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1(수)
사진=김기석 변호사
사진=김기석 변호사
[글로벌에픽 이수환 기자]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는 라스즐로 핸예츠는 2010년 비트코인 1만 개로 피자 2판을 주문했다. 당시 비트코인 시세는 약 0.004달러였으나 2021년 11월경에는 7만달러 가까이 오르면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렇게 비트코인은 시세가 급등하면서 전 세계적인 투자 열풍을 일으켰고 일부 국가는 비트코인의 금융 상품성 내지 화폐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비트코인이 거래 수단으로서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관해 세간의 관심이 커졌다.

비트코인은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자산’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지만, 대법원은 “비트코인은 경제적인 가치를 디지털로 표상하여 전자적으로 이전, 저장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가상자산’의 일종으로 사기죄의 객체인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여 비트코인을 ‘가상자산’으로 정의했고, 지난해 12월에 시행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가상자산’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위 판시 내용을 보면 대법원은 가상자산의 ‘재산상 이익’으로의 성격을 인정했으나 ‘재물성’을 인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상자산’이 ‘재물’로 인정되면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있으나 ‘재산상 이익’에 불과하다면 횡령죄가 아닌 배임죄의 객체가 될 뿐이다. 다만 ‘재물’이든 ‘재산상 이익’이든 사기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 즉 타인을 기망하여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편취하면 사기죄로 처벌받는다. 한편 누군가가 착오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타인에게 전송하면 어떠할까? 법무법인 동광 김기석 변호사에 의하면 타인의 예금계좌에 금전이 착오로 송금된 경우 이를 송금받은 사람이 임의로 인출해 소비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김기석 변호사는 “반면, 가상자산이 ‘재물’이 아닌 ‘재산상 이익’에 불과하다면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가상자산을 전송받은 사람(이하 ‘수익자’)이 전송한 사람(이하 ‘권리자’)을 기망한 사실이 없어 사기죄도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권리자가 실수로 전송한 가상자산을 수익자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통상의 도덕관념이나 거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에 검찰은 착오로 전송된 가상자산을 수익자가 임의로 사용한 경우 배임죄를 적용해 수익자를 기소한 바 있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착오로 전송된 가상자산을 수익자가 권리자나 거래소에 반환하지 않고 임의로 사용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위 판결이 내려지자 일각에서는 “착오로 전송된 비트코인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선고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수익자가 신임관계에 따라 권리자의 가상자산을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지위에 있지 않다. 둘째, 가상자산을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 셋째, 착오 송금 시 횡령죄를 인정한 판례를 가상자산에 유추해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 이처럼 착오로 전송된 가상자산을 임의로 소비해도 처벌할 명문 규정이 없으나 대법원은 수익자의 민사상 책임까지 부인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수익자가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권리자 소유의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이상 수익자는 권리자에게 부당이득반환 의무가 있고 이체 경위에 따라 거래소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즉 부당이득반환의 상대방이 권리자든 거래소든 상관없이 착오로 전송된 가상자산의 소유권이나 처분 권한이 수익자에게 귀속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기석 변호사는 “수익자는 처분 권한이 없으므로 착오로 전송된 가상자산을 임의로 처분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거래소는 가상자산이 착오로 전송되면 복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기술적 한계로 전부 복구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이렇게 원물반환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부당이득반환 의무자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 반환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가상자산이 착오로 전송되었으면 가상자산 또는 그에 상당하는 금전을 반환해야 하며 가상자산을 전송받은 날로부터 그 반환 시까지 법정이자 또는 지연손해금이 가산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현재 착오로 전송된 가상자산의 수익자에 대한 형사책임을 규율하는 법적 근거가 없으나 가상자산 거래가 증가하면서 거래관계에 관한 법적 보호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이에 향후 수익자에게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입법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고, 거래소에서 착오로 전송된 가상자산의 보관·관리 의무를 수익자에게 부과하는 약관을 도입한다면 수익자는 배임죄의 죄책을 부담하게 될 수도 있다. 요컨대 가상자산이든 금전이든 타인의 재산이라면 함부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수환 글로벌에픽 기자 epic@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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