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공연은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로 호흡을 맞췄던 연출가 유병은과 작곡가 강진명의 재회작이다. 배우 강성진, 김형균, 구옥분, 김륜호, 엄준식, 김두리, 우한수, 이은미가 출연해 다채로운 서사와 앙상블의 에너지를 전한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는 1872년 발표 이후 150여 년간 인류 문학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모험 소설로 자리매김해왔다. 기술과 시간, 인간의 의지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끊임없이 연극, 영화, 뮤지컬로 재탄생하며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뮤지컬은 원작의 탄탄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시선과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춘 인간 성장 서사로 확장했다. 1897년 런던을 배경으로 단순한 내기 여행을 넘어 정의와 구원의 여정으로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넘버 ‘설레는 이 마음’을 통해 포그는 감정의 변화를 노래하며 사랑을 배우는 로맨틱한 주인공으로 재탄생한다. 또한 원작에는 없던 인물 '라코타'가 새롭게 등장해 억압받은 원주민을 구하는 포그의 모습을 통해 그를 단순한 여행가가 아닌 인류애적 구원자로 확장시킨다. 파스파르투와의 유대, 아우다와의 사랑, 픽스와의 대립 속에서 점차 인간적인 감정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다.
최근 한국 뮤지컬계는 단순한 라이선스 수입을 넘어 해외 원작을 한국형 창작 시스템으로 재해석하는 흐름이 활발하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역시 이러한 방향성 안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글로벌 고전을 한국의 감성으로 새롭게 써내려간 창제작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
특히 2025년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Maybe Happy Ending’이 토니 어워드 6관왕을 달성하며 한국 창작진 중심의 제작 시스템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성과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80일간의 세계일주’ 또한 그 흐름 위에서 K-뮤지컬 스토리텔링의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번 공연이 부산의 100석 규모 소극장에서 첫선을 보이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제약이 아니라 작품의 본질과 성장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창작 전략이다. 뮤지컬은 대체로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장르로, 중대형 극장에서의 초연은 성공 여부가 곧 흥행 성패로 이어지는 구조적 위험을 안고 있다. 이에 비해 소극장은 대본과 음악 중심으로 작품의 핵심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창작의 실험실로 기능한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이러한 소극장 제작 모델을 통해 서사와 음악 중심의 탄탄한 작품 개발이라는 원칙을 실현한다. 관객과의 밀도 높은 만남을 통해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얻고, 그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성장시켜 향후 중대형 극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형 제작 시스템을 지향하는 것이다.
연출 유병은은 "이번 공연은 냉정한 신사가 세상을 돌며 결국 사람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라며 "작은 무대에서 시작하는 도전이지만, 그 안에서 더 큰 인간의 이야기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이번 초연은 작품의 완성도를 중심으로 한 창작 개발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이라는 지역적 기반 위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창작과 실험, 그리고 관객의 호응이 맞물리는 새로운 창작 뮤지컬 생태계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글로벌에픽 신승윤 CP / kiss.sf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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