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이 2월 5일부터 11일까지 미국 실리콘밸리와 시애틀 일대에서 엔비디아 젠슨 황 CEO, 브로드컴 혹 탄 CEO,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CEO, 메타 마크 저커버그 CEO, 구글 순다르 피차이 CEO 등 5개 빅테크 수장들과 연쇄 회동을 가진 것이다. 이들 중 일부가 최 회장의 쾌유를 빌면서 그의 깁스에 사인을 남겼다. 그 사인들은 단순한 서명이 아닌, SK하이닉스가 글로벌 AI 생태계의 필수 파트너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었다.
치맥에서 시작된 'AI 동맹' 구축
최 회장은 5일(현지시간) 미국 산타클라라의 한국식 호프집 '99치킨'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났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위치한 소박한 호프집에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이곳에서는 AI 반도체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논의가 벌어졌다.
황 CEO는 이 제품 위에 'JENSEN ♡ SKHYNIX'라고 적었다고 보도되면서,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 간의 돈독한 협력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는 단순한 친분 관계를 넘어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에서 두 회사가 운명공동체임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최 회장의 미국 외교는 젠슨 황과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 회장은 미국 시애틀을 찾아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 HBM 관련 협력 및 AI 데이터센터·솔루션 사업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또한 같은 날 새너제이에서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를 만나 메모리 장기 공급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GTC 2026 무대서 입증된 글로벌 리더십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6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개막한 글로벌 기술 콘퍼런스 'GTC 2026'을 직접 찾아 글로벌 AI 생태계 내 SK하이닉스의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세계 최대의 AI 기술 행사 현장에 SK 회장이 직접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 회장은 이날 엔비디아 젠슨 황 CEO의 키노트 현장을 찾았다고 보도되었으며, 황 CEO와 함께 SK하이닉스 전시 부스를 둘러보며 제품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황 CEO가 양사의 대표 협력 전시 제품인 베라 루빈에 "JENSEN ♡ SK HYNIX" 사인을 남겼다고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전시를 통해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탑재되는 HBM4와 저전력 서버용 D램 모듈 신제품인 SOCAMM2를 선보이고 이들이 실제 GPU 모듈에 탑재된 목업도 함께 공개했다.
"AI 시대, 메모리가 주도권 결정"
최 회장은 GTC 현장에서 인터뷰를 통해 AI 메모리 시장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최 회장은 "HBM에 너무 집중하면 일반 D램이 부족해져서 스마트폰·PC 등 기존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이 또 다른 고통이며 AI 기업뿐 아니라 일반 개인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가격을 올리지 않고 충분히 공급하려 하지만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수요 충격이 매우 강하게 온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더 나아가 최 회장은 SK하이닉스가 "D램 가격 안정화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미국 ADR(주식예탁증서) 상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며 "한국 주주들뿐만 아니라 미국 및 글로벌 주주들에게 노출될 수 있어 더 글로벌한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긍정적 입장을 표했다.
부품 공급자서 생태계 설계자로 전환
이번 회동은 단순 공급망 논의를 넘어 HBM4를 중심으로 한 AI 칩 공동 설계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전략 공유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SK그룹이 기존의 메모리 칩 공급자에서 벗어나 글로벌 AI 생태계의 핵심 설계자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업계는 이로써 SK가 부품 공급자에서 AI 생태계 설계자로 전환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직접 나서서 5개 빅테크 CEO들과 만난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미팅을 넘어 AI 시대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SK의 전략적 선택임을 의미한다.
삼성과 HBM 경쟁서 관계 우위 선점
한국의 두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HBM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최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SK하이닉스에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먼저 HBM4 양산을 시작했지만,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등 주요 빅테크와의 오랜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신뢰와 기술 혁신을 무기로 삼고 있다.
GTC 현장에서 최 회장과 황 CEO의 너스레 섞인 대화는 양사의 긴밀한 관계를 상징했다. 황 CEO가 최 회장이 "여기에 사인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을 때 "(최 회장은) 맨날 이래라 저래라 한다"라며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오랜 신뢰 관계 속에서의 편안함을 드러냈다.
차세대 메모리 시장, 고객 관계가 주도권 결정
최 회장이 미국에서 벌인 'AI 외교'는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첨단 반도체 시장에선 이제 고객이 원하는 성능과 특성을 지닌 '맞춤형 반도체'의 시대가 열렸다. HBM 경쟁은 기술을 넘어 고객사와의 관계 싸움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추진 중인 HBM4는 엔비디아가 요구한 데이터 전송 속도(초당 11.7Gb)를 맞추기 위해 성능 최적화에 주력해왔으며 최근 작업을 마무리하고 엔비디아의 인증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전자보다 공급은 늦지만, 엔비디아와의 오랜 신뢰 관계가 강점이다.
최태원의 깁스 사인이 증명하는 것
최태원 회장이 미국에서 보여준 행동은 한 기업 회장의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재계 2위 기업의 수장이 직접 글로벌 빅테크 CEO들을 만나고, 자신의 깁스에 그들의 사인을 받게 한 것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위상 변화를 상징한다.
핵심 고객사인 빅테크와의 긴밀한 협력이 반도체 시장의 화두가 된 상황에서 최 회장의 '깁스 사인'은 단순한 에피소드를 넘어 SK하이닉스가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파트너인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한국 기업가의 개인적 손목 부상이 국제적 AI 협력 네트워크로 전환된 것이다. SK는 "최 회장의 출장 결과를 바탕으로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 멤버사가 빅테크 파트너사들과 함께 SK AI 생태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후속 논의 및 사업 협력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6년 AI 시대의 한국식 전략
2026년 HBM 시장 규모는 546억 달러(58% 성장)로 예상되고 있다. 이 막대한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최태원 회장의 깁스에 새겨진 사인들은 그 질문에 대한 SK의 답변이다. 기술뿐만 아니라 신뢰와 협력, 그리고 경영진의 직접적인 네트워크가 글로벌 AI 시대의 주도권을 결정한다는 판단이 그것이다.
2월의 미국 출장과 3월 중순의 GTC 참석은 SK하이닉스가 단순한 부품 공급사를 넘어 AI 혁명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태원 회장이 손목에 새긴 다섯 개의 사인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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