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폭발적 성장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코로나19 이후 집밥 문화의 정착,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 외식비 상승으로 인한 대체재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 니즈의 급변이 작용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시장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HMR은 단순히 '간편함'을 팔던 1세대 통조림, '편의성'을 강조하던 2세대 냉동식품, '집밥 구현'을 외치던 3세대 컵밥 시대를 넘어 '건강 + 프리미엄'을 담은 4세대로 진입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CJ제일제당과 동원F&B라는 두 거대 식품 그룹이 서로 다른 전략을 펼치며 한식 HMR 시장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규모의 경제 vs 전문성
2024년 CJ제일제당의 식품사업부문은 11조 3,53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6,201억 원에 달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해외식품사업이 5조 5,814억 원(약 49.2%)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역대 최대 수준이며, 사실상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추월하는 구조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분기별 현황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2024년 3·4분기 해외 식품 사업 매출은 1조 4,03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했고, 누적 매출은 4조 1,027억 원에 달했다. 올해 해외 매출이 50%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미만 해도 4조 7,138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유럽은 처음으로 연간 1,000억 원을 돌파했다.
국내 식품사업은 5조 7,716억 원으로 1.8% 감소했지만, 이는 소비 심리 침체의 영향이 컸고 햇반 같은 주요 가공식품의 견조한 성장과 온라인 채널 확대로 부진을 상쇄했다.
동원F&B의 식품사업 구조
동원F&B는 2024년 3분기 기준 연결 매출 1조 2,203억 원, 영업이익 669억 원을 기록했으며, 전년 동기 대비 매출 1.1%, 영업이익 6.1% 증가했다. 참치액과 명절 선물세트 판매가 증가했고, HMR과 유제품 부문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했다.
CJ제일제당의 매출 규모는 동원F&B의 약 9배에 달한다. 그러나 성장률 측면에서는 동원F&B의 영업이익 증가율(6.1%)이 업계 평균을 상회한다. CJ제일제당이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글로벌 확장을 추구하는 반면, 동원F&B는 프리미엄 세그먼트와 한식 정통성에 집중하는 '틈새 전략'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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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R 시장 점유율 전투: 절대 우위의 CJ vs 차별화의 동원
국내 시장 CJ제일제당의 압도적 점유율
2024년 기준 국내 판매액 순위는 명확하다. CJ제일제당이 절대 1위이며, 오뚜기, 동원F&B, 신세계푸드 순이다.
즉석조리식품(국·탕·찌개·죽 등)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의 점유율은 약 49.5%에 달한다. '비비고' 브랜드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다. 비비고의 누적 매출은 국내외를 합쳐 3조 원에 달하며, CJ제일제당의 식품 매출을 견인하는 핵심 엔진이다. 특히 상온 국물요리 시장을 개척한 후 냉동 국물요리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틈틈이 시장을 장악했다.
빙과류, 냉동간편식, 만두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도 CJ제일제당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햇반이라는 상징적 브랜드만 해도 즉석밥 시장의 절대강자다.
동원F&B의 프리미엄 공략
동원F&B는 절대 규모에서는 뒤지지만, '양반' 브랜드를 통해 차별화를 추진하고 있다. 1986년 출시된 양반죽은 지난 10월 누적 판매량 기준 10억 개를 돌파했다. 33년 만의 이정표다. 이는 간편식의 원조로서 신뢰도가 높다는 증거다.
2021년부터 동원F&B는 양반 브랜드를 '한식 HMR 메가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기존 김·죽·국탕·찌개·김치에서 즉석밥, 전통음료, 적전류까지 제품 영역을 확장했다. 새로운 슬로건 '일상 풍류식'은 바쁜 현대인의 삶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철학을 담았다.
2024년 1월 동원F&B는 '양반 수라 시그니처'를 론칭했다. 고려인삼, 완도 전복, 횡성 한우 등 국내산 고급 특산물을 사용한 하이엔드 라인업이다. 기존 프리미엄 라인 '양반 수라'보다 한 단계 강화한 제품군으로,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식재를 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3종(고려인삼갈비탕, 완도전복미역국, 한우설농탕)이 출시되었으며, 전자레인지나 냄비에서 5분이면 완성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술 차별화다. 동원F&B는 광주공장에 400억 원 규모의 신규 설비를 구축했다. 레토르트 제품의 약점인 장시간 열처리로 인한 식감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열처리 시간을 기존 대비 20% 이상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건더기가 흐물흐물해지거나 무너지는 문제를 개선한 것이다. 이는 일견 작은 개선처럼 보이지만, 프리미엄 제품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동원F&B는 또한 2024년 10월 '양반 비빔드밥'으로 한국식품연구원이 주관하는 '식품기술대상'에서 기술혁신상을 수상했다. 밥알의 식감과 자연 재료의 풍미를 극대화하면서 상온에서 12개월 보관이 가능한 기술로 평가받은 것이다.
신제품 전략: 건강 vs 편의성의 균형
CJ제일제당의 '더 비비고' - 건강간편식 전문화
CJ제일제당의 가장 주목할 신제품 전략은 '더 비비고' 론칭이다. 2024년 11월, CJ제일제당은 3년에 걸친 R&D 끝에 '건강간편식(Healthy HMR)' 전문 브랜드 '더 비비고'를 공식 론칭했다.
기존 '비비고'가 '제대로 만들어 맛있는 한식'으로 집밥을 대체했다면, '더 비비고'는 '건강을 중심으로 설계된 균형 잡힌 한식'을 표방한다. 저나트륨 기반 풍미보존 기술과 원물 전처리 최적화 기술을 개발해 단백질과 식이섬유는 더하고 나트륨과 콜레스테롤은 줄였다.
출시 제품은 국물요리 4종, 덮밥소스 4종, 죽 4종 등 총 12종이다. 한우곰탕, 흑임자죽, 참숙 두부덮밥 등 건강에 초점을 맞춘 라인업이다. 식약처 조사 결과, 시중 찌개류 HMR 687개의 나트륨 함유량이 하루 기준치 절반에 달하면서도 다른 영양소는 1일 기준치 10% 미만에 불과했다는 문제를 직접 해결한 것이다.
출시 첫 달 매출이 기존 HMR 월 평균 매출 대비 70% 증가했다. 가격이 기존 비비고 제품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건강을 우선시하는 추세가 반영된 결과다.
또한 CJ제일제당은 2024년 9월 '비비고 통새우 만두'로 500만 개 판매를 돌파했으며, '통오징어만두'를 비롯해 차별화된 신제품을 지속 출시하고 있다. 외식 메뉴를 집에서 즐기는 '낙곱새전골'과 '곱창순대전골' 같은 전골요리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동원F&B '양반'을 중심한 포트폴리오 강화
동원F&B는 2025년 2월 '양반' 브랜드 리브랜딩을 발표했다. 배우 정해인이 출연한 신규 CF는 '양반으로 풍류가 산다'는 슬로건으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표현했다. 가수 송창식의 '가나다라'를 배경음악으로 활용해 흥을 더했다.
동원F&B는 신제품 출시와 제품 디자인 리뉴얼을 강화하면서 MZ 세대 소비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SNS 채널도 개설했다. 특히 전주 한옥마을과 협업해 '양반 일상 풍류식' 선물세트를 구성했으며, 한옥마을 게스트하우스 74곳에서 투숙객들에게 제공될 예정이다.
기술 측면에서는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와 건강한 식문화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반 제품군의 품질 강화와 헬스&웰니스 식품 트렌드를 반영한 신제품 개발이 목표다. 이는 대학의 영양학 연구와 동원F&B의 제조 노하우를 결합하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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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략: K-푸드 세계화의 전략적 차이
CJ제일제당의 극공세: 비비고 글로벌 전략
CJ제일제당의 글로벌 전략은 한 마디로 '적극적 영토 확장'이다. 해외 법인 수는 약 60개국에 달하며, 현지 생산시설은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에 35개(건설 중 2개)에 이른다. 2027년 완공 예정인 북미 아시안 푸드 신공장은 축구장 80개 규모(57만 5,000㎡)로 북미 최대 규모의 아시안 식품 제조시설이 될 예정이다.
동원F&B의 신중한 글로벌 접근
동원F&B는 상대적으로 글로벌 공략이 제한적이지만, 프리미엄 포지셔닝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양반 브랜드의 해외 수출 이력은 제한적이지만, 최근 수산 HMR 제품인 '간편요리 KIT'(골뱅이 비빔면, 골뱅이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등으로 수산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2024년 '양반 비빔드밥'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SID(제품제조공정) 등록을 완료해 수출을 앞두고 있으며, 12개월 상온 보관이 가능한 기술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 분할의 양상
흥미롭게도 두 회사는 시장을 점진적으로 분할하는 양상을 보인다. CJ제일제당은 '대중적·글로벌·시장 다양화' 방향으로, 동원F&B는 '프리미엄·국내 집중·한식 정통성' 방향으로 차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3월 비비고 만두를 시작으로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했으며, 현재는 유럽, 중동, 오세아니아까지 영토를 넓히고 있다. 한편 동원F&B는 양반 수라 시그니처처럼 프리미엄 라인을 강화하면서 가격대별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현주소와 향후 전망
CJ제일제당의 향후 전략
CJ제일제당은 글로벌 매출 50% 달성을 목표로 '신영토 확장'을 계속할 전망이다. 2024년 해외 식품사업이 49.2%에 달했으므로 내년 달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 유럽 신공장 건설, 헝가리 법인 설립, 사우디아라비아 할랄 사업 확대 등 중동 진출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비고의 세대 업그레이드가 핵심이다. 만두에서 시작한 K-푸드 열풍을 우동누들, 소바바치킨, K-스트리트푸드로 확장하고 있다. 2024년 11월 유럽에서 비비고 우동누들 판매를 시작했으며, 126조 원 규모의 글로벌 누들 시장 공략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동원F&B의 향후 전략
동원F&B는 양반 브랜드의 메가 브랜드화를 본격 추진할 전망이다. 신CF 런칭, SNS 채널 개설, 전주 한옥마을 협업 등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프리미엄 라인 확대와 서울대학교 같은 학계와의 협력을 통해 건강한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점진적으로 고급화된 소비자층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수산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도 계속될 것이다. FDA 등록을 완료한 양반 비빔드밥의 수출 본격화와 해외 OEM 수주 확대가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강자의 멀티플레이' vs '강자의 틈새 전략'
한국 HMR 시장에서 벌어지는 CJ제일제당과 동원F&B의 경쟁은 단순한 시장 점유 싸움을 넘어선다. 이는 한식의 글로벌화 vs 한식 정통성의 보존, 규모의 경제 vs 품질의 우월성, 다각화 전략 vs 특화 전략의 근본적 대결이다.
CJ제일제당은 "K-푸드의 세계화를 주도하겠다"는 차원에서 공격적이다. 이미 북미에서 4조 원대 매출을 기록했고 유럽도 1,000억 원을 넘었다. 2027년 완공되는 북미 신공장과 향후 헝가리 신공장까지 고려하면, CJ제일제당의 글로벌 야망은 명확하다.
반면 동원F&B는 "한식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 프리미엄으로 고도화하겠다"는 철학을 고수한다. 양반 브랜드 40년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세그먼트를 주도하고, 기술 혁신으로 제조 기술력에서 우월성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시장의 미래는 둘 다 맞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이후 전 지구적 K-푸드 열풍은 분명 계속될 것이고(CJ제일제당 유리), 동시에 건강과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소비 문화도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동원F&B 기회).
결국 4세대 HMR의 시대는 "CJ제일제당이 글로벌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되, 동원F&B가 프리미엄 세그먼트에서 강력한 입지를 유지하는" 양극화 구조로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한식 HMR의 미래는 단순히 '편한 밥'에서 '건강한 밥', 그리고 '글로벌한 밥'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CJ제일제당의 선도력과 동원F&B의 차별화 전략이 한국 식품산업을 어디로 이끌지 귀추주목할 만하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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