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책 속의 문자가 아니다. 읽고 뜻을 해석하는 문자도 아니다. 색이 되고 선과 면이 되어 공간을 점유한 한글이다. 전남 나주 송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금보성 비엔날레가 주목되는 이유다.
한글을 현대미술의 소재로 삼은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금보성은 한글을 40여 년 작업을 관통하는 조형언어로 다뤄왔다. 자음과 모음을 해체하고 재결합해 문자를 색과 기호, 공간으로 전환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대형 회화와 설치가 공간을 점유하고 관람객이 그 사이를 이동하면서 한글은 하나의 시각적 환경이 된다. 관람객은 한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글의 숲’을 걷는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나주라는 장소다.
금보성 비엔날레는 이 방향을 뒤집는다.
서울에서 만들어 지역으로 보내는 전시가 아니라 나주에서 작업하고, 나주에서 발표하고, 그 이야기를 다시 서울과 세계로 보내려 한다. 나주의 선택은 단순한 전시장 선택이 아니라 문화의 이동 방향을 바꾸는 실험인 셈이다.
그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은 미디어다.
지역 문화행사는 대체로 행정기관의 홍보와 방송·신문·광고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작가는 작품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관객과 직접 연결하며 자신의 미디어를 통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금보성 비엔날레에서는 유튜브와 SNS, 예술가 네트워크와 문화언론이 하나의 독립적인 문화 플랫폼처럼 움직인다.
그 중심에 ‘100만 문화의병’이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 구조다. 콘텐츠를 본 사람이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고, 나주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이 실제 전시장을 찾는다.
관객이 다시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이는 대중음악의 팬덤이 음악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공유하며 새로운 청중을 만들어내는 현상과 닮아 있다. 미술과 대중음악은 다르지만 중앙 미디어의 일방적인 전달 없이도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나주를 소재로 만든 노래 〈나주야〉의 100만 조회는금보성이 갖은 문화의 선한 영형력이다.
미술이 음악을 낳고, 음악이 도시를 알리고, 도시를 찾아온 사람들이 다시 사진과 영상을 생산한다. 하나의 작품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전시장을 넘어 도시의 문화 이미지로 확장되는 것이다. 나주의 어떤 행사도 100만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금보성 개인의 힘으로 그 이상을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었다.
미술관 하나를 짓는다고 문화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머물고 작품을 만들며, 관람객이 찾아오고 주변 문화공간과 지역 상권이 연결되는 순환이 지속돼야 한다. 문화는 시설이 아니라 관계의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금보성 비엔날레가 던지는 질문도 결국 여기에 있다.
문화의 중심은 누가 결정하는가.
서울인가. 방송인가. 언론인가. 행정인가.
아니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스스로 확산시키며 사람을 움직이는 창작자와 공동체인가.
디지털 시대에는 지역에서도 세계를 향해 콘텐츠를 발신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창작자가 미디어가 되고,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문화의 전달자가 된다.
그렇다면 지역문화의 경쟁력은 서울의 성공한 행사를 복제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지역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을 세계와 연결하는 자생력에 있다.
한글이 나주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 한글은 나주에 머물지 않는다.
한글에서 미술로, 미술에서 음악으로, 음악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도시로. 그리고 나주에서 세계로.
금보성 비엔날레가 실험하는 것은 결국 하나의 전시를 넘어선다.
문화가 중앙에서 지역으로 내려오던 오래된 길을 거슬러, 지역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이다.
[글로벌에픽 이성수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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