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에서 진행된 노사합의서 서명식에서 (왼쪽부터)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정성철 HMM육상노조 지부장, 최원혁 HMM 대표이사 사장, 이재진 사무금융서비스노조 위원장, 김형준 한국해양진흥공사 본부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HMM)
이미지 확대보기8일 열렸던 HMM 임시 주주총회에서 최원혁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정관 변경안은 통과됐다.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의 본점 소재지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공식 이전하는 순간이었다.
이 결정이 나오기까지 수개월간 벌어진 노사 갈등은 단순한 조직 이동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해운 산업의 미래 먹이사슬을 재편하려는 정부 전략과, 이를 경계하는 노동 세력의 생존 투쟁이 맞부딪힌 결과였다.
정부가 중요한 이유: 부산항의 글로벌 경쟁력
부산항은 세계 7위 규모의 컨테이너 항구다. 2025년 기준 연간 2488만2000TEU의 화물을 처리하며 최근 10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 같은 위상을 바탕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해운 클러스터 조성을 내세웠다. 해운, 물류, 금융 기능을 부산에 집중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HMM은 민간기업이지만 공적 성격이 짙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각각 35.42%, 35.08%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이 HMM 본사 이전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차원의 '해양수도 부산' 구상을 HMM이라는 상징적 기업으로 현실화하려는 의도였다.

서울 영등포구 HMM 본사. 연합뉴스
이사회 재정비와 노조의 경계
HMM은 3월26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신규 사외이사 2명을 선임했다. 전 산업은행 부행장과 부산대 경영대 부교수 출신이었다. 본사 이전을 추진할 지배구조 정비라는 신호였다. 다음날인 3월30일, 회사는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 본사 이전 정관 변경안을 5월8일 임시 주총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 순간, 노조는 반발했다. HMM 육상노동조합은 3월11일부터 조합원 500명 이상이 참여한 집회를 연달아 열었다. 핵심 요구는 명확했다. 본사 이전 중단이었다. 노조의 입장에서 본사 이전은 서울 근무자들의 부산 발령을 의미했다. 생활 터전을 떠나라는 뜻이었다.
노조는 회사가 "협의 없이 합의도 없이" 안건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4월2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총력투쟁 결의대회는 반대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의 이재진 위원장은 HMM 주식 200주를 매수했다고 밝혔다. 임시 주총에서 주주권을 행사해 의결을 막겠다는 신호였다.
물류 대란의 악몽과 극적 합의
극한으로 치닫던 갈등은 4월30일 중앙노동위원회 2차 조정 자리에서 극적으로 봉합됐다. 노사는 물류 대란이라는 공동의 위협을 마주하며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HMM 관계자는 "노동위 2차 조정에서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차질 위기는 가까스로 피하게 됐다.
본격화되는 이전, 하지만 갈 길은 멀다
8일 임시 주총에서 정관 변경안이 통과되자 HMM은 본격적인 이전 절차에 착수했다. 5월 내 본사 이전 등기를 마칠 계획이다. 다만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제한적이다. 부산 내 신사옥 건립과 대표이사 집무실 마련 정도에 그친다.
기존 서울 본사 인력 가운데 얼마나 부산으로 이동할지, 신사옥 부지는 어디일지 등 구체적인 이전 규모와 방식은 여전히 내부 논의 중이다. HMM 관계자는 "현재 부산에는 HMM 소유 건물이 없고 모든 업무 공간이 임차 형태"라며 "신사옥 부지 선정도 단기간에 결론 낼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표이사 집무실도 당분간은 임차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완전한 부산 정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분명하다. 국적 해운사 최대 규모의 본사 이동 결정이자, 이재명 정부가 그린 '해양수도 부산' 구상의 첫 신호탄이 켜진 셈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