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5.27(수)

[Epic Why] 스타벅스 '탱크데이' 왜 터졌나

역사의식 부재에 매출압박까지 … 구멍 뚫린 기업문화가 화근

안재후 CP

2026-05-27 10:51:14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신세계그룹이 내민 스타벅스코리아 '5·18 탱크데이' 논란 자체 조사 결과는 '의도는 없었지만, 경각심은 없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의성은 입증하지 못했으나, 조직 전반에 역사의식이 부재했고, 내부 검증 시스템이 무너져 있었으며, 매출 앞에서는 사회적 민감성까지 외면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경찰 수사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신세계는 "최고 경영진이라도 책임을 묻겠다"는 강한 입장을 내놨지만, 조사 과정 자체의 한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① 역사의식 미비: 4단계 결재에서 아무도 문제 지적하지 않아
스타벅스코리아는 5월 중순 세 종류의 텀블러 할인 행사를 기획했다. 15일 '단테데이 한 손에 착', 18일 '탱크데이 책상에 탁', 20일 '나수데이 가방에 쏙'. 홍보 문구는 그럴듯했지만, 날짜 감각이 치명적이었다.

5월 18일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탱크데이'라는 문구는 자동으로 1980년 광주에서의 무장 헬리콥터와 탱크를 떠올리게 한다. 더욱 문제적이었던 것은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이었다. 이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이 내놓은 해명("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과 직결된다. 보도 자료 하나가 한국 현대사의 비극 두 건을 동시에 건드린 것이다.

그런데도 회사의 4단계 결재 과정(팀장→담당→본부장→대표)에서 단 한 명도 "5월 18일에 탱크데이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신세계 조사에 따르면 실무진들은 "텀블러 디자인 특성상 '책상 친구'라는 개념에서 출발했고, '한 손에 착'은 AI로 뽑은 문구"라고 해명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개별 문구의 맥락이 아니라, 그 조합이 만들어내는 역사적 맥락을 놓쳤다는 게 핵심이다.

전상진 경영총괄 부사장은 "조직 전반의 역사의식 부재"라고 표현했다. 실무진이든 경영진이든, 누구도 '이 날짜, 이 문구'의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 부주의를 넘어 조직적 무감각의 문제였다.

② 부실한 검증 체계: 법무 검토는 생략되고 파일도 열지 않은 채 승인
자체 조사는 검증 시스템의 '심각한 결함'도 드러냈다. 행사 합의에 관여한 유관 부서 7명 중 일부는 마케팅 시안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고 승인 도장을 찍었다. 과거에는 존재했던 법무팀의 리스크 검증 절차가 이번엔 통째로 생략됐다.

신세계가 세운 '강도 높은 내부 조사'는 이커머스팀 5명 전원과 결재라인의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휴대폰·노트북 포렌식 검증과 교차 심문을 진행했다. 하지만 조사는 초반부터 막혔다. 5명 중 3명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휴대폰 제출을 거부한 것이다. 조사의 투명성을 약속한 회사의 '자체 조사'는 결국 핵심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전 부사장은 "마케팅 시안 파일을 열어보지 않고 승인하거나, 필요한 검증 절차가 생략되는 등 시스템적 허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과거의 안전장치가 현재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커머스팀의 5명은 현재 직무에서 배제된 상태지만, 누가 언제부터 법무 검토 절차를 생략했는지, 왜 파일 확인 없이 승인했는지에 대한 책임 규명은 여전히 미완이다.

③ 실적 우선: 주 단위 행사 경쟁 속에서 '사회적 의미'는 외면
신세계는 세 번째 원인으로 "매출을 우선시한 과열된 마케팅 분위기"를 지목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해부터 거의 주 단위로 신상품 행사를 열어왔다. 텀블러 할인 프로모션을 연이어 진행하면서 각 행사에 특색 있는 이름과 홍보 문구를 붙이는 것이 일상화됐다.

그 과정에서 조직의 관심사는 한 곳으로 집중됐다. 행사 성공 여부, 즉 매출이다. 전 부사장은 "워낙 주 단위로 많은 행사를 해왔고, 너무 마케팅과 매출에만 신경 쓰다 보니 날짜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이는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조직 문화의 문제였다.

내부 경쟁 속에서 신상품 출시 간격이 단축되고, 창의적인 마케팅 문구로 고객 호응을 끌어내려는 압박이 커질수록, 각 행사가 가진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검토할 여유는 줄어들었다. 실무진들이 "라임을 맞추는 데 급급했다"고 진술한 것은 그 흔적을 보여준다. 매출 목표를 앞에 두고는 '5월 18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뜻이다.

경찰 수사로 넘어간 '고의성' 판단
신세계 자체 조사는 "고의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실무진들은 "생각도 못 했고, 이슈화 이후 다시 보니 그제야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인지했다"는 취지로 고의를 부인했다.

다만 신세계는 "경찰 수사에서 5·18 폄훼 고의성이 확인되면 해당 임직원을 즉시 징계하고 민형사상 책임도 묻겠다"며 여지를 남겨뒀다. 세월호 참사를 겨냥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고의성을 단호하게 부인한다"고 선을 그었다. '4·16 미니탱크 데이'는 협력업체 요청으로 날짜를 조정했고, 2년 전 '4·16 사이렌 머그'는 행사 자체가 세월호 이전부터 있었다는 주장이다.

정용진 회장의 광주 방문 사과 여부는 여전히 미정이다. 신세계는 "적절한 시점을 보고 있다"고만 밝혔다. 한편 신세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마케팅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법무팀의 리스크 관리 역할을 재정립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질문은 남았다. 조직 전반에 역사의식이 없었다면,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부실한 검증 시스템은 왜 방치됐는가. 실적 중심의 문화는 어떻게 고착됐는가. 신세계의 자체 조사가 제시한 것은 '무엇이 잘못됐는가'였지만, 더 중요한 질문인 '왜 잘못됐는가'에 대한 답변은 경찰 수사와 함께 조직 내부의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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