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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쿠팡의 ‘창조적 파괴’는 어떻게 가능했나

‘빅3’ 체제 뒤엎은 외인 … 택배시장 ‘메기’ 역할 ‘톡톡’

안재후 CP

2025-10-21 13:56:25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지난 수십 년간 국내 택배 시장의 절대 강자는 CJ대한통운이었다. 2021년까지 45% 이상의 시장 점유율로 2~5위 업체를 모두 합친 것보다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던 택배계의 철옹성이었다. 그런데 불과 3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쿠팡의 택배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CLS)는 37.6%의 시장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고, CJ대한통운은 27.6%로 2위로 밀려났다. 물동량으로 따지면 쿠팡이 CJ대한통운을 추월한 지 이미 오래된 상황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순위 변동이 아니다. 국내 택배 산업 45년 역사에서 처음 일어나는 일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빅3' 체제로 굳어졌던 시장이 외부 강자의 진입으로 완전히 재편되는 순간이다.

60억 건 시대, 성장한 시장의 내부 갈등

국내 택배 시장은 거대하게 성장했다. 5년 전 약 30억 건 수준이던 연간 물동량은 지난해 60억 건에 달했다. 이커머스의 폭발적 확대와 C-커머스(중국 전자상거래)의 국내 진출로 택배 물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같은 중국 플랫폼들의 한국 상륙은 2023년 택배 물량의 22.5% 급증을 가져왔다.
하지만 성장이 모든 기업을 이롭게 하지는 못했다. 규모는 커졌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택배는 여전히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며, 한 회사가 새로운 서비스(당일배송, 무료 반품, 새벽배송 등)를 시작하면 다른 회사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 역량 경쟁과 가격 경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구조에서 전통 택배사들의 마진율은 꾸준히 압박을 받아왔다.

빅3의 운명, 양극화의 심화

2024년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의 실적은 각사의 전략과 투자 역량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CJ대한통운은 여전히 강하다. 2024년 택배 부문 매출 3조 7,289억 원에 영업이익 2,388억 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률 6.4%를 유지했다. 택배 사업이 전체 연결 영업이익의 약 45%를 책임지고 있을 정도로 회사를 먹여 살리는 핵심 부문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곤지암 메가허브를 비롯한 14개 허브터미널과 276개 서브터미널의 인프라 위력과 선제적인 자동화 투자가 경쟁사와의 차이를 만들고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개선 중이다. 2022년 1% 대 초반에 불과하던 영업이익률이 2024년 2.3%로 개선되었다. 메가 허브 터미널 완공, 운영 효율화, 단가 인상을 통한 수익성 개선의 성과다. 다만 2023년 1조 4,400억 원이던 택배 부문 매출이 2024년 1조 4,200억 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롯데 그룹 내부 물량 감소가 주요 원인이었다. 롯데는 4월 IPO(기업공개) 상장을 시도했으나 시장의 부정적 반응과 높은 부채비율로 무산됐고, 5월 재무적 투자자의 풋옵션에 따라 약 3,800억 원을 지출해야 했다.

한진은 가장 어렵다. 매출은 2024년 1조 3,848억 원으로 계속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은 59억 원에 불과한 0.4% 수준의 마진율을 기록했다. 약 2,800억 원을 투자한 대전 메가허브 터미널이 2024년 1월부터 가동되면서 감가상각비가 501억 원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투자의 과실을 보기 전에 비용 부담이 먼저 닥친 상황이다.
쿠팡의 등장, 비즈니스 모델의 혁명

쿠팡의 등장이 획기적인 이유는 단순히 경쟁자가 하나 더 늘었기 때문이 아니다. 쿠팡은 기존 택배사들과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 모델로 시장에 진입했다.

2014년 로켓배송으로 시작한 쿠팡의 택배 사업은 자체 직매입 상품의 배송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2021년 택배 면허를 취득한 후 2023년부터 '로켓그로스' 서비스로 확대했다. 이는 오픈마켓 판매자들의 상품 배송, 보관, 포장, 재고관리 등 전체 물류 과정을 담당하는 3자 물류(3PL) 서비스다. 연간 20조 원대의 마켓플레이스 물량이 기존 택배사에서 쿠팡으로 대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쿠팡의 '엔드투엔드' 시스템이 핵심이다. 일반 온라인쇼핑의 배송 과정은 제조업체→유통업체→도매→소매→배송업체→소비자 등 최소 7단계 이상을 거친다. 하지만 쿠팡은 직매입과 자체 물류센터, 배송 네트워크를 통해 이 과정을 대폭 단축했다. 결과적으로 당일배송, 익일배송, 심야배송이 가능해졌고, 소비자 경험이 완전히 달라졌다.

비즈니스 모델의 전투: 대리점 vs 직고용

쿠팡과 전통 택배사의 근본적 차이는 운영 구조에 있다.

전통 택배사는 대리점 위탁 모델을 사용한다. CJ대한통운, 롯데, 한진 모두 택배 기사를 대리점 형태로 관리한다. 운영 비용이 낮고 유연하지만, 서비스 품질 통제력이 약하고 배송 속도를 완벽히 보장하기 어렵다. 택배 기사 과로사 문제가 반복되면서 2020년 사회적 합의에 따라 분류 전담 인력을 대거 투입했으나, 이는 인건비 부담만 증가시켰다.

쿠팡은 자체 직고용 방식을 택했다. 로켓맨이라 불리는 배송 기사들은 쿠팡의 직원이다.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은 크지만, 배송 속도와 품질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 쿠팡이 365일 익일배송을 보장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구조 때문이다.

물류 인프라 투자 방식도 다르다. 전통 택배사는 허브 중심의 택배망을 구축했다. 한편 쿠팡은 주문 기반의 이커머스 통합 물류망을 구축했다. 쿠팡 플렉스, 패커, 풀필먼트 센터 등 각 단계별 최적화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수익 모델도 구조적으로 다르다. 전통 택배사의 주 수익은 택배 수수료다. 반면 쿠팡은 물류를 자체 커머스 경쟁력으로 활용해 배송비를 희생하고 상품 매출이나 구독료 매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 구조적 차이는 경쟁력의 근본적 격차를 만든다.

생존을 위한 투자와 혁신

위기를 자각한 전통 택배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심층분석] 쿠팡의 ‘창조적 파괴’는 어떻게 가능했나


CJ대한통운의 공격적 전략

CJ대한통운은 2025년 '매일오네'라는 주 7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1993년 서비스 개시 이후 30년 유지한 주 6일 근무 체제를 버렸다. 기사들에게는 수입 감소 없는 주 5일 근무제를 제공하는 대신, 소비자에게는 쿠팡과 동등한 배송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CJ대한통운은 대형 이커머스와의 연대 전선을 구축했다. 네이버와의 6,000억 원 규모 상호지분교환(2020년)에 이어, 2024년 신세계그룹(G마켓, SSG닷컴)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알리익스프레스와도 기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메리츠증권 추정에 따르면 매일오네 도입 시 시장 점유율이 최대 9.7%p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화 투자도 지속되고 있다. 매년 2천억~3천억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통해 간선망 효율화를 이루고, 인건비 부담을 상대적으로 잘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들이 먹혀드는 바, 다른 택배사의 단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을 6%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심층분석] 쿠팡의 ‘창조적 파괴’는 어떻게 가능했나


롯데글로벌로지스의 특화 전략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롯데 그룹의 시너지를 활용한 특화 물류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2차전지와 수소 분야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헝가리에 전기차 배터리 물류 거점을 구축해 동유럽 물류망을 확보했고, 폐배터리 회수부터 재활용까지 전체 밸류체인을 아우르는 물류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메가허브 자동화 시설과 디지털 전환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필드로 같은 로봇 전문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로봇 배송 상용화를 준비하는 중이다. 더불어 '약속배송' 서비스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시간대 배송을 지원하면서, 2027년까지 고객사를 28개에서 178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진의 다각화 전략

한진은 택배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항만하역, 육상운송, 국제 물류 사업을 고르게 영위하는 종합 물류 기업으로서 국내 효율화, 해외 확장, 디지털 전환의 세 축을 전략적으로 운영 중이다. 2024년 대전 스마트 메가허브 가동으로 인한 단가 절감 효과를 보고 있고, 해외 물류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현재 전 세계 22개국 40여 개 거점을 확보하며 포워딩과 해외 운송망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택배 사업의 0.4% 수준의 마진율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해외 확장으로 보상할 수 있는 수준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미래의 택배 산업… 기술과 플랫폼의 시대

국내 택배 산업은 급속한 변화에 직면했다. 앞으로의 경쟁은 배송 속도뿐만 아니라 기술 혁신에서 결정될 것이다.

자동화와 첨단 기술의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는 2025년 1월부터 택배 운송수단으로 드론과 로봇을 허용했다. CJ대한통운은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개 '스팟'을 배송 현장에 테스트하고 있으며,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자율주행로봇 '개미'의 2단계 실증을 완료했다. 라스트마일 로봇 배송 시장은 2023년 9억 달러에서 2030년 42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22.7%에 달한다.

AI 기반 데이터 분석과 공급망 최적화가 차별화의 핵심이 될 것이다. 수요 예측부터 경로 최적화까지 AI 기술은 물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CJ대한통운이 개발한 택배 시스템 '로이스 파슬'이 하루 2,000만 건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처럼, 데이터 기반 경영이 경쟁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국내 택배 시장의 성숙화 극복을 위한 해외 확장도 가속화될 것이다. CJ대한통운은 미국, 인도, 베트남 등에서 물류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진은 중동 시장 개척에 나섰다. 글로벌 이커머스 물류 허브로서의 역할이 국내 시장 경쟁 과열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과 전통 택배사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쿠팡이 연내 CJ대한통운의 물량을 넘어 업계 1위를 확고히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의 주 7일 배송, 네이버·신세계 등 대형 이커머스와의 연대, 공격적 해외 확장 등은 단순한 순위 변동보다 더 복잡한 시장 구조를 만들 것이다.



택배는 이제 플랫폼이다

국내 택배 산업은 전환기를 맞이했다. 단순히 상품을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옮기는 서비스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공급망 관리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때 대기업들이 단순한 마진율 때문에 택배 사업을 전략적 인프라로 간주했다면, 이제는 그 전략적 가치가 훨씬 크게 평가되고 있다.

CJ대한통운의 6% vs 한진의 0.4%라는 극명한 마진율 차이는 단순한 수익성 지표가 아니다. 이는 기업의 기술 수준, 투자 역량, 시장 이해도, 고객 기반의 차이를 모두 반영한다. 쿠팡의 등장은 기존 시장의 약점을 노출했고, 생존을 위한 경쟁의 무기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제 택배는 더 이상 택배사들만의 게임이 아니다. 이커머스 플랫폼, 기술 혁신, 해외 네트워크, 데이터 분석, 자동화 시스템이 모두 하나로 얽혀 있는 플랫폼 경쟁의 중심에 택배가 서 있다. 이 새로운 게임에서 누가 승리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물류 산업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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