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7.29(수)

[집중분석] 퇴직연금 점유율 20% 붕괴…보험사 돌파구는

보험계약 비중 90% 쏠림 부메랑…종합자산관리자로 체질 개선 절실

성기환 CP

2026-07-29 09:11:38

퇴직연금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퇴직연금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500조원 시대를 넘어 560조원에 육박한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지각변동을 맞고 있다.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20년간 선두를 지킨 삼성생명이 신한은행에 적립금 1위 자리를 내준데 이어, 보험업권의 입지도 위축되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 6월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총 107조3천206억원으로 전체 적립금(약 554조원)의 19.4%에 그쳤다. 지난해 말(20.9%)보다 1.5%포인트 낮아지며 업계 마지노선인 2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2024년 말 증권업권에 추월당한 뒤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증권업권 점유율은 24.1%(2024년 말)→26.2%(2025년 말)→29.8%(올해 6월 말)로 올라 30%대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은행업권 점유율은 52.0%에서 50.9%로 1.1%포인트 내려앉았다.

개별 사업자 순위도 뒤집혔다. 20년 넘게 1위를 지킨 삼성생명은 지난해 말까지 신한은행에 약 5천500억원 앞서 있었지만, 올해 1분기 역전을 허용했다. 20년 만의 첫 선두 교체다. 격차는 더 벌어져 6월 말 신한은행(58조8천888억원)이 삼성생명(57조3천963억원)을 1조4천925억원 차로 따돌렸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순위 재편과 점유율 하락을 단순한 영업 부진으로 보지 않는다. 새 회계제도(IFRS17)와 신지급여력제도(K-ICS) 아래 원리금보장 상품을 떠안아야 하는 보험사들의 구조적 딜레마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에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본 부담 알면서도 수용...원리금보장형 못 벗어나는 3가지 이유

보험업권 퇴직연금은 K-ICS 체제에서 역설적 구조에 갇혀 있다. 적립금이 늘수록 지급여력비율(K-ICS 비율)이 오히려 나빠지기 때문이다. 원리금 지급을 약정할수록 적립금이 부채(특별계정)로 잡히고 요구자본 부담이 함께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업권 퇴직연금은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높고, 기업이 운용을 책임지는 확정급여(DB)형에 집중돼 있다. 가입자가 직접 운용대상을 선택하는 확정기여(DC)형·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는 보험업권 비중이 올해 5월 기준 8.6%(24조5천575억원)까지 밀려났다.

보험업계도 이러한 리스크를 알고 있지만, 현장 사정은 다르다. 먼저 DB형 법인 고객은 원금 보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원리금보장을 선호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실적배당형 전환을 요구하면 기업 고객이 은행·증권사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 원리금보장 제안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면 영업망이 보장성·저축성 위주로 짜여, 실적배당형 상품 설명과 수익률 관리 전문성이 증권업권보다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원리금보장형 자산의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자금 유출을 막으려 같은 상품을 다시 내놓아야 하는 재계약 부담도 있다. 2024년 10월 말 도입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로 계좌를 매도하지 않고 다른 사업자로 옮길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자금 이탈 압박은 더욱 커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원리금보장 편중은 과거 회계제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IFRS4·RBC 체제에서는 약정 금리를 웃도는 운용 수익을 거두는 이차익(Spread) 구조가 유효해, 원리금보장 보험계약이 외형 성장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2023년 시가평가 기반의 K-ICS가 도입되면서, 한때 주력이던 원리금보장 보험계약이 자본 부담 요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보험계약' 대 '신탁계약'...자산관리 중심 구조적 전환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보험업권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보험계약' 방식 비중은 90%를 넘는다. 대형 생보사조차 신탁계약 비중은 10~15%에 머물고 손보업권은 5%에도 못 미친다. 원리금보장 상품에 대한 의존이 계약 형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셈이다. 100조원 넘는 자산 대부분이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히면서 K-ICS상 자본 방어에 걸림돌이 됐다는 평가다.

기존 '보험계약'은 보험사가 가입자와 원리금 지급을 약정하고 자금을 굴리는 형태다. 보험계약만이 종신연금 전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보험사들이 보험계약 위주로 영업해 온 배경으로 꼽힌다. 신탁계약은 이런 종신 지급 기능이 없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기 원하는 가입자에게는 보험계약이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설명이다.

이런 쏠림을 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신탁계약이다. '신탁계약'에서는 보험사가 수탁자 역할만 맡고, 자산을 독립 계정(Off-balance)으로 떼어 관리한다. 이렇게 분리된 신탁재산은 법적으로 보험사 고유 자산과 나뉘어, 금융사 부실이 나더라도 연금 자산은 100% 보호받는다. 운용 방식도 자유로워진다. 신탁 계정 안에서는 가입자 지시에 따라 타 금융사 예금 같은 원리금보장 상품은 물론 ETF·TDF 등 실적배당 상품까지 담을 수 있다.

이런 차이를 두고 금융 전문가들은 최근 변화를 단순한 상품 확장이 아니라, 보험사 주도 구조에서 가입자 선택에 따라 손익이 귀속되는 구조로의 사업 전환으로 읽는다.

DB손보 신탁업 인가...상품 다양화 넘어 K-ICS 부담까지 해소

DB손해보험은 이달 15일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전신탁업 변경인가를 3년여 만에 다시 획득하며 사업 개편에 나섰다. 주요 보험사들의 이 같은 신탁 인가 추진은 연금 사업 체질 개선의 실행 단계로 풀이된다.

대형 보험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보험 상품이 원리금보장형 위주였고, 펀드도 '1사1펀드' 방식으로 제한돼 상품 라인업을 다양화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한다. 신탁 라이선스가 없어 타사 상품을 가져올 수 없었고, 확정기여(DC)형·개인형퇴직연금(IRP) 활성화에도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다.

반면 신탁 라이선스를 앞서 확보한 삼성생명·삼성화재는 펀드 판매에 제약이 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시 활황에 은행·증권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계약자 이탈을 막으려는 대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영업상 이유 외에 자본규제 측면의 이점도 있다. 보험권 퇴직연금 관계자는 신탁재산이 부채로 잡히지 않아 지급여력비율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K-ICS 비율을 훼손하지 않고 적립금을 늘리는 동시에, 운용 리스크 대신 수수료 수익(Fee Income) 중심 구조로 옮겨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렇게 늘어난 적립금은 보험사 자체 자산으로 잡히지 않는다. 신탁으로 담은 타사 상품의 자금이 해당 상품을 공급한 증권사 등으로 흘러가, 적립금 시장점유율 개선과 보험사 자산 규모 확대는 별개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보험업권 가운데 신탁 라이선스를 보유한 곳은 소수에 그친다. 손보업권에서는 삼성화재·KB손해보험에 이어 DB손해보험이 세 번째 사업자로 이름을 올렸고, 생보업권에서도 5곳만 종합재산신탁 자격을 갖추고 있다. 전체 신탁시장에서 보험업권 비중은 2%대로, 은행·증권보다 한참 뒤처진 상태다.

신탁업 전환의 3대 축...'자산관리자' 체질 개선이 승부처

금융권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개별 사례에 그치지 않고 보험업권의 퇴직연금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위험 인수자'에서 '종합 자산관리자'로의 역할 전환이 핵심으로 꼽힌다. 고정 금리를 약속하고 자금을 직접 운용하며 리스크를 짊어지던 자기자본 운용자(Risk Taker) 구조에서 벗어나, 신탁 플랫폼으로 리스크 없이 수수료(Fee Income) 중심 사업으로 옮겨가는 셈이다.

여기에 K-ICS 체제에서의 자본 효율성 극대화가 동인으로 작용한다. 기존 보험계약은 적립금이 늘수록 요구자본 부담이 비례해 커졌지만, 신탁 계정(Off-balance)은 재무제표 외로 격리돼 요구자본 부담이 사실상 '0'에 수렴한다. 건당 마진율은 기존 이차익보다 낮아지더라도, 투입 자본이 거의 없어 위험조정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자본 효율성은 개선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증권사·은행으로 쏠리는 자금 이탈(Money Move)을 막기 위한 방어선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실적배당형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장에서 보험계약 구조로는 ETF 등을 다루는 데 한계가 뚜렷했던 만큼, 신탁 라이선스는 실적배당 라인업과 자산배분 솔루션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꼽힌다.

실제로 증권업권의 실적배당형 운용 비중은 45%에 달하는 반면 생명보험은 15%, 손해보험은 4%에 그쳐 격차가 뚜렷하다. 신탁 라이선스를 확보하면 신용등급이 높은 타사 채권·ELB 상품까지 담을 수 있어, 수익률을 우선시하는 공기업 등 법인 입찰에서 유리해진다는 설명도 있다.

신탁시장 자체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신탁회사 60곳의 총 수탁고는 1천516조5천억원으로 10.0% 늘었는데, 금전신탁 증가분 가운데 가장 큰 몫은 퇴직연금(48조원 증가)이었다.

"신탁은 시작일 뿐"...실적배당 경쟁력이 진짜 승부처

다만 신탁 인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 족쇄를 푸는 최소한의 기반일 뿐, 주도권 경쟁의 관건은 증권업권에 상응하는 실적배당 운용 역량과 상품 경쟁력에 달려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확정기여(DC)형 개인 가입자들이 증시 호황을 좇아 증권사로 옮겨가는 흐름이 적립금 유출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신탁 라이선스만으로 이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신탁업 인가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차별화된 상품 라인업과 자산배분 전문성을 입증하는 보험사만이 자산관리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DB손해보험의 사례를 계기로, 아직 라이선스가 없는 나머지 보험사들 사이에서도 신탁업 인가 신청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보험권 안팎에서는 DB손보가 특정금전신탁에 그치지 않고 종합신탁 라이선스까지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전해졌다. 다만 신탁 라이선스 확보가 곧바로 점유율 반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된다.

이런 한계 뒤에는 제도적인 격차도 있다. ETF 편입이 막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사·은행 앱은 증권사보다 다룰 수 있는 종목이 적고 실시간 매매도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ETF 매매를 원하는 가입자들이 증권사 IRP로 옮겨가는 흐름이 이어진다. 당국과 고용노동부는 올해 중반 들어 금융권 퇴직연금 ETF 실시간 매매 개선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신탁 라이선스만으로 이런 격차가 해소되지는 않는 만큼, 실적배당 경쟁력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가 보험업권에 남은 과제로 꼽힌다.

20년 아성을 내준 보험업권이 신탁이라는 새 무기로 반등할 수 있을지, 퇴직연금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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