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금)
[글로벌에픽=차진희 기자]
지난 1월, 경기과학고 출신 서울대 의대생이 tvN 대표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의대 수시 6관왕’으로 소개된 출연자는 “수시 제도는 한 번에 6개 대학까지 지원할 수 있는데 여섯 군데 의대를 지원해 다 붙었다”며 “고등학교 재학 중 꾸준히 의대 진학을 준비하며 215시간의 의료 봉사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방송 이후 ‘유 퀴즈 온 더 블럭’ 시청자 게시판에는 해당 출연자를 섭외한 제작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문제가 된 부분은 출연자가 과학고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영재·과학고는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됐다.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이 국비로 지원된다. 그러나 의대 진학을 목적으로 영재·과학고에 지원하는 학생이 늘어나면서 ‘의대로 가는 지름길’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논란은 상위권 학생과 학부모가 영재·과학고에 관심을 두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줬다. 바로 대학 진학과의 연결성이다.

2021학년도 서울대 등록자 고교별 순위를 살펴보면 20위 권 내에 일반고는 한 학교도 없다. 반면 8개 영재학교는 모두 14위 권 내에 머물렀다. 합격자도 지난해 282명에서 올해 327명으로 45명 늘었다.
영재·과학고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어떨까. 10여 년간 강남지역 대형 학원을 운영하며 초·중학생의 학습 컨설팅을 진행한 김은영 교육전문가에게 물었다.

김은영 교육전문가 (現 YE.LAB 대표, 前 압구정 정보학원 부원장)
김은영 교육전문가 (現 YE.LAB 대표, 前 압구정 정보학원 부원장)

Q.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어떤 학교이며 학생 선발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A. 영재학교(이하 영재고)와 과학고는 각각 이공계 분야, 과학 분야 우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워졌다. 영재고는 8개교, 과학고는 20개교로 총 28개 교에 7,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영재교육 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영재고는 6월에서 8월 사이에 학생을 모집한다. 반면 과학고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9~11월에 입시 절차가 진행된다. 때문에 영재학교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이 과학고 입시에 다시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영재고는 1차 서류 평가, 교과역량·창의 사고력을 확인하는 지필고사, 캠프를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이와 달리 과학고는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방문면담, 수학·과학 구술 면접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2021년 8개 영재고의 평균 경쟁률은 13:1을 넘어섰다. 이는 서울대 수시 평균 경쟁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지원자가 많다 보니 수·과학 극상위권 학생만이 합격할 수 있다.

Q. 최근 영재·과학고가 ‘의대로 가는 지름길’로 악용된다는 논란이 있었다. 앞으로 의대 진학과 관련된 전망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A. 최근 교육 정책은 영재고에서 의대로 진학하는 통로를 열심히 차단하고 있다.

의대 지원자에게 추천서를 써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장학금, 지원금도 환수한다. 한국과학영재고는 의대 지원자에게 졸업 자격 자체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이 불가능해진다. 현실적으로 영재고 학생이 의대에 지원하는 것 자체를 막겠다는 뜻이다.

물론 과거에도 영재고-의대 진학을 막는 장치는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의대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많았다. 최근에는 정부가 정시를 확대하고 특기자 전형을 축소하면서 영재고 진학이 오히려 의대 입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국단위 자사고에서 의대에 진학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복잡하고 비정상적인 루트를 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약계열 진학을 희망한다면 학생의 꿈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Q. 영재학교에 합격하는 학생들만의 공통점이 있다면?

A.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다.

영재·과학고 진학 컨설팅을 할 때 학부모들이 가장 처음 하는 얘기는 아이의 수학 선행 정도다. 사실 강남·서초 지역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 중 중등 수학 선행을 시작하지 않은 학생은 거의 없다. 즉, 선행 학습의 정도는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자발적인 흥미와 관심은 다르다. 영재고 1학년의 교육과정은 일반고 3개년 치와 맞먹는다. 1학년 때 보통 학생들의 3년 치 학습 진도를 채우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학년 때는 대학 과정, 3학년 때는 졸업논문 연구 과정에 주력한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특성상 고등학교 진학 전 고등과학·경시 대비 과정을 이수한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만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중학교 입학 후 일주일에 6일 수학, 1일 과학의 학습패턴을 내내 유지해야 한다. 이때 자발적인 흥미가 없으면 학습 강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Q.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 중 영재고 대비 코스로 진입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있을까.

A. 과학에 대한 흥미는 1순위로 제쳐두면 그다음은 역시 수학 선행 학습 정도다. 더 솔직히 표현하면 중학교 1학년 이후 과학 경시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될 이 그룹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고등수학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일부 학원은 중등 과정 개념만 학습한 학생에게 영재고 대비반 합류를 권하곤 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갑작스런 난이도 상승에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Q. 영재고 진학을 희망하는 초등학생과 학부모가 주의할 점이 있을까.

A. 진우라는 학생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찾아왔다. 진우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명 수학 전문학원 영재학교 대비반에서 공부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수학, 일요일에는 과학 공부에 올인하는 과정이었다. 당시 진우는 주 1회 진행해온 영어 과외를 1년간 중단한 상태였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결국 물리 올림피아드 수상에는 실패했다. 수학학원은 진우에게 자사고반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과목은 영어다. 진우는 중학교 입학 후 영어 공부를 중단한 상태였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그간 수학과 과학에만 적응해온 아이의 뇌와 학습패턴을 바로잡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진우도 “왜 영어단어를 무조건 암기해야 하느냐”는 불만을 나타내며 영어 공부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또한 사춘기에 경험한 입시 실패는 아이의 마음에 큰 패배감을 안겨줬다. 결국 진우는 인근 남고에 진했다. 최근에는 내신 성적 관리에 실패해 재수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영재·과학고 대비 코스는 ‘양날의 검’이다. 입시에 성공할 경우 이공계 최상위권으로 진입을 보장받지만, 실패하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 모두가 영재·과학고에 적합한 성향을 갖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학원 영재고 대비반이 우리 아이의 성향을 바꿔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차진희 기자 epic@globalepic.co.kr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항목 현재가 전일대비
코스피 2,628.62 ▼47.13
코스닥 853.26 ▼8.97
코스피200 356.51 ▼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