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성과의 중심에는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 법인의 약진이 있었다. 오리온의 해외 매출 비중은 현재 65%에 달하며, 이는 국내 제과업체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단순히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공장을 세우고 그 나라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글로벌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중국 시장 장악 … 전체 매출 41% 차지
중국에서의 성공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하오리유(좋은 친구)'라는 중국식 브랜드명으로 철저히 현지화한 전략이다. 초코파이, 오감자, 스윙칩 등 주력 제품을 중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면서도, K-푸드의 정체성은 유지했다.
둘째,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한 생산 체계다. 전 세계 오리온 법인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공장에서 연간 수천억 원어치의 과자를 생산하며 원가를 절감했다. 오감자만 해도 중국에서 약 2600억원어치가 판매되며, 중국 법인 전체 매출의 40%를 감자 스낵류가 차지한다.
셋째, 유통 채널의 혁신이다. 오리온은 최근 중국 내 영업망을 경소상 중심으로 재편했다. 경소상은 제품을 직접 매입하는 소매업자로, 이들을 통해 오리온은 3·4선급 소도시까지 판매 지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로써 2023년 1분기 23%였던 판관비 비중을 2025년 1분기 20%까지 낮추는 효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K-푸드 열풍에 발맞춰 공격적인 신제품 출시에 나섰다. 2025년 5월 말부터 '스윙칩 불닭면 맛'을 중국 전용으로 출시했는데, 이는 중국 내에서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을 비롯한 매운맛 제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식품 제조사 프리토레이도 중국에서 레이즈 웨이비 불닭맛을 판매 중일 정도로, 불닭맛은 이제 중국에서 한국 고유의 맛으로 통용되고 있다.
베트남 법인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2024년 매출 5145억원, 영업이익 1001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8.2%, 14.4% 성장했다. 베트남의 영업이익률은 19.5%로 중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베트남의 성공 비결은 낮은 원가 구조에 있다. 한국과 중국에 비해 인건비가 낮은 데다, 원부자재와 포장재까지 모두 현지에서 조달하여 원가율을 대폭 낮췄다. 하노이 인근 공장은 전 세계 오리온 설비 투자 공장 중 가장 생산 라인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품 전략도 주효했다. 베트남에서는 신제품 쌀과자 '안(An)'이 월 매출 16억원을 넘어서며 베트남 쌀과자 시장 점유율 약 12%를 달성했다. 오리온은 이를 베트남 법인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2년간 제품 연구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베트남이 한국 문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오리온 제품이 현지 간식 시장에서 프리미엄급으로 포지셔닝된 것도 강점이다.
러시아 법인은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였다. 2024년 매출 2305억원, 영업이익 369억원으로 각각 15.1%, 15% 증가했다. 루블화 기준으로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0.7%, 20.4% 증가하며 6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갔다.
러시아에서는 초코파이가 국민 스낵으로 불리며, 전체 매출의 81%를 파이류가 차지한다. 작년 한 해에만 러시아에서 16억 개의 초코파이가 팔렸다. 러시아인들은 차와 함께 초코파이를 즐기는 간식 문화를 정착시켰다. 2024년 12월 기준 트베리 신공장과 노보 공장의 가동률이 128%를 넘어서는 등 현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오리온은 트베리에 공장동 추가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다른 해외 국가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러-우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물류비, 전기·가스 요금, 인건비 등 고정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한국과 달리 소형 유통 매장, 전통 시장, 지역 마트 등 다각적인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어 물류비 부담이 크다.
스낵 부문도 농심과 격차 0.5%p까지 좁혀
해외 법인의 약진에 가려졌지만, 국내 사업도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 법인은 2024년 매출 1조 976억원, 영업이익 1785억원으로 각각 2.6%, 5.7% 성장했다. 국내 영업이익률도 17.5%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오리온은 비스킷 점유율에서 2위와의 격차를 벌리며 확고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스낵류 부문에서 1위인 농심과의 격차를 0.5%p까지 좁혔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조만간 스낵류 부문마저 1위를 차지하여 국내에서 독보적인 과자 회사가 될 전망이다.
2024년 편의점 과자 판매 순위를 보면 1위는 포카칩 오리지널 맛, 4위는 꼬북칩 초코츄러스 맛으로 오리온 스낵류 제품이 2개나 포함되어 있다. 포카칩은 30년 가까이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이고, 최근에는 꼬북칩이 가세하며 스낵 매출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신제품 출시도 활발하다. 포카칩 3MIX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혔고,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불가피한 가격 인상도 단행했다.
경쟁사 대비 3배 높은 영업이익률, 그 비결은?
오리온의 2024년 영업이익률 17.1%는 경쟁사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롯데웰푸드(구 롯데제과)와 크라운제과의 영업이익률이 약 5~6%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오리온은 3배 가까이 압도적인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고수익 구조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오리온은 매출 규모에 비해 제품 개수가 많지 않다. 대신 초코파이, 포카칩, 오감자, 꼬북칩 등 메가 히트 브랜드 중심으로 운영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각 제품이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 제품들이다.
제과 산업의 특성상 생산 원가 자체가 크지 않아, 브랜드 파워와 충성 고객을 확보하면 고마진이 가능하다. 오리온 초코파이나 포카칩처럼 수십 년간 사랑받아온 제품들은 소비자가 신제품 시도 후 실패를 피하기 위해 다시 찾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반복 구매 패턴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
또한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 제과 산업은 설비 투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면 단위당 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다. 오리온은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해외 자회사 전략
오리온의 성공 뒤에는 2017년 단행한 지배구조 개편이 있다. 오리온은 이 해에 인적 분할을 통해 오리온 홀딩스와 오리온으로 나뉘어 상장되었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회장 일가는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의 지분 64%를 확보하며 지배력을 강화했다.
분할 후 오리온 홀딩스는 자회사 관리 및 신사업 투자 관리를 담당하고, 오리온은 제과 산업에 집중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러한 구조 개편은 공정거래법 규제에 대응하면서도 경영권을 안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오리온이 해외 사업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자회사를 통해 진행하는 이유도 전략적이다. 첫째, 법률 및 투자 보호 장치를 확보할 수 있다. 현지 법인격이 법률적 방어막 역할을 하여 본사의 책임을 제한한다. 둘째, 세무 및 자금 조달 유연성을 확보한다. 각국의 조세 회피 방지 규정을 고려하여 제품 공급 가격, 로열티, 배당 등을 법적으로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다. 셋째, 회계적 투명성과 사업 단위별 책임 경영이 용이하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자회사 손익을 구분하여 평가할 수 있어, 경영 의사결정이 신속해진다.
연구 개발과 재무 안정성, 지속 성장의 두 축
오리온은 매년 한국 법인 총 매출액의 약 0.5%, 대략 570억원 수준을 연구 개발비로 지출한다. 제과 산업은 소비자의 입맛 변화와 트렌드에 매우 민감하여,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신제품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출시된 제품의 질 향상, 맛, 식감, 영양, 균일한 제조 방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로' 열풍에 따라 당, 트랜스 지방 등 화학 첨가물을 줄이면서도 맛을 유지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2017년에는 R&D 역량 및 글로벌 제품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글로벌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기획팀을 신설했다. 법인별 R&D 노하우를 공유하고, 각국 소비자 특성에 맞춘 신제품을 선보이며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재무 안정성도 오리온의 강점이다. 부채 비율은 17%에 불과하고, 연간 3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임에도 금융기관 차입금이 11억 50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현금성 자산인 예금이 31억원에 달해 실질적으로 무차입 법인으로 볼 수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그룹의 순현금 보유액은 1조 6000억원에 달한다.
유동 비율도 300% 수준으로, 유동 자산이 유동 부채보다 3배 이상 높다. 보통 유동 비율 200%를 안정적으로 보는데, 오리온은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강력한 현금 창출 능력을 가지고 있어 굳이 차입이 필요 없는 구조다.
이처럼 보수적인 재무 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는 해외 매출 비중이 65% 이상으로 환율 및 이자율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돈을 잘 버는 회사들은 대규모 M&A를 통해 그룹 덩치를 키우려 하지만, 오리온은 투자 방식도 보수적이다. 내부 사업 확대 중심으로 생산 시설 투자, 신제품 개발 등에 집중하며, 현금 창출 능력만으로도 투자 자금을 충분히 충당하고 있다.
이러한 안정성을 인정받아 오리온은 주주 환원 정책도 대폭 강화했다. 주당 배당금을 기존 1250원에서 2500원으로 2배 늘리기로 결정했다. 이는 연결 지배지분 당기순이익의 26% 수준이다.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도 배당금을 기존 750원에서 800원으로 늘렸으며, 시가배당률은 5% 수준으로 시중 금리보다 높다.
바이오 사업 진출과 매출 5조 목표
오리온은 단순히 제과 회사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2024년 3월 글로벌 제약기업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하며 바이오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인수 첫해 리가켐은 일본 오노약품공업과 1조원 가량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오리온은 올해 새로운 파이프라인 개발을 더욱 가속화하고, 지속적인 기술 수출 및 글로벌 자체 임상 역량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ADC(항체-약물접합체) 분야에서 차별적인 기술력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그룹은 빅바이오테크 기업으로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제과 사업에서도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오리온은 중장기 목표로 매출 5조원과 영업이익 1조원을 설정했다. 이를 위해 국내외 생산 설비 확충에 약 83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국내 진천 공장, 해외 러시아 및 베트남에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며, 이 투자는 2027년까지 모두 완공될 예정이다.
충북 진천에는 5만 6000평 규모의 생산·포장·물류 통합센터를 구축하여 글로벌 공급망을 더욱 강화한다. 한화투자증권은 2025년 오리온의 연결 매출액을 3조 2812억원, 영업이익을 5700억원으로 전망하며, 각각 전년 대비 5.7%, 4.9%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마지막 관문, 미국 시장 공략
오리온이 세계적인 제과 회사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결국 미국 시장에서도 자리를 잡아야 한다. 미국에는 허쉬, 마스, 몬델레즈 등 거대 제과 기업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 미국은 허쉬, 몬델레즈 등 미국 태생 브랜드의 강세로 진입 장벽이 크고, 오리온은 아직 단가 경쟁력과 로컬 마케팅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개척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전 세계를 강타했듯이, K-푸드의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오리온도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메가 히트 제품이 탄생한다면, 글로벌 제과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리온 관계자는 "2024년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이 65%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지속적으로 해외 법인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수출 확대를 통해 해외 비중을 늘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과 산업은 단순히 식품 제조업이 아니라 소비자 기호 변화, 유통 환경, 브랜드 파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산업이다. 오리온은 이 모든 요소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식품·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60여 개국에서 24종의 초코파이가 판매되고, 중국에서만 오감자가 2600억원어치 팔리는 오늘날, 오리온은 단순한 과자 회사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철저한 현지화, 효율적인 지배구조,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갖춘 글로벌 기업이다. 3조 클럽에 진입한 오리온의 다음 목표는 5조원이다. 그리고 그 꿈은 결코 멀지 않아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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