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첫 금투협회장 연임에 도전장을 낸 서유석 회장.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함께 출범한 한국금융투자협회는 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선물협회를 통합해 탄생했다. 이후 16년간 한국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최대 금융단체로 자리매김하며, 협회장의 위상과 처우 역시 괄목할 만한 변화를 거듭해왔다.
초대 황건호부터 6대 서유석까지, 영광과 시련의 역사
금융투자협회 초대 회장은 황건호 전 회장(2009~2012)이 맡았다. 1976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금융투자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황 초대 회장은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며 협회의 기틀을 다졌다. 자본시장법 제정과 글로벌 진출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임기 말 전국사무금융노조로부터 업계 대표 자격 논란에 휘말렸다. 2011년 노조는 주식워런트증권(ELW) 영업 비리와 수수료 경쟁 심화 속에서 협회가 침묵한다며 황 회장의 연임을 반대했다.
3대 황영기 회장(2015~2018)은 씨티은행을 거쳐 제일투자신탁증권, PCA투자신탁운용 등을 역임한 금융전문가로, 비교적 안정적인 협회 운영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4대 권용원 회장(2018~2019)의 임기는 금융투자협회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기술고시 21회 출신으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20여년간 근무한 후 키움증권 대표를 거쳐 협회장에 올랐던 권 회장은, 운전기사와 임직원에 대한 폭언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되며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사과문을 냈지만 사무금융노조의 사퇴 요구가 이어졌고, 2019년 11월 6일 서초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5대 나재철 회장(2020~2022)은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으며 임기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대신증권 사장 재임 시절 발생한 문제였지만 협회장으로서의 도덕성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업계에서는 나 회장의 소통 부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고, 이는 차기 선거 후보들이 모두 '소통'을 강조하는 배경이 됐다.
최초 운용사 출신 서유석, 연임 도전 나서
현재 6대 서유석 회장(2023~현재)은 금융투자협회 역사상 최초의 자산운용사 대표 출신 회장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를 역임한 서 회장은 2022년 12월 선거에서 65.6%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어려운 금융투자업계 분위기를 의식해 취임식도 생략하고 바로 업무에 착수했다.
특히 2024년부터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발맞춰 해외 출장을 적극 다니며 한국 증시를 알렸다. 일본 증권업협회장과의 간담회, 몽골 자본시장 세미나 개최 등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2년 8개월간 16차례(18개국, 1억5,700만원 지출) 해외 출장을 다닌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방만경영' 지적도 제기됐다.
이번 공모에 연임 도전에 나선 서 회장에 대한 업계 평가는 엇갈린다. 한 소형자산운용사 대표는 "서 회장에 대한 평판이 좋아 연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한 반면, 다른 운용사 대표는 "업계 입장 전달에 소극적이었다는 실망감이 있어 연임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대 금융투자협회장 중 연임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전임 회장은 고문으로 위촉 각종 편의 제공
금융투자협회장의 보수는 국내 금융 관련 협회장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강준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장 연봉은 7억1,200만원으로, 은행연합회장(7억3,000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이는 여신금융협회장(4억5,000만원), 생명보험협회장(4억4,400만원), 손해보험협회장(3억9,300만원)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퇴임 후 처우다. 금융투자협회는 정관에 '고문' 제도를 두고 있어, 전임 회장을 고문으로 위촉해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고문료는 물론 개인사무실, 개인비서, 차량, 운전비서까지 지원된다. 다만 정관상 고문 임명 대상을 전임 회장으로 명시하지 않아 '초호화 전관예우' 논란이 제기됐다.
강준현 의원은 "회장의 고액보수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퇴임한 뒤에도 명확한 규정 없이 예우성 지원이 이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사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협회가 방만경영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방치도 원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금융투자협회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마지막 종합검사는 11년 전인 2014년 10월에 실시됐다.
업계 출신 민간 리더십, 선거 방식이 만든 차별화
그럼에도 금융투자협회가 다른 금융 협회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협회장 선출 방식이다.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이 관료나 정치인 출신 회장으로 '낙하산 인사', '관피아' 비판을 받아온 반면, 금융투자협회는 민간 기업인 출신이 협회장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협회장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신탁사 등 정회원사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다. 투표권은 회사별 분담금 비중에 비례해 배분되며,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지분율이 약 10%로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선출 방식 덕분에 금융투자협회는 정치적 입김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시장 친화적인 리더를 선택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투자협회장은 업계 실정을 잘 아는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며 "직접 선거 방식이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283조에 따라 설치가 의무화된 자율규제기관이다. '회원 상호 간의 업무질서 유지 및 공정한 거래를 확립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금융투자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협회의 주요 업무는 회원 간의 건전한 영업질서 유지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자율규제, 회원의 영업행위 관련 분쟁 자율조정, 주요직무 종사자의 등록 및 관리 등이다. 2025년 현재 정회원 148개사를 포함해 총 257개 회원사를 거느린 국내 최대 금융단체로 성장했다.
여의도에 위치한 금투센터 앞에는 신현중 서울대 미대 교수가 제작한 황소상이 서 있다. 상승장을 상징하는 황소처럼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을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역대 회장들이 겪은 불행을 두고 '황소의 저주'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가 나돌기도 한다.
19일 공모 마감 후 본격 선거전, 1월 새 회장 선출
금융투자협회는 10월 28일 제7대 협회장 선출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완료했다. 11월 4일부터 19일 오전 10시까지 후보자 공모를 진행 중이며, 후보추천위원회는 1차 서류 심사와 2차 면접 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자를 선정한다. 선정된 최종 후보자들은 회원총회 선출 투표를 통해 제7대 회장으로 선임된다.
차기 협회장의 임기는 3년(2026년 1월 1일~2028년 12월 31일)이다. 코스피가 사상 최초 4000선을 돌파하고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와 밸류업을 강조하는 만큼, 차기 협회장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거래세 인하, 방판법 개선 등 산적한 과제가 많다"며 "차기 협회장은 대형사뿐 아니라 중소형사 이익도 균형있게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6년 역사 속에서 금융투자협회장의 위상은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 7억대 고액 연봉과 퇴임 후 고문 예우라는 화려한 처우 이면에, 업계 이익 대변과 투자자 보호라는 무거운 책임이 놓여 있다. 19일 공모 마감 이후 본격적인 선거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차기 협회장이 누가 되든,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이끌 탁월한 리더십과 소통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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