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환경부에서 주최하고, 국가환경교육센터, 인하대 문화예술교육원, 글로벌에픽이 공동으로 주관한 ‘2022 환경작가 리더양성 교육과정’에서 나온 시민 환경작가의 기사입니다.“우리 직원들에게 말했는데, ‘산불도 유전적(遺傳的)으로 똑똑하게 진화(進化)한다’고.”
올해 3월, 산불로 무려 1만4140ha가 타고, 1776억700만원의 피해액이 발생한 울진군 김재준 부군수의 말이다. 나는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 문장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다. 생명체인 나무가 아니라 산불?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단순 현상이 유전적으로 진화한다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인가. 산불과 진화. 두 말 사이에 경고하듯 박혀 있는 ‘유전적(遺傳的)으로 똑똑하게’라는 말도. 우리가 모두 알기론 유전적으로 똑똑하게 진화해 온 건 인간일 텐데, 그리고 지금 지구는 인류세 이후 인간의 영향 속에서 생태계를 변동시키며 아슬아슬하게 지속되어왔을 텐데, 결국 우리 모두 인간이 모든 생명의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여겼을 텐데….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바로 산불. 이 공포스럽고 비논리적인 단어의 조합 앞에 이끌려 나는 이에 대한 데이터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올해 3월, 울진에서 시작해 동해안 일대로 번진 산불은 역대 최대의 산림피해를 냈다. 장장 9일 동안 이어진 이 산불로 2만여ha 이상의 산림이 불에 탔다. 원래 동해안은 건조한 특성으로 인해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지역이다. 그런데도 이번 동해안 산불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후와의 연관 가능성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서 올해 2월인 사이 전국 강수량은 평년의 14% 수준이라고 한다. 연관성을 생각해볼 만한 수치이다. 우려되는 점은 동해안 지역을 포함해서 전국적으로 산불 발생 빈도와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목격한 동해안의 초대형 산불이 미국 서부, 캐나다, 시베리아, 서유럽, 호주 등 전 세계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이상 기후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경우, 기후변화로 인한 영구동토층의 붕괴가 그 원인이다. 이상기온으로 얼음이 녹고 토양이 건조해져,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시베리아가 산불에 시름하고 있다. 재작년엔 미국 서부와 캐나다에서는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전 세계에서 비슷한 현상을 보이며 산불이 번지는 상황이다.
산불이 어째서 진화(進化)하는 것처럼 보일까? 기후변화 때문이다. 불이 잘 붙고, 또 잘 번지는 조건으로 변화했기 때문. 정상적 기후라면, 산불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비를 통해 자연스럽게 진화된다. 그리고 타고 남은 잿더미는 수분과 함께 땅에 스며들어 숲을 재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이미 진화(進化)한 산불은 그렇지 않다. 대기는 건조하고 비마저도 오지 않으니 번번이 대형 산불로 이어지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이유는 비구름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고, 이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다. 수증기가 응결되어 물방울로 떨어지려면 온도가 어느 정도 낮아야 하는데,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이 과정이 활발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 형성되고 산불은 점점 거대하게 진화(進化)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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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유엔 환경 계획(UNEP)은 가뭄 증가와 높은 공기 온도, 낮은 상대습도, 강한 바람 등의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진 자연환경이 산불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고 건조해지면서 밤에도 산불 세력이 줄지 않아 피해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린피스는 “이번 울진 산불의 발화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적어지고 대기가 건조해져 작은 불이 큰 산불로 이어진 것은 명확하다”라며 기후변화를 언급했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제5차 보고서(AR5)에서 지구의 기온이 1.5~2.5℃ 증가하면 홍수 및 가뭄으로 20~30%의 생물이 멸종된다고 경고했다. 그 상승세가 더는 꺾이지 않는다면, 기상재해를 비롯한 산불과 같은 재난들은 앞으로 수없이 계속될 것이고, 더 많은 생물이, 그리고 인류까지도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다. 진화(進化)하고 있는 산불은 바로 그 경고이다.
나무의 터전이 없어지면, 우리 삶의 터전도 함께 사라진다. 이대로라면, 산불을 진화(鎭火)할 수는 있겠지만, 산불의 진화(進化)는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유전적으로 똑똑하게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진화(進化)해야 할까? 진화(進化)한 산불을 진화(鎭火)하는 방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똑똑하기에, 그것에 대한 예방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적응하려 하지 말고 더 악화하기 전에 우리의 지능을 이용하여 발전해야 한다. 발전을 위한 실천. 그것만이 우리가 후세대를 위해 진화하는 방법이다.
임아현 글로벌에픽 객원기자 epic@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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