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희대 성주호 교수.
글 싣는 순서
①우리연금제도의 노후생활보장은 글로벌 A등급 수준인가?
②계약형이냐 기금형이냐, 퇴직연금지배구조의 선택
고용노동부는 2025년 3월 21일 전문가 11인으로 구성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추진 자문단"을 출범시켰다. 6월 27일 최종회의까지 진행했지만 구체적 결론은 도출하지 못했다. 현재 국회에는 세 건의 대표발의안이 계류 중이다. 학술적·실용적 관점에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본다.
첫 번째 원칙, DC제도에 한정하라.
퇴직연금 기금형은 DC(확정기여형)제도에 한정하여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다. DB(확정급여형) 기금형은 도입 절차와 운영이 복잡하여 사용자에게 지속적인 재정 부담을 야기한다. 역사적 의미는 있지만, DC제도로의 전환이 세계적 추세인 만큼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기업마다 재무 상태와 운영 목적이 다양하므로 DB제도를 통합 운영하는 것은 실용성이 매우 낮다. 한편 IRP(개인형퇴직연금)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급여제도가 아니며, 실체는 퇴직급여 통산을 위한 일종의 개인형 퇴직연금상품이므로 기금형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두 번째 원칙, 통합·집합 운용이다.
세 대표발의안에서 공통적으로 제안하는 바와 같이, DC기금형은 통합·집합 운용 방식이 타당하다. 이는 기존 DC계약형과 수익률 및 수수료 경쟁을 유도하고, 국내 장기자산운용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다.
현재 한국의 DC와 IRP는 사전지정운용제도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지정적립금 비중 89.2%, 안정형 86.5%로 나타났다. 41개 사업자가 305개 상품을 나열해놓고 가입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백화점식 구조로는 수익성 개선이 불가능하다. 마케팅 경쟁만 부추길 뿐이다.
세 번째 원칙, 중소기업을 위한 공기관 기금형제도의 도입이다.
대표발의안에서 공통적으로 제안하는 바와 같이, 퇴직연금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기업은 정부의 직접적 재정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지속적·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공기관 DC기금형" 도입은 글로벌 정책 추세와도 일치한다.
일본은 1959년부터 중소기업퇴직금공제제도를 운영하는 근로자퇴직금공제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2010년 NEST제도를 운영하는 NEST Corporation을 설립했다. 두 나라 모두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공기관 DC기금형"으로 설립되었으며, 가입자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제공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재정지원 아래 중소기업을 전담하는 "공기관 DC기금"(예: 중소기업퇴직연금공단)을 설립해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는 박홍배 의원 대표발의안과 일치한다.
종합하면, 한국 퇴직연금의 현실적 대안은 '이원적 접근'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위해서는 금융기관 기금형(안도걸 의원 법안)이 적합하다. 퇴직연금기금전문운용사를 통해 DC·IRP 적립금을 통합·집합 운용하고, 전문운용사 간 장기 수익률과 수수료 경쟁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 DC계약형과의 경쟁을 유도해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공기관 기금형(박홍배 의원 법안)이 필요하다. 퇴직연금공단을 설립하여 정부 재정 지원 아래 중소기업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30인 이하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를 모든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전담 조직을 퇴직연금공단으로 이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정애 의원이 제안한 사용자 기금형은 연간 적립금 3천억원 또는 누적 가입자 3만명 이상이라는 높은 진입장벽과 노사 합의에 의한 복잡한 설립 절차 때문에 현실적으로 활성화되기 어렵다. 전통적 기업형·산업형 기금의 역사적 의미는 인정하지만, 글로벌 추세와 국내 실정을 고려할 때 우선순위는 낮다고 판단된다.
제도 개혁의 골든타임
한국 퇴직연금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GDP 대비 32.1%에 불과한 적립금 규모, 12% 수준에 머무른 소득대체율, 89.2%에 달하는 안정형 편중 현상은 모두 구조적 문제의 증상들이다.
DC기금형의 통합·집합 운용과 중소기업을 위한 공기관 기금형 설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기를 기대한다. 제도 개혁의 골든타임은 지금이다.
[경희대 성주호 교수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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