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5.11.06(목)

전미경, ‘꽃과 씨앗’ 존재를 꿰매는 회화

이수환 CP

2025-11-06 10:32:00

사진제공=금보성아트센터

사진제공=금보성아트센터

[글로벌에픽 이수환 CP] 1. 자연을 수놓는 시간의 언어

전미경의 회화는 ‘자연을 꿰매는 일’이다.

그녀는 산과 들에서 직접 채집한 꽃잎과 씨앗, 나뭇껍질, 낙엽 등 자연의 잔존을 압화(押花) 기법으로 건조한 뒤, 그것들을 하나하나 바느질하듯 화면 위에 고정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재료의 배열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생명의 기억을 되살리는 행위이다.

작가는 “꽃잎 하나에도 생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씨앗은 잠든 시간이며, 꽃은 그것의 환생이다. 전미경의 회화는 이 생명의 순환 구조를 평면 위에서 재구성하며, ‘자연의 호흡’을 시각 언어로 번역한다.

그녀의 화면은 정물도도 추상도도 아닌, ‘자연의 내부를 관찰하는 사유의 공간’이다. 한 송이의 꽃이 피기까지의 기다림, 한 알의 씨앗이 흙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압화된 질감 속에서 ‘존재의 흔적’으로 남는다.
사진제공=금보성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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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느질, 생명을 잇는 수행의 행위

전미경에게 바느질은 단순한 장식적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상처를 봉합하는 의식’이다. 꽃잎을 한 점 한 점 붙이고, 씨앗을 한 알 한 알 배열하는 과정은 마치 선(禪)의 호흡처럼 반복적이며 수행적이다.

이 반복의 리듬 속에서 작가는 사라짐의 슬픔을 감싸고,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의 경계를 허문다.

그녀의 작업은 ‘형상으로서의 자연’을 재현하기보다, ‘감각으로서의 자연’을 구현한다. 화면을 가득 메운 꽃잎의 질감은 회화의 붓질처럼 살아 있고, 점과 선의 연결은 실 대신 ‘생명의 맥박’을 잇는다.

이러한 조형 언어는 불교적 사유와 깊은 친연성을 가진다. ‘108’이라는 숫자, 반복과 명상의 구조, 그리고 내면적 평정은 전미경의 예술이 단순히 자연주의적 미감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 ‘존재의 진동’을 감지하고, 그것을 예술로 옮기는 정신적 행위이다.
사진제공=금보성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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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양적 정신과 현대회화의 교차

전미경의 작업은 20세기 서구의 자연 기반 예술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가 자연의 형태를 여성적 상징으로 승화시켰다면, 전미경은 자연의 미세한 생명 구조를 동양적 내면성과 수행의 감성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재료의 물성을 통해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기억의 회화’와도 공명한다. 그러나 서양의 회화가 물질의 폭력성과 시간의 파괴를 통해 존재를 환기한다면, 전미경의 회화는 오히려 ‘치유와 회복’의 감각을 통해 생명의 윤리를 제시한다.

그녀의 화면은 침묵의 공간이며, 감응의 장(場)이다. 한지를 겹겹이 쌓아올린 표면, 그 위를 따라 이어진 씨앗과 꽃잎의 선율, 그리고 반복되는 인체적 실루엣은 모두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미경의 예술은 한국적 단색화의 명상적 전통을 잇되, 그것을 생태적 감수성으로 확장한 ‘에콜로지 회화(Ecological Painting)’로 분류할 수 있다.
사진제공=금보성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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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꽃씨 신화’ - 자연과 존재의 새로운 서사

2025년 출간된 도서 『꽃씨 신화 – 108 산사에서 만난 꽃과 씨앗, 그리고 생명 이야기』(비엠케이)는 전미경의 회화가 태동한 철학적 뿌리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녀는 전국의 산사와 자연 속을 걸으며, 108가지 꽃과 씨앗을 수집했다. 이 여정은 곧 생명의 순환을 관찰하는 ‘예술적 순례’이자, 인간이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감응의 길’이다.

책 속의 이야기는 단순한 식물학적 기록이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적 수련 일지이며, 현대 생명철학에 대한 미학적 성찰로 읽힌다.

꽃과 씨앗이 가진 ‘시작’과 ‘끝’, ‘탄생’과 ‘소멸’의 구조는 전미경 회화의 기본 구성 원리이기도 하다. 즉, 그녀의 화면은 한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 ‘생명의 신화’를 회화로 재구성한 시각적 경전인 셈이다.
사진제공=금보성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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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대미술사적 위치 - 감응과 생명의 회화

전미경의 예술은 ‘감응의 회화’로 정의할 수 있다.

그녀는 생명과 물질의 접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며, 인간의 내면과 자연의 리듬이 하나로 공명하는 공간을 창조한다. 이러한 접근은 21세기 미술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 ‘존재의 윤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주목된다.

현대미술사적으로 볼 때, 그녀의 작업은 세 가지 조형 사조와 만난다.

1) 자연 회귀적 미술(Nature-based Art) – 자연 그 자체를 재료와 주제로 삼아 생태적 감수성을 탐구한다.

2) 명상적 회화(Meditative Painting) – 반복적 행위와 호흡의 리듬을 통해 내면의 평정을 드러낸다.

3) 한국적 단색화 이후의 감응 미학(Post-Dansaekhwa Ecology) – 물질의 표면 너머 감정과 존재의 진동을 탐구한다.

전미경의 작업은 이 세 지점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6. 존재의 숨결로서의 예술

전미경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꽃잎이 남긴 바람의 결, 씨앗의 무게, 그리고 사라짐의 고요를 함께 느끼게 된다. 그녀의 회화는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예술이다.

꽃과 씨앗은 더 이상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이며, 생명의 숨결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꽃씨 신화』는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한 작가의 내적 서사이자, 동시대 회화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어떻게 예술로 실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응의 미학이다.

그녀의 예술은 묵언 속의 노래처럼, 조용하지만 깊이 울린다.

출판 | 『꽃씨 신화 – 108 산사에서 만난 꽃과 씨앗, 그리고 생명 이야기』 (비엠케이, 2025)

[글로벌에픽 이수환 CP / lsh@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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