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6.24(수)

[퇴직연금 쟁점(上)] 수익률 제고 vs 노후 안전망 훼손 ‘팽팽’

노동부, ‘위험자산 투자 70% 한도폐지’ 찬성 선회 …노동계 “노후 파탄” 반발

성기환 CP

2026-06-24 09:11:57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세번째)과 장지연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테스크포스(TF) 위원장(왼쪽 네번째)이 지난 2월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세번째)과 장지연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테스크포스(TF) 위원장(왼쪽 네번째)이 지난 2월 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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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픽 성기환 CP] 대한민국 퇴직연금을 옥죄어 온 '위험자산 70% 한도' 규제가 20년 만에 전면 재검토 국면에 접어들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정부의 규제 완화 기류가 본격화되며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100%로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되자 자본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50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에서, 규제 완화를 통한 수익률 제고냐 노후 안전망 훼손이냐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논쟁의 시작…노동부 워크숍서 '70% 한도 폐지' 공론화
이번 논의에 불을 댕긴 건 고용노동부가 주도한 내부 워크숍이었다. 24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 10일과 11일 양일간 서울 중구 직업능력심사평가원에서 '계약형 퇴직연금 개편 워크숍'을 열고 위험자산 투자 한도 조정을 포함한 제도개선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는 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 과장과 실무진, 금융감독원 연금감독실 선임급 인사 등이 참석했다. 사업자 측에서는 신한·KB·우리은행 등 은행권과 삼성생명·교보생명·삼성화재·DB손해보험 등 보험업권, 한국투자·삼성증권·미래에셋증권 등 증권업권이 고루 자리를 채웠다.

노동부는 이 자리에서 DC형·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현행 70%에서 100%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70% 한도의 도입 명분은 “위험자산 7, 안전자산 3”이라는 자산배분 원칙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채권혼합형 ETF를 활용하면 주식 편입 비율이 85%까지 올라가고, 타깃데이트펀드(TDF)를 통하면 90%를 넘기는 구조가 이미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이런 현실을 근거로 한도 규제 자체의 명분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에 퇴직연금 가입자 민원이 빗발치는 것도 이번 공론화를 앞당긴 배경으로 꼽힌다.

한편, 노동부는 하반기 인사 이전인 7월 말을 목표 시한으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장에 왜 막나"…실효성 잃은 70% 규제의 역설

고용노동부 주관 워크숍에서 오간 논의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그간 증권업계를 중심으로 쌓여온 규제 불만이 일제히 터져 나오는 모양새다.

최근 증시 활황 국면에서 '70% 룰'이 '역설'로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가입자가 보유한 주식형 ETF나 펀드 가치가 오르면 전체 자산 중 위험자산 비중이 자동으로 70%를 넘기게 되고, 이 경우 가입자가 원치 않더라도 추가 매수가 차단되거나 보유 자산을 강제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왔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만들어진 채권혼합형 상품은 제대로 된 자산배분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제도가 시장의 편법만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감원이 집계한 2025년 퇴직연금 수익률은 6.47%로 제도 도입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증시 호황이라는 외부 변수가 크게 작용한 결과로, 최근 10년간 연환산 수익률은 실적배당형 3.44%, 원리금보장형 2.09%에 그쳤다는 점에서 구조적 저수익 문제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전체 적립금의 80% 이상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수익률이 최고의 복지"…증권·자산운용업계 "한도 풀어야"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측은 수익률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십 년간 연 1~3%대 저수익에 묶여 있던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는 고물가 시대를 버텨낼 수 없다는 논리다.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인 '401(k)'는 7천만명 이상이 가입해 운용자금의 7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며,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도 위험자산 한도 규정 없이 20년간 연평균 수익률 7.88%를 기록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국·호주처럼 위험자산 한도 자체가 없는 구조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현재의 국내 제도로는 수익률 개선도, 시장 활성화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데이터도 규제 완화론에 힘을 싣는다. 2025년 퇴직연금 운용 방식별 수익률을 보면 원리금보장형은 3.09%에 그친 반면 실적배당형은 16.80%로 5배 이상 격차를 벌였다. TDF의 연간 수익률은 13.7%에 달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높이려면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위험자산 한도 폐지가 현실화될 경우 시장 판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TF와 증권사 자체 운용 상품을 중심으로 머니무브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DC·IRP 신규 고객 유입이 늘어나고, 장기 자산관리 기반의 수익성도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관리의 대중화 흐름과 맞물려 고객층이 넓어지면 증권사 입장에서는 시장점유율 확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금 까먹으면 노후 파탄"…노동계·실무진 "원칙 지켜야"

노동계와 보수적 학계의 우려는 완강하다. 퇴직연금은 자산 증식 수단이기에 앞서, 은퇴 후 삶을 지탱할 최후의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락장에서의 원금 손실 책임을 온전히 개인이 짊어야 하고, 금융 전문성이 부족한 가입자들이 고위험 상품에 무방비로 노출될 경우 노후 빈곤층 확산이라는 사회적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사적 연금의 부실화가 결국 공적 부조 등 정부 재정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도 전면 허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현장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국내 증권사 퇴직연금 담당 팀장은 "증시 상승기에는 좋지만 하락기에는 70%로 손실을 입는 것과 100%로 입는 것의 데미지(damage)가 다르다"며 "분산 투자라는 장기 자산운용의 기본 원칙을 흔드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찬성론 배경이 누구의 입장에서 나오는지가 중요하다"며 "국민연금 여력이 소진되는 상황에서 퇴직연금 자금을 증시 부양의 실탄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명확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장치도 없이 위험자산 한도를 전면 개방하면 변동성 높은 시장에서 투기 거래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차라리 TDF 내 예금 편입을 제한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인 제도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신중론을 뒷받침하는 선례로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거론된다. 2023년 7월 방치된 적립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2025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 53조3천억원 중 85.4%는 여전히 안정형(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있으며 연간 수익률은 3.7%에 그쳤다.

위험자산 한도를 전면 개방하더라도 가입자 행동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워크숍에 참석한 한 보험사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안정적으로 운용돼야 하는데 한도를 전면 폐지하면 어떡하느냐"는 취지의 반론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현실이 이번 개편 논의의 변수로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안전장치가 관건…'예금'에서 '투자'로의 변곡점

이처럼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서도 구조 개편 자체의 필요성에는 업계 안팎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관건은 규제 완화의 속도가 아니라 어떤 안전장치를 함께 설계하느냐는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우선 '적격 상품'의 범위 설정이 핵심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위험자산 100%를 허용하더라도 변동성이 지나치게 큰 레버리지·인버스 ETF나 고위험 개별 종목 투자는 제한하고, 글로벌 자산배분이 가능한 ETF·TDF 위주로 길을 열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미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1일 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엄격한 자산배분 기준을 충족한 '적격 TDF'에 한해 적립금의 100% 투자를 허용한 바 있다. 증권업계는 이번 제도 개편을 통해 TDF 같은 특정 우회 상품뿐만 아니라 일반 주식형 ETF 등 자산 전반으로 100% 허용 범위가 넓어지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상품 범위와 함께 연령별 안전장치도 병행 과제로 거론된다. 은퇴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2030 세대에게는 100% 공격적 투자를 허용하되, 은퇴가 임박한 5060 세대에게는 안전자산 비중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완충 장치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령별 자동 자산배분과 디폴트옵션의 연계 강화가 그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이처럼 설계의 세밀함이 강조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25년 상위 10% 가입자의 적립금 증가분 가운데 67%가 운용수익이었던 반면, 하위 10% 가입자는 납입 원금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금융당국의 데이터는 지금도 진행 중인 투자 격차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규제 완화의 혜택이 정보와 여력을 갖춘 일부 가입자에게만 돌아갈 경우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개편이 실효를 거두려면 수익성 확대와 안전성 보장을 동시에 담보하는 정교한 가이드라인이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제 완화의 이면에 도사린 리스크를 제어할 설계의 세밀함이 결국 연금 가입자 수백만 명의 노후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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