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목적지가 있으면 가장 합리적인 경로는 직선 거리일 것 같지만, 실제로 그 길은 좀처럼 뚫려 있지 않았다. 막다른 담벼락에 가로막히거나, 길이 휘어져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오히려 몇 번 돌아서 가는 편이 더 빨리 목적지에 닿을 때가 많았다. 효율을 좇다가 오히려 더 비효율적인 결과를 맞곤 했는데, 묘하게도 나는 그 과정이 즐거웠다. 돌아가는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었고, 예상치 못한 경험이 덤처럼 따라왔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투자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성장, 그것도 빠른 성장이다. 성장이라 함은 결국 매출액을 뜻하고, 가능하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숫자를 원한다. 그런데 경영자는 그 압력 속에서 늘 딜레마에 빠진다. 투자자의 요구를 우선해야 하는가, 아니면 고객을 먼저 바라봐야 하는가. 한쪽은 속도를, 다른 한쪽은 방향을 묻는 셈이다.
경영학에서도 이 문제는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투자자 중심 프레임은 빠른 성장을 최선으로 본다. 반면 고객 중심 접근은 당장의 효율보다 장기적 신뢰를 중시한다. 흥미로운 건, 위기 상황에서 더 단단했던 쪽은 대체로 고객 중심 기업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투자자가 없어도 회사를 꾸려갈 수는 있지만, 고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효율을 극도로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비효율을 즐길 줄 아는 용기’다. 과학자의 실패한 실험, 예술가의 수많은 습작, 창업자의 삽질과 시행착오. 모두 겉으로 보기엔 낭비 같지만, 그 과정이야말로 진짜 성장을 준비하는 토양이었다. 골목길의 우회로가 결국 더 빠른 길이 되듯, 비효율을 즐기는 태도가 장기적으로는 더 멀리 가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효율이 아니다. 오히려 효율에 가려 보이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내는 눈이다. 매주 하루쯤은 돌아가는 길로 퇴근해 보는 것도 좋다. 팀으로 일한다면 KPI 옆에 ‘묘미 지표’를 하나쯤 더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자발적으로 남긴 칭찬 사례 수, 실패에서 배운 교훈의 개수 같은 것 말이다. 숫자만 바라보는 대신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기록한다면, 불안은 줄고 목적은 또렷해진다.
효율만 좇다 보면 결국 막다른 길에 갇히지만, 비효율을 즐기는 순간 새로운 풍경이 열린다. 진짜 성장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묘미를 느낄 줄 아는 방향의 문제다.
[글로벌에픽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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