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선필 에프앤가이드 연금 전문위원.
2023년 기준으로 지난 5년간 퇴직연금 적립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93%에 머물고 있다. 다른 연기금들의 수익율에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격차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근로자들의 노후 준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과 호주, 닮았지만 다른 두 제도
이런 문제의식 하에 다양한 개선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디폴트옵션에서 원리금보장상품을 제외하자는 의견부터 일부 선진국처럼 기금형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까지 다양하다. 특히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 제도를 벤치마킹한 '호주형' 도입론이 힘을 얻고 있다.
두 나라의 퇴직연금 제도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차이점들이 드러난다. 우선 제도 구조를 보면, 우리나라는 확정급여형(DB)의 비중이 53.6%로 높은 반면, 호주는 확정기여형(DC)이 80.6%를 차지한다. 법정 납입률도 우리나라가 8.33%인 데 비해 호주는 12%로 더 높다.
개인 납입금 한도 역시 우리나라는 연 1,800만원이지만, 호주는 약 2,450만원(2만7,500호주달러)으로 더 관대하다. 이런 차이들은 각국의 경제 상황과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것으로, 단순히 제도를 베껴오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준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중도 인출 규정에 있다. 우리나라는 이직 시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생활비나 대출금 상환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해지도 가능하다. 이는 퇴직연금이 진정한 의미의 '연금'이 되지 못하는 핵심 원인이다.
반면 호주는 만 55세에서 60세 이후에만 인출이 가능하다. 기금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증질병이나 사망, 심각한 재정적 위기, 영구적 퇴직, 소액 등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조기 인출을 허용한다. 이직을 해도 통산기능이 적용되어 기존 계좌를 유지하거나 새 계좌로 이체할 뿐, 임의해지는 불가능하다.
이런 차이점들을 종합해보면, 호주식 기금형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른다. 법적, 제도적 인프라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개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성공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화려한 해외 사례를 무작정 따라하기보다는,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단계별로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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