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만에 첫 외부 CEO
황상연 신임 대표는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최고투자책임자(CIO)를 거쳐 종근당홀딩스 대표이사를 역임한 금융·투자 전문가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로 30년 이상 한미약품을 분석한 경력까지 더하면 그의 영입은 전략적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대주주와 경영진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회사 경쟁력을 극대화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 그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황 대표는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과 상식에 입각해 고객가치, 직원가치, 주주가치에 충실한 경영을 하겠으며, 선대 회장(임성기 회장)의 인간존중, 가치창조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R&D 능력을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오너 중심 경영 체제에서 전문 경영인 중심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이루면서도 창업주의 철학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이다.
1조 5475억원의 성과, 그 이상의 과제
그러나 실적 대비 경영진 교체라는 이번 결정은 시장에 새로운 시그널을 보낸다. 재무 성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황 대표가 마주할 현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핵심 파이프라인의 글로벌 성과 확산이고, 둘째는 장시간 지속된 경영권 갈등으로 인한 조직 내 불신 해소다.
에페글레나타이드, 비만 시장 판도 변화 이끌어
한미약품은 GLP-1 계열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오토인젝터주'(HM11260C) 개발을 완료하고 지난 1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지난 10월 임상 40주차 중간 결과 최대 30%의 체중 감소 효과와 9.75%의 평균 체중감소율을 보였으며, 기존 GLP-1 제제 대비 양호한 안전성이 확인됐다.
주목할 점은 한미약품이 이 치료제를 단순한 비만약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투트랙(Two-Track)' 전략을 본격화해 토종 GLP-1 비만 신약으로서 캐시카우를 확보하는 동시에, 당뇨병 치료제로 건강보험 급여권에 진입해 안정적인 처방 시장까지 꿰차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현재 SGLT-2 저해제와 메트포르민 병용 3상 임상을 진행 중이며, 2028년 당뇨병 치료제 적응증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제형 혁신도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프리필드시린지(PFS) 및 멀티펜 등 제형 개발, 국내 최초 디지털융합의약품(DTx) 개발, 맞춤형 건강기능식품·일반의약품 패키지를 통해 시장을 다각화할 계획이다. 디지털융합의약품은 2026년 1분기 임상시험계획(IND) 신청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글로벌 선점, 이미 시작됐다
파이프라인 다각화도 진행 중이다. 차세대 삼중작용제 'HM15275'는 미국 임상 2상 첫 환자 투약을 완료했으며, 2027년 상반기 임상 2상 종료를 예상하고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HM15275는 시판되고 있는 비만치료제들의 약 15~20%의 체중 감량 효과보다 개선된 25% 이상의 체중 감량과 근손실 최소화가 강점이다.
R&D와 수익성의 균형, 황상연의 과제
황 대표의 가장 큰 과제는 기존 R&D 성과를 유지하면서도 투자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재무 전문가 출신 대표 체제에서 수익성과 효율성이 보다 강조될 가능성도 거론되며, 일각에서는 기존 R&D 성과를 안정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현재 한미약품은 비만·항암 분야 핵심 파이프라인 성과를 가시화해야 하는 중요한 변곡점에 놓여 있으며, 올 하반기 출시를 앞둔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비롯해 삼중작용제 HM15275, 근육 증가 치료제 HM17321, 경구용 HM101460 등 주요 후보물질이 개발 중이다. 항암 분야에서는 '벨바라페닙'이 국내 임상 2상 시험계획 승인을 받으며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조직 통합의 신호탄, 이사회 재편
황 대표의 선임은 이사회 구조 변화로도 구체화됐다. 채이배 이사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김나영 이사를 사내이사로 전진 배치하는 거버넌스 리셋이 이뤄졌다. 특히 제품개발 조직을 이끌어온 실무형 인사를 사내이사로 올려 외부 인사 중심 재편이 가져올 수 있는 조직 동요를 줄이고 R&D 의사결정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이사회는 총 10인 체제로 재구성되었다. 사내이사는 황상연 대표를 비롯해 임종훈·최인영·김나영 등 4명이고, 사외이사는 한태준·김태윤·이영구·채이배(감사위원 겸임) 등 4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김재교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이 기타비상무이사 2명으로 참여해 10인 체제를 완성했다. 이는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간의 견제와 균형을 동시에 확보한 구조를 의미한다.
지속성과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업계는 황상연 대표 체제의 성공을 두 가지 관점에서 지켜보고 있다. 첫째는 비만·항암 분야 핵심 파이프라인 성과 가시화고, 둘째는 경영권 갈등으로 내부 결속이 중요한 시점에 조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황상연 신임 대표는 첫 외부 출신 수장이라는 상징성 속에 한미약품의 차기 성장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인간존중, 가치창조'라는 철학과 현대 기업이 요구하는 투명한 지배구조·시장 친화적 경영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역대급 실적을 바탕으로 글로벌 비만·대사질환 시장에서 한국 제약사의 위상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한미약품이 마주할 핵심 질문이다.
지난해 달성한 1조 5475억원의 매출은 분명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황상연 대표에게 이는 새로운 시작점일 뿐이다. 제약산업의 변화 속에서 R&D의 정통성을 지키면서도 투자 효율성을 높이고, 경영권 갈등의 흔적을 완전히 걷어내며, 글로벌 신약 개발의 성과를 현실화시키는 것. 그의 어깨에는 한미약품의 미래가 실려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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