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샘 알케미랩 대표.
이들은 왜 “AI”라는 말만 들으면 표정이 굳을까? 다들 AI 분야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인지라, AI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AI는 원리는 단순한데 비해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세상을 붕괴시킬 핵폭탄에 준하는 힘을, 경력 1년만 되어도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서 인공지능 개발 강사도 하는지라,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내가 직접 이들을 키워내고 있다.)
그런데 AI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은 AI 개발자)의 주장에는 치명적인 전제가 있다. 문제의 원인을 AI 자체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원인을 알았으면 제거하면 그만일 텐데, AI를 제거한다고 이들이 인지한 문제가 사라지지도 않을 뿐더러, AI를 통제하거나 제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AI에 대해 누구보다 큰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옥스퍼드대의 마크 그레이엄 교수는 그의 저서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에서, AI 기업들이 위기의식을 고취하는 행위가 어쩌면 신종 마케팅일 뿐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왜 AI의 확산을 두려워하는 걸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노동의 기회가 박탈될지 모른다는 공포일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거의 유일한 ‘정답’처럼 받아들여진 시대에서 노동은 자본을 키우는 재료로 취급되기 쉽다. 경제학적으로 노동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행위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요즘 누가 “남에게 도움을 주었으니 정당한 대가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남을 돕기 위해 일하고 급여를 수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급여를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남을 돕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자유’가 자본가의 자유를 더 많이 의미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는 이 불편한 편리함을 죽을 때까지 추구해야 하고, 불편함은 편리함보다 더 빠르게 커져만 간다.
답은 성장주의다. 우리는 성장해야 하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기 때문이다. 왜냐고?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성장이 뒤처지면 또다시 임진왜란 같은 비극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듯하다. 이 공포는 국가 차원만의 것이 아니다. 평범한 회사원의 삶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승진하지 않으면 밀려나고, 밀려나면 삶이 무너진다는 공포가 실제 이상으로 깔려 있다 보니 야근은 일상이고, 여전히 과로사도 존재한다. (어쩌면 올리버 트위스트 시대보다 더 힘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성장주의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래전 멜서스는 에너지와 식량 부족을 지적하며 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멜서스는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가 예언한 방식의 붕괴가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알 수 있다. 자연을 소비하면서 넘겼다. 좌우를 막론하고 신자유주의에 흠뻑 젖어버린 우리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연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비겁함을 마음 한편에 숨긴 채 살아왔다. 그리고 그 비겁함을 덮기 위해 멜서스를 조롱한다.
이제 성장주의는 자연을 착취할 대로 착취했고, 다음 대상은 노동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훨씬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 이번에는 ‘정말로 내가’ 착취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너무 늦었다. 글로벌 노조 연대를 말하지만, 내게는 AI를 없애자는 주장보다도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사회’라는 이름의 기차는 낭떠러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이대로라면 추락은 예정된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뿐이다. 너무 빨라져서 뛰어내리지조차 못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내려야 한다. 이걸 “탈성장”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탈성장은 어떻게 하는 걸까? 결국 몇 가지를 ‘체감’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중국이 우리보다 잘살게 되어도 된다는 것(오히려 잘살수록 전쟁을 일으킬 유인은 줄어든다). 직장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나는 급여를 타기 위해 비루하게 버티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행복은 도움을 주고받을 때 온다는 것. 그러려면 주는 법뿐 아니라, 받는 법도 배워야 한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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