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KBS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산자락을 따라 나있는 미로 같이 좁은 골목길과 오래된 집들이 고스란히 그 모습을 지키고 있는 전형적인 달동네였다. 1950년 전쟁 직후, 산비탈면에 지어진 자그마한 판잣집 1천여 동. 삶은 척박했고, 또 힘겨웠다. 방 한 칸에 주방 한 칸, 10평이 채 안 되는 집에 7명씩 되는 가족들이 모여 살았고, 집집마다 화장실과 수도를 설치할 여건이 안 돼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공동화장실과 공동 우물을 사용했다. 일터와 학교에 가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계단과 가파른 언덕길을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 ‘가난한 동네’라는 오명이 싫어 감천에 산다는 사실을 숨길 때도 많았다.
2009년, 그런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재개발이 중단되며, 무작정 건물을 허물고 새로 올리는 대신 ‘보존’과 ‘재생’에 초점을 맞춘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된 것이다. 주민들과 지역 예술가, 지자체는 마을을 살려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마을 곳곳엔 예술 작품들이 설치됐다. 계단식 주거형태,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마을전경, 사통팔달의 미로미로 골목길까지. 한 때는 가난의 상징과도 같았던 특색 있는 경관에 문화 예술이 가미되며, 감천문화마을은 연간 250만 명의 국내외 방문객이 다녀가는 대한민국 대표 명소가 되었다.
■ 특별한 마을을 만든 특별한 마음
빈집만 자꾸 늘어가는 상황에서 마을이 활기를 찾은 건 참 반가운 일이었지만, 갑작스런 변화에 대응할 충분한 대안이 없는 탓이었다. 척박한 달동네를 문화마을로 만든 건 마을 구성원들의 지혜. 주민들과 상인들은 다시 머리를 맞댔다.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마을의 주인은 주민이다’,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막을 방법은 없으니 주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불편을 해결해주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감천문화마을만의 주민환원사업이 시작되었다. 감내빨래방을 만들어 이불 세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빨래를 대신해주고, 감내작은목간을 만들어 관내 어르신들이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편히 목욕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오래돼 벗겨진 벽면의 페인트를 무상으로 칠하고, 마을지기와 만물수리공이 나서 주민들이 생활하며 겪는 크고 작은 불편들을 처리했다. 관광객들이 몰리며, 임대료 역시 상승 기미를 보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위기 앞에서 지자체에도 힘을 보탰다.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마을에 프랜차이즈 업체의 입점을 불허한 것이다. 그렇게 감천은 편의점 하나, 체인점 카페 하나 없는 청정구역이 되었다. 그렇게 배려 받은 상인들도 뜻을 함께했다. 여느 관광지와 달리 저녁 6시면 일제히 문을 닫는 방법으로, 마을을 다시 주민들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감천은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저녁 6시면 자연스레 관광객들이 빠지고,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던 골목을 산책 나온 주민들이 채웠다. 당장의 이익보다 주민들을 먼저 생각한,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단순히 머리를 맞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맞댔다. 특별한 마을을 만든 건, 특별한 마음들이었다.
■ 함께 살며, 사랑하며
색색의 파스텔 톤 집들과 가파른 계단, 막다른 길 하나 없이 구석구석 나있는 골목의 풍경이 다채롭다. 멀리 보이는 감천항 푸른 물빛에, 마을 곳곳에 설치된 예술작품들까지. 마을 전체를 두고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이르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 뒤엔 척박한 산비탈에 자리 잡아 힘겹게 터를 닦고 삶을 이어온 누군가의 애환이 서려있다.
그러다보니 삶에 큰 욕심도 없다. 작은 것에 크게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 늘 더 많은 걸 바라다보니 불행해지는데, 이곳에선 그럴 일도 없다 싶다. 마을 입구 16통에서 옷수선 집을 운영하는 이창호-장세옥 부부, 두 사람의 가게 앞은 언제나 둘러앉은 마을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16통 어귀에 들어설 참이면, 벌써 저 멀리서 들리는 깔깔 웃는 소리에 미소 짓게 된다. 부부의 수선집은 마을 주민들의 공식 사랑방이다. 두어 사람이 들어서면 가득 찰 정도로 작은 가게, 그러다보니 언감생심 가게 안은 꿈도 못 꾸고 가게 앞에 8개가 넘는 간이 의자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렇듯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가게의 한쪽 벽면엔 열쇠가 가득하다. 동네 사람들의 비상 열쇠를 모두 걸어둔 것이다. 그렇게 모인 16통 사람들은 때가 되면 국수도 삶아 먹고, 저녁도 함께 먹는다. 각자 집에 있는 밥이며 반찬들을 조금씩 챙겨와 나눠 먹으면 근사한 한 끼 식사가 된다. 16통 사람들의 식탁에선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웃음’이 반찬이다. 한 집에서 반찬 하나씩만 모여도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밥상이 차려지니, 이런 풍족한 삶이 어디 있으랴. 밥을 함께 먹는다고 해 ‘식구’, 감천문화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식구’다. 그들은 함께 살며, 사랑하며, 그렇게 닮아가고 있다.
■ ‘통’해서 ‘통’했다
감천은 마을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그때부터, ‘배려’와 ‘나눔’이 존재하던 동네였다. 마을을 다니다보면, 아무리 좁은 골목이라도 막다른 곳이 없다. 골목과 골목은 모두 이어져있다. 모든 골목은 또 다른 골목의 입구이자, 출구가 된다. 어디로 가도 모두 다 통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그 어느 곳도 앞집이 뒷집을 가로 막는 경우가 없다. 앞집 지붕은 반드시 뒷집 아래에 위치해있다.
이런 계단식 구조는 이웃을 배려한 마을 주민들 간의 묵시적 약속이었다. 사는 건 변변치 않았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은 6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이어온 것이다. 감천만의 정情은 주민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삶의 방식은 마을에 새로 들어온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감천에 들어온 지 5년째인 입주 작가 김량경 씨. 그녀가 이 마을에 들어온 후 가장 놀란 건, 의식주만 해결 되면 큰 바람이 없는 마을 사람들의 소탈한 태도였다.
돈을 좇고 명예를 좇아 사는 사람들과 전혀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은 감천 사람들의 모습에 그녀는 크게 놀랐다. 그런 평범한 욕심을 누리는 일, 김량경 씨도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처음엔 낯설기만 하던 마을, 하지만 이젠 그녀도 마을과 점차 닮아 가고 있다. 옆집 할머니와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동네 분들이 마음을 열고 베풀어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작업실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마음을 열고 마을을 소개한다.
김량경 씨의 작업실 옆에 있는 148계단,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눈앞에 별이 보인다고 해서 ‘별 보러 가는 계단’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계단 사이 길에 사는 아주머니는 계단을 오르다 지친 사람을 보면 어김없이 마시며 쉬어가라고 물 한 잔을 건넨다. 이런 고운 마음에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풍광 이상의 감동을 얻고 돌아간다. 사‘통’오달, 막힘없이 ‘통’하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 길에선 다시 누군가의 진심이 ‘통’한다.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은 7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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