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9.02(수)

‘AI 서비스’가 550조 퇴직연금 시장 흔든다

은행·증권 로보어드바이저 앞다퉈 도입…‘방치 계좌’ 살릴지 ‘관심’

성기환 CP

2026-09-02 08:59:49

미래에셋증권은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에서 운용이 가능한 ‘퇴직연금 로보Wrap’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5일 밝혔다. [사진=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증권은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에서 운용이 가능한 ‘퇴직연금 로보Wrap’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5일 밝혔다. [사진=미래에셋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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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픽 성기환 CP] "매달 바빠서 잊고 살던 IRP 계좌가 알아서 미국 ETF 비중을 줄이고 채권으로 갈아탔다는 알림이 왔습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운용해 주니 마음이 편합니다."

최근 퇴직연금 운용 방식을 로보어드바이저(RA) 일임 서비스(이하 RA 서비스)로 전환한 직장인 A씨(42)의 말이다. 그의 노후 자금을 굴리는 손은 PB도, 본인도 아닌 AI다.

AI가 550조 퇴직연금 시장을 흔들고 있다. 절반을 웃도는 자금이 여전히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있지만 RA 서비스가 은행·증권업권 전반으로 확산되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RA는 로봇(Robot)과 자문가(Advisor)의 합성어로, AI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로 개인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구성·운용하는 서비스다. 추천 상품만 제시하고 가입자가 매수·매도를 결정하던 자문형에서, AI가 운용을 대신하는 일임형으로 진화했다. 방치됐던 퇴직연금 자산과 극심한 수익률 격차가 이런 전환의 배경으로 꼽힌다.
상위 10% 19.5% vs 하위 10% 0.5%…수익률 양극화

퇴직연금 시장의 오랜 약점은 '방치'로 지적돼 왔다. 가입자 스스로 상품을 고르고 갈아타야 하지만, 정작 가입 이후 계좌를 사실상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실적배당형 수익률(16.80%)이 원리금보장형(3.09%)의 5배를 웃도는데도 그 격차를 그대로 방치한 가입자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수익률 상위 10% 그룹은 적립금의 84%를 실적배당형에 투자해 19.5%의 수익률을 올린 반면, 하위 10% 그룹은 적립금의 74%를 원리금보장형에 묶어둔 채 0.5%대 수익률에 머문 것으로 조사됐다. 적립금 증가분 중 운용수익 비중도 상위 10%는 67%에 달했지만, 하위 10%는 납입금 의존 구조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올해 2분기에는 증시 상승에 영향으로 실적배당형 적립금이 197조7천억원으로 전분기 보다 35.9% 늘었지만 근본적으로 방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을 유치하기 위한 금융권 전략이 RA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미래에셋·신한투자증권, 자체기술로 승부수

시장 선점 전략은 자체 기술 구축과 외부 위탁 제휴, 두 방향으로 나뉜다.
자체 기술로 승부를 건 곳은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해 4월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NH농협·KB국민·IBK기업·신한은행과 BNK부산·경남은행까지 제휴를 넓혀 'M-ROBO'를 확대해왔다. 지난달 5일부터는 미래에셋증권 자체 앱에서도 가입할 수 있게 되며 5대 시중은행 중 4곳을 포함한 폭넓은 채널을 갖췄다.

미래에셋증권 앱은 투자 성향별 알고리즘 4종을 제공한다. 그룹 내 AI 계열사 웰스스팟이 개발에 참여해 기술을 자체 내재화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기준 순자산은 226억원, 상용화 가능한 알고리즘 7종의 운용 기간 기준 평균 누적수익률은 66%로 집계됐다. 연환산이 아닌 누적치라 다른 사업자와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신한투자증권도 자체 기술로 승부를 걸었다. 이 회사는 지난달 31일 자체 개발한 AI 퀀트 모델 기반 '신한 SOL 로보 연금'을 출시했다. 투자성향별로 ETF 자산배분과 정기·수시 리밸런싱을 자동 수행하며, 최소 100만원부터 이용할 수 있다.

2023년 12월부터 코스콤 테스트베드에서 검증해온 이 전략은 공시 기준(8월 24일) 누적수익률 적극투자형 66.85%·위험중립형 45.57%·안정추구형 24.63%를 기록했다. 다만 이 역시 테스트베드 성과로 향후 수익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디셈버·콴텍 위탁 제휴 진영, 은행·증권 전방위 공급

외부 위탁제휴 대표주자는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이 지난해 3월 파운트투자자문과 손잡고 금융권 최초로 RA 서비스를 출시하자, 여러 투자 일임업자가 뒤이어 파고들었다.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은 AI 투자플랫폼 '핀트'의 디셈버앤컴퍼니다. 지난해 4월 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6월 NH농협, 8월 KB국민, 9월 IBK기업, 10월 KB증권까지 제휴를 맺으며 11개 금융사로 넓혔다.

디셈버만은 아니었다. 같은 해 11월 에이아이콴텍·퀀팃투자자문이 우리은행과 손잡았고, 에이아이콴텍의 적극투자형 포트폴리오는 연 41.7%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며 존재감을 알렸다. 다만 이는 특정 시점 성과로,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12월에는 현대차증권도 한국투자신탁운용과 제휴해 IRP 일임 서비스를 선보였다.

올해는 지방은행까지 가세했다. 디셈버(핀트)·퀀팃투자자문이 나란히 BNK부산·경남은행과 손잡으며 위탁 제휴 진영이 전 업권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위탁 제휴를 택하는 배경에는 실물이전 서비스 도입 이후 가속화된 자금 이동 경쟁이 있다. 한 시중은행 연금사업부 관계자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도입 이후 증권사로의 자금 이탈을 막고, 원리금보장형에 묶여 있던 은행권 연금 자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RA 일임 제휴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체 기술이냐 위탁 제휴냐…우열 구분 쉽지 않은 초기 국면

양 전략간의 우열을 가늠하는 건 현재로선 쉽지 않다. 자체 기술을 택한 미래에셋의 M-ROBO는 지난달 18일 기준 순자산 226억원을 기록했다. 위탁 제휴 진영에서 가장 앞선 디셈버앤컴퍼니(핀트)는 RA 일임 시장 점유율 약 36%(운용자산 약 280억원)를 차지했다. 다만 개별 사업자 하나의 성과라 진영 전체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구조도 다르다. 자체 기술은 개발 부담이 있지만 외부 수수료가 없고, 위탁 제휴는 초기 부담이 적은 대신 성과가 외부 업체에 좌우된다.

전망도 엇갈린다. AI투자일임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IRP 계좌당 연 900만원, 2년 합쳐도 1천800만원 한도에 묶여 있지만,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이 연장되거나 법제화되면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한 금융사 연금 담당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로보어드바이저는 결국 사람이 하는 투자일임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수단일 뿐"이라며 "뚜렷한 수익률을 보여주지 못한 위탁 개발업체들은 어려움을 겪는 반면, 미래에셋처럼 자체 기술을 가진 곳은 계속 사업을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셈법 차이 속에 주요 은행들은 한쪽에 베팅하기보다 두 진영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정중동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NH농협·KB국민·IBK기업은행이 미래에셋 M-ROBO와 디셈버 핀트를 함께 도입해 가입자에게 선택지를 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입 전 필수 체크포인트: 한도 이월·수수료·테스트베드 검증

전문가들은 AI에게 노후 자금을 맡기기 전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한도와 이월 구조다. 금융위원회가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조건으로 정한 한도에 따라 RA 일임은 IRP 계좌당 연 900만원까지 설정 가능하고 매년 900만원씩 늘어나며, 미사용분은 다음 해로 이월된다. 예컨대 1년 차 500만원만 계약했다면 남은 400만원이 이월돼 2년 차 한도는 1300만원이 된다. 복수 일임업자와 계약해도 합산액은 한도를 넘을 수 없다.

다음은 수수료다. 자산 비례 정률 보수와, 수익 났을 때만 떼는 성과 연동형 보수 중 투자 성향에 맞는 모델이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 적립금이 불어날수록 정률 보수 부담과 복리 효과가 커지는 만큼, 성과 연동형이나 낮은 보수율 상품도 비교해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마케팅 문구보다 '코스콤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 공시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분산투자 여부, 투자자 성향 분석 체계, 해킹 방지 체계 등을 검증하며 시장 감시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테스트베드 통과 자체가 금융당국의 수익성 보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과 우수하지만 원금 손실 가능성 존재…'모니터링' 병행해야

RA 서비스는 금융위원회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한 신생 시장이다. 미래에셋·디셈버 등 개별 사업자 운용액은 수백억원대로 553조원 규모의 전체 시장에 비하면 초기 단계지만, 그만큼 성장 여력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AI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RA 서비스는 결국 초개인화 서비스로 진화할 것"이라며 "고액 자산가가 아니어도 일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RA 서비스가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실적배당형 상품인 만큼 시장 상황에 따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RA 서비스는 장기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실적배당형 상품인 만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AI 알고리즘이 예측 불가능한 시장 충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가입자 역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결국 AI에게 맡긴 뒤에도 한도·수수료·알고리즘 검증 여부를 주기적으로 살펴보는 습관이 현명한 투자자의 조건으로 꼽힌다. 그런 점검이 쌓일 때 방치됐던 550조 연금 시장의 수익률 격차도 서서히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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