대표작 《시간의 시작》은 평범한 시간이 신화처럼 기억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 준다. 유럽의 작고 오래된 성당에 들어서면 마주칠 것 같은 친근한 분위기를 지녔다. 나팔을 부는 천사와 구름 사이로 환하게 등장하는 백마의 모습은, 말이든 사람이든 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하나의 신화가 시작된다는 믿음을 시각적으로 옮긴 장면이다.

일상이 쌓여 완성되는 자신만의 신화
작가는 가끔은 무료하고 때로는 고단하지만, 켜켜이 쌓인 일상이 모여 자신만의 신화를 이룬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그 메시지를 조용히 전하는 자리다. 전시는 과천 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1월 29일까지 열린다. 화려한 결과가 아닌 평범한 하루에 눈을 돌릴 때, 우리의 시간도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기 시작할지 모른다.

[글로벌에픽 이성수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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