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목)

신입 인턴도 속속 임용 포기…중소 병원 환자들 몰려 병원 "남은 의료진 과부하 임박"…보건의료 '심각 단계' 상향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나흘째 병원을 이탈하면서 수술취소,연기 등 의료대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응급환자가 진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가연일 발생해 환자 피해가 커지진 않을까 병원들은 긴장하고 있다.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보지 못한 환자들이 인근 종합병원 등으로 향하면서 2차 병원 의료진들도 과부하에 걸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오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고 있다.(사진=연합)
22일 오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고 있다.(사진=연합)
23일 오전 아들의 폐 관련 질환으로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50대 보호자는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흉부외과 응급진료를 볼 의사가 없어 기다려야 한다는 병원의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보호자는 "뉴스에서만 보던 전공의 이탈 여파가 이렇게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거란 생각은 못 했다"며 "기다려야 한다고하니 하염없이 그냥 기다리고 있다"고 울먹였다.

충남지역에서 진료받지 못해 대전까지 원정 진료를 받는 사례도 있었다.

대전 유성선병원을 찾은 50대 조모 씨는 "충남에거주하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어지럼증을 호소하시면서 넘어져 아침부터 병원에 전화를 돌린 끝에 겨우 대전까지 모시고 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전공의 근무지 이탈로 전국 종합병원 대부분은 중증·응급 환자 위주로 축소돼 운영되고 있다.

전공의 225명 중 다수가 사직서를 제출한 수원 아주대병원은 정형외과 등 주요 진료과의 신규 외래진료는 아예 불가능한 상태다.

인하대병원과 전북대병원 역시 일부 진료과에서 수술이 예정됐던 경증 환자들에게 수술 시기를 예정일보다 늦추기를 권유하고 있다.

인하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한시적으로 부재중인 상황으로 진료에 일부 차질이 발생할것으로 예상돼 환자와 내원객분들에게 사과드린다고 공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급병원(3차 병원)의 혼란이 이어지자 환자들이 중소병원(2차 병원)으로 몰리면서 평상시보다 2차 병원의 방문 환자가 늘고 있다.

부산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인근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에 대한 문의가 하루여러 건 들어오고 있다"며 "심부전 환자에대한 혈액 투석 등 정기적 치료나 예후를 지켜보는 정도의 증세를 보일 경우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상황인 만큼 중증인 경우에는 우리도 여력이 없어 어렵지만 그렇지 않으면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 한 종합병원에서는 지난 21일 하루 평균 200여명이던내원객이 두배 가량 늘기도 했다.

광주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사태로) 상급의료기관에서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퇴원 환자와 보호자가 2차 병원에 오고자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전공의들의 부재로 응급실도 포화하면서 구급 차량의 응급환자 병원 이송이 지연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난 20일 이후 대전에서만 5건의 구급대 지연 이송 사례가 발생했다.

전날 오후 10시께 정신질환을 앓는 20대 환자 이송을위해 구급대원이 대전지역 종합병원 8곳에 이송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의료진 부재, 진료·연결 불가를 이유로 거부당했다.

부산 역시 평소와 비교해 진료할 수 있는 응급실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상 위급 환자를 이송할 경우 구급차에 탑승한 소방대원과 구급 상황관리센터가 수용할 수 있는 응급실을 확인하는데, 부산소방재난본부는 대원들이 병원을 수소문하는 횟수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소방 당국에서 응급실에 전화를 돌리는 횟수는 전공의 집단 사직사태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늘어났다"며 "다만아직 응급실 앞에서 진료를 거절당하는 등 '뺑뺑이' 사례는없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업무 이탈이 계속되자 이날 보건 의료재난 위기 경보를 '심각'까지 끌어올렸다.

전문의를 응급실 당직 근무에 투입하는 등 전공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환자뿐 아니라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대병원은 전문의 7명(응급 소아과 제외)이 사흘에 한 번꼴로 번갈아서 당직을 서고 있다.

전문의 1명과 전공의 7명이 당직 근무를 하는 방식으로운영돼왔는데 전공의들이 병원을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충북대병원 관계자는 "아직 응급환자를 받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까지는 빚어지지 않았으나사태가 장기화하면 과부하가 올 수밖에 없다"고 상황을 전했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도 "외래 진료나 수술은 평소 교수들의 역할이지만, 병동을 회진하며 처방을 지시하거나 처치하는 역할을 했던 건 전공의들의 업무였다"며 "교수들의 당직 근무가 잦아지는 데다 간단한처치까지 교수들이 맡아야 하니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모든 의료진이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의사면허 정지'나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한 '구속 수사' 원칙을 내세우며 압박하고 있지만 반대 목소리는 좀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오후 10시 기준 주요 94개 병원에서 소속 전공의의 약 78.5%인 8천897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69.4%인 7천863명으로 확인됐다.
올해 의과대를 졸업하고 병원에 인턴으로 처음 입사하는 수련의 중 임용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전남대병원 등에 따르면 오는 3월부터 인턴으로 병원에 입사할 예정이었던 수련의 101명 중 86명이 전공의 사직사태에 발맞춰 임용포기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대 병원에서도 신입 인턴 36명 전원이 임용포기서를 제출했다.
충북대병원에서는 입사 예정인 35명 전원이, 제주대병원에서는 입사 예정인 인턴 22명 중 7명이 임용포기서를 제출했다.
병원 측은 이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대 의사 표시로 전공의 길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다.
전공의 대부분이 의사 증원에 반발해 사표를 내고 병원을 이탈한 상황에서 신입 인턴 수혈이 병원에 숨통을 트여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으나, 인턴들이 임용포기서 행렬에 동참한다면 사태는 더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강원도의사회 회원 수십명은 전날 저녁 강원도청 앞에서 "정부의 부당한 정책 강행으로 의료 서비스가 위기에 처했다"며 촛불을 들고 장례식을 연출했다.
이들은 "의료 서비스의 질과 안전이 저하되는 상황에서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일방적인 정책 강행을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듯 의료대란이 나날이 심화돼 가고 있는 가운데 전공의와 전임의의 수련,근로계약이 갱신되는 이달 말이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유창규 글로벌에픽 기자 yck@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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