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 당일 반려한 건 이례적 조치
공정위는 이날 오전 대한항공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과의 마일리지 통합 방안을 제출받았으나, 오후 2시경 정식 심사 개시 대신 즉시 수정·보완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통합안 제출 당일 보완 요청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제안을 얼마나 문제시했는지를 보여준다.
공정위는 보완 요청 사유로 "마일리지 사용처가 기존 아시아나항공이 제공하던 것과 비교해 부족한 부분이 있고, 마일리지 통합 비율과 관련한 구체적인 설명 등에 있어 공정위가 심사를 개시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3조6천억원 규모 통합 작업
이번 마일리지 통합은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올해 1분기 기준 잔여 마일리지 규모는 대한항공 2조 6205억원, 아시아나항공 9519억원으로 총 3조 5724억원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숫자상의 통합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고객들이 오랜 기간 적립한 마일리지의 가치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12일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한 후 6개월이 되는 이날까지 통합안을 제출하도록 공정위로부터 지시 받았었다. 2022년 공정위가 양사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부과한 시정조치 중 하나로, 각 사 마일리지 제도를 합병 이전인 2019년 말 기준보다 불리하게 바꿔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같은 1마일도 실질 가치 달라
1마일당 가치는 대한항공은 15원, 아시아나는 11~12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탑승 마일리지는 1대1 비율로, 제휴 마일리지는 1대0.7 정도의 비율로 통합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그러나 공정위가 대한항공의 통합안을 즉시 반려한 것으로 볼 때, 대한항공이 제시한 전환 비율이나 설명이 아시아나 이용객들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가 지적한 또 다른 문제는 마일리지 사용처의 축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병을 앞두고 각종 제휴처를 정리하면서 소비자들이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줄어든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와이키키 리조트와의 마일리지 사용·적립 제휴를 종료했고, 지난 3월에는 에티하드항공과의 마일리지 제휴도 중단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서울 신라호텔, 메리어트 등과도 제휴 서비스를 종료했다.
아시아나 역시 지난해부터 CGV와 에버랜드, 모두투어, 이마트 등과 마일리지 제휴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처럼 제휴처가 줄어든 상황에서 통합 마일리지의 사용처까지 기존 아시아나 마일리지보다 부족하다면 소비자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항공 동맹체 이탈 우려도 변수
공정위는 아시아나가 대한항공과 합쳐지며 세계 항공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에서 탈퇴할 경우 소비자들의 항공권 선택폭이 줄어든다는 점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시아나가 가입된 스타얼라이언스는 25개 회원사를, 대한항공이 소속된 스카이팀은 18개 회원사를 보유하고 있다. 고객들은 보유한 마일리지를 각 항공이 속한 동맹체의 다른 항공사 티켓 구매에 사용할 수 있지만, 아시아나가 스타얼라이언스에서 빠지게 되면 다른 24개 항공사의 티켓 구매에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보완 요구에 따라 내부 작업에 착수해 새로운 통합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마일리지 통합 방안 마련의 첫발을 떼게 됐다는 의미가 있으며, 항공 소비자의 기대에 부합하는 통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경청하는 자세로 향후 과정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간은 촉박하다. 스카이패스 회원 약관에 따르면 약관 변경은 3개월의 사전고지 기간에 유예기간 12개월 등 총 15개월이 필요하다. 2027년 1월 통합 항공사 출범을 목표로 한다면 늦어도 오는 9월까지는 공정위의 승인 절차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김광옥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정위 결정은 소비자 권익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엄격해졌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9월 데드라인 앞두고 서둘러 재도전
항공업계 관계자는 "마일리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기업결합 과정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사안인 만큼 소비자들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정위의 보완 요청은 단순히 서류 미비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 보호라는 대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근본적 문제 제기로 해석된다. 대한항공이 어떤 방식으로 아시아나 이용객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양사 고객들의 권익을 균형 있게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통합안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한국 항공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마일리지 통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양사 통합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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