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는 심 대표의 갑작스러운 분노와 함께 터져 나왔다. 마치 성서 속 절대 악 ‘사탄’을 불러내듯, 그는 거리낌 없이 ‘악마’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악마’는 괴물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칠고 붉은 피부, 길게 내민 혀, 솟구친 귀 등 괴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하고 온화한 얼굴 속에 숨어 있다는 것. 고향 냄새나는 시골스러운 얼굴, 친근한 미소를 띤 이가 바로 그 악마일 수 있다. 악마는 위장술의 대가다. 가까운 이웃, 평범한 일상 속에 악마가 숨어 있곤 한다.
악마를 찾아내는 열쇠는 피해자이다. 아무리 능수능란한 위장과 은폐술을 써도, 피해자가 드러나는 진실은 감출 순 없다. 피해자의 아픔과 흔적이야말로 악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단서다.
그는 말의 강도를 점점 높여갔다. 말을 하면서 확신하고, 그 확신 때문에 말을 더하는 식이었다. 때론 허공에 손짓을 보태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말의 진위보다는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표정에 마음이 얼어붙었다.
주변의 고요한 침묵이 그의 의기양양함을 부추겼다. 마치 자신의 말이 진실인 듯했다. 급기야 그는 룸을 박차고 나가 카운터로 뛰쳐나가서 그녀에 대한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배인의 표정은 그 무게를 믿는 것보다 곤란함을 덜어내려는 몸짓에 가까웠다. 술집 손님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하나둘 주목했다. 주방 아줌마마저 주방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가 하는 말을 요지는, 그녀가 얼마간 돈을 빌렸고, 어제부터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악마’라고 하는 그녀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여러 차례 마주친 기억, 비쩍 마른 몸매와 커다란 검은 눈동자, 대도시가 아닌 먼 시골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악마라고 비난받을 이유, 심지어 가벼운 비난조차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쉬는 시간, 무감정한 검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가 악마일 리 없었다. 갈 곳 없는 그녀를 당장 해고하라는 심 대표의 압박은 어처구니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그녀를 옹호하지 못했다. 심 대표의 거침없는 기세에 눌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참담한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은 그렇게 끝났다. 식은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집으로 돌아갈 즈음 그의 얼굴은 평정을 되찾았다. 평소처럼 미소 짓는 얼굴로 돌아온 것이다. 그 평온함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평온함 웃음은 욕망을 감춘 자의 비열한 웃음이라는 것, 바로 악마의 위장술이었다.
귀국 후 몇 년이 흐른 최근, 그 검은 눈동자가 갑자기 나를 찾아오고 있다. 오늘 새벽만 해도 그랬다. 검은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는 꿈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어둑한 새벽에 깼다. 그 검은 눈동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내가 요즘 들어 악마를 찾아 나선 여정과 맞닿아있다.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검은 눈동자가 나를 찾아온 이유를 이제는 분명히 알겠다.
어떤 상황도 이름 붙이면 명확해진다. 누가 악마이고 피해자인지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 술집사건 속의 검은 눈동자는 분명 악마가 아니라 악마의 피해자였다. 피해자를 통해 악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간단하고 정확한 법칙이다.
“악마는 심 대표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때, 지난 시간이 한꺼번에 풀려나갔다.
사건 당시, 혹시나 하는 생각은 역시나 들어맞았다. 당시 심 대표의 울퉁불퉁한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빨갛고 긴 혀’를 내미는 악마의 모습을 본 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나는 분명 악마를 보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 지배인을 상대로, 그 자리에 없는 연약한 여인을 ‘악마’라고 몰아붙인 그자가 바로 진짜 악마였다.
악은 생명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생명의 정반대에 서서 생명을 빼앗는 자가 바로 악마다. 살다(live)의 철자를 거꾸로 하면 악(evil)이다. 이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녀의 삶을,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짓밟았다.
그의 말에는 거짓이 다수 섞여 있었다. 돈을 준 것은 사실이나, 숨겨진 욕망으로 그녀를 억압했다는 것은 숨겨진 사실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는 그녀가 동의하지 않은 대가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 욕망에 동의했다면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모멸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녀는 그의 전화를 피하는 것으로 당장의 수치심은 면했다. 그래서 욕망을 풀지 못한 그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악과 거짓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거짓은 혼란을 불러일으키며, 악마는 거짓의 존재들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끊임없이 속이는 자들이다. 성서도 거짓에 대해 잇따라 경고한다. 시편은 거짓 증언을 ‘가장 지독한 죄’라 하고, 잠언은 “거짓말하는 자는 벌을 면치 못하리라” 경고한다.
그녀가 약속을 어겼다는 한 가지 사실에 여러 거짓을 섞은 것처럼,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위험한 거짓말이다. 이는 악마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거짓으로 시작된 피해자 책임 전가, 사건 조작, 은폐는 악마의 특징이다. 연약한 그녀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지만, 심 대표 본인은 비난을 피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책임을 떠넘기는 자, 그가 진짜 악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자다.
“당시 나는 왜 그가 악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앞으로 내 삶의 길은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악의 위장술에 속았다. 온전한 척하는 가면 뒤 악을 간파하지 못했다.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학살을 지켜본 작가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함’이라 부른 그 진실을 그때는 몰랐다.
평범한 이웃, 평범한 얼굴 뒤에 악마가 숨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놀랍지 않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피해자를 세심히 살핀다면, 악마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악마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 주변에서 악마를 물리치는 일도 가능하다.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보철의 한끗차이] 평범한 얼굴, 숨겨진 악마](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317100418043860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정보철의 한끗차이] 평범한 얼굴, 숨겨진 악마](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595&simg=20260317100418043860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정보철의 한끗차이] 평범한 얼굴, 숨겨진 악마](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317100457033560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정보철의 한끗차이] 평범한 얼굴, 숨겨진 악마](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595&simg=20260317100457033560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