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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는 정부가 쥐었는데 …” 번지수 잘못 찾은 기업은행 노조

출근저지 투쟁에 19일째 발길 돌린 장민영 행장 … 경영공백 장기화

신규섭 금융·연금 CP

2026-02-11 09:50:46

IBK기업은행과 장민영 은행장.

IBK기업은행과 장민영 은행장.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장민영 IBK기업은행장이 임명된 지 19일째가 되도록 본점 집무실로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을지로 본점 앞에는 노조원들이 모여 출입문을 가로막고, 장 행장은 짧은 대치 끝에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10일 오전 8시 35분, 장 행장이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 도착하자 노조원들이 건물 출입구를 막아섰다. 5분간의 대치 끝에 장 행장은 다시 발길을 돌렸다. 노조원들은 "총액인건비제 예외에 대한 답을 가져올 때까지 오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월 23일 첫 출근 시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오전 8시 50분쯤 본점에 도착한 장 행장은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여 10여분간 대치하다 결국 돌아서야 했다. 노조원들은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오라"고 외쳤고, 장 행장은 "임직원들의 소망을 잘 알고 있고, 노사가 협심해서 문제를 잘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현재 기업은행 노조는 공공기관 총액인건비제도 때문에 시간외수당 등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1인당 600만원 이상의 임금이 밀려있으며, 전체 미지급 수당 규모는 78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초과근무를 하고도 수당 대신 휴가로 보상받고 있으나, 그마저도 제때 쓰지 못해 쌓여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의 해법은 장 행장이 아닌 정부가 쥐고 있다. 총액인건비제는 기획재정부가 예산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금융위원회가 경영평가로 이를 강제하는 구조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이 제도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행장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노조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노조는 '빈손 행장 물러가라'며 연일 정문을 막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의 신임 행장 출근 저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조는 2020년 윤종원 신임 행장이 임명됐을 때도 '낙하산 반대'를 내세우며 무려 27일간 출근을 저지했다. 이는 금융권 최장기 출근 저지 기록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2022년에는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행장 후보로 거론되자 역시 낙하산 인사라며 출근 저지 투쟁을 예고했고, 결국 내부 출신인 김성태 전 행장이 선임되기도 했다.

시중은행에 비해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노조의 주장에는 일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말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기업은행이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고 노동조합에서 난리"라며 "법률을 위반하면서 운영하도록 정부가 강요한 측면이 있다"고 말하며 해결을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신임 행장이 올 때마다 노조가 실력 행사에 나서는 모습은 안타깝다. 출근을 막아 세운다고 인건비 제도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협상의 실질 상대인 정부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 노조가 사실상 '행장 출근 허가권'을 쥔 듯한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조직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영 공백의 여파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일 열린 '전국 영업점장 회의'는 노조 눈치를 보느라 비대면으로 축소 진행됐다. 신임 행장이 전국 영업점장을 모아놓고 한 해 전략을 짜야 할 핵심 행사가 사실상 파행한 것이다. 향후 5년간 300조원 규모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정책 과제 등도 모두 멈춰 서 있다.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과 첨단전략산업 육성 등을 강조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은행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특히 대규모 펀드 투자 등과 같은 결정은 실무자가 독단적으로 할 수 없어 경영 공백 해소가 시급한 상황이다.
장 행장은 현재 본점 인근 임시 사무실에서 제한적인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공식 취임식조차 열리지 못한 채 19일째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총액인건비제 예외를 조건부로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 문제 해결은 분명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그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의 정상적인 운영을 멈춰 세우는 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사 모두가 한 발씩 물러서서 대화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그래야 기업은행이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고, 직원들의 권익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1964년생인 장 행장은 1989년 중소기업은행에 입행한 뒤 리스크관리그룹장, 강북지역본부장, IBK경제연구소장, 자금운용부장 등 주요 직책을 거쳐 2024년부터 IBK자산운용 대표를 맡아왔다. 지난 1월 22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의 임명 제청을 거쳐 선임됐지만, 아직 본격적인 업무는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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