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인전은 아티스트 김가범 그녀만의 특유의 색들은 그림 속 오일 매체들이 쌓이고 긁히며 변신하는 과정에서 계산된 것 같은 추상적 색채를 정교하게 보여준다.
이 작업들은 단순한 믹스 앤 매치의 자연스러운 물적 매체 특성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작업을 통해 나오는 계산된 그녀만의 색면추상 개념이다.
비교적 단순화된 색면추상에 가까운 느낌으로 작업한 근작 시리즈의 연장선으로써, 더욱 넓은 아티스트 김가범이 표현하는 색채 추상의 개념이 전시회를 방문하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수 있는, 확장되고 포괄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것 같다.
아티스트 김가범은 하나의 작품을 두고 수십, 수백 번 칠하고 긁고 벗겨내고, 다시 덮어 칠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가 선보이는 블루 계열의 500호 작품을 보면, 한없이 드넓은 바닷속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있고, 검정 계열의 바탕에 새하얀 터치가 포인트로 들어간 1천 호 사이즈 작품 앞에 서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여유롭게 유영하는 느낌마저 든다.
하나하나의 작품이 모두 작가의 숙고와 반복적 시행착오를 통해 탄생한 작품이기에 관객은 그 깊이를 더욱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
여러 가지 색을 고루 섞되 과하지 않게 하나의 느낌으로 녹여낸 작품은 계산된 디테일과 간결한 모습이 두루 공존하는 그녀의 모습과도 닮은 면이 있는 듯하다.
아티스트 김가범은 이번 작품들을 준비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기에는 작은 캔버스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어 더 큰 사이즈의 작품에 도전했다. 앞으로도 내 힘이 닿는 한 큰 작품을 시도하면서 작가 스스로는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이번 작업의 소외를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멀리 두고 한참을 고민하고, 그 생각을 나이프 끝에 담아 캔버스 앞으로 다가가 과감한 터치를 이어나가는 그녀는 또한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나의 시간과 고민을 담은 에너지를 관객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이번 전시의 바람을 전했다.
■ 아티스트 김가범 개인전
금호미술관( 서울 종로구 삼청로) | 6월 30일 ~ 7월 10일
△ 전시 평론
김가범의 회화-
연속된 순간 속 ‘고요한 충돌’, 색채 추상의 새로운 평야
작가 김가범의 작품은 매우 자유로운 선과 면으로 채워진다. 그 선과 면의 중심엔 언제나 색(色)이 있다. 그리고 그 색은 그 자체로 어둠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다.
특히 색은 화면을 주도하는 특유의 조형요소로서, 행위를 머금은 시간의 흔적, 미적 욕망의 동기화이자, 물질과 내면을 동시에 엿보게 하는 하나의 창이 되곤 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그의 ‘색’에 대해 과거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김가범의 회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색이다. 유동하는 빛의 낱낱이요, 알알의 빛, 생명의 율동을 머금은 빛의 향연이 곧 그의 색이다. 다만 이 색은 시각에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있으나 없는 듯한 상태로 버무려져 피어난다.” 그게 2016년이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니, 6월 30일 금호미술관에서의 개인전에 맞춰 선보인 근작들은 그저 흘렀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어쩌면 시간의 겹(layer), 세월의 적(積), 삶의 집(集)이 시간에 비례하여 조금씩, 차곡히 누적되었다는 게 옳다. 그만큼 2016년과 2022년 사이엔 일정한 간극이 있다.
최근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대작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30여 점의 신작 대부분이 그렇다. 이전에도 대형 유화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번엔 유독 아기자기한 작품들은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작가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한껏 부유하는 500호와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1000호 정도의 작업은 처음이다.
물론 작품의 크기와 작품성은 무관하다. 미학적 평가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무턱대고 크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나아갈 방향에 일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의미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 예술가의 미적 진화를 담보하는 것이라면 특별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가로 130센티미터짜리 캔버스를 6개 이어 붙인 1000호짜리 작품 <Untitled>(2022)이다. 어둑함의 밀도로 채워진 이 작품은 드물게도 작가 특유의 원색이 거세된 채 온통 검은 배경을 하고 있다. 중간중간 느낌표를 찍듯 텁텁한 무채색이 솟구치듯 침잠한다. 상당한 크기임에도 강약과 리듬이 어색하지 않게 자리한다는 게 특징이다.
(중략)
1000호짜리 그림이든 500호든 김가범의 근작들은 모두 의도와 의식화의 단계를 건너뛴 채 태어난 것임을 확인시킨다. 우연성과 자유로움, 무작위적인 것과 감정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여기에 작위적인 것과 이성적 질서에 대한 중압감은 배어있지 않다.
김가범의 삶 자체를 이끄는 필연성을 중심으로 행위, 몸짓, 시간, 공간, 사물, 삶, 관계라는 명사들이 알알이 박혀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기엔 하나의 추상화지만 그에겐 삶을 밑동으로 한 가장 정직하고도 솔직한 문법이 바로 근작이랄 수 있다.
한편 색채 추상이라는 대지에 새로운 씨를 뿌리고 있는 그의 작품 중 일부 작업에서는 양가성(兩價性)이 읽힌다. 인간 감정이 하나일 수 없듯 동일 현상에 대한 상반된 태도가 동시에 공존하는 성질 혹은 대립적인 감정 상태로 남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몇몇 작업은 동시적이면서 개별적이다.
그럼에도 시간을 지렛대 삼는 행위는 자신의 삶을 통한 사회언어학적 상황을 특징짓는 언어의 역할에 충실하다. 작품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의지가 의미를 생성해온 그의 삶의 흔적 또한 어느 방향에서든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나이프의 획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감정의 상태들, 시작과 끝나는 시점의 행위가 분명히 나타나는 즉발성 등이다. 다른 작품들처럼 이들 작업 역시 같은 소실점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소실점은 정체성의 확인과 무관하지 않다.
정체성은 나에 관한 자문과 갈음되고, 자문은 타자성을 통한 깨달음으로써의 존재를 지향하는 태도이다. 김가범에게 이는 작품을 통해 바라보는 진정한 자신이며, 삶에 관한 인식을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추구하는 표현 형식과 미의식을 생성하는 중요한 고리이다. 여기에 작금의 작업에 있어 두드러진 조형적 거대함은 곧 원대함과 맞닿고, 자유의 크기와도 무관하지 않으며 그렇게 생성된 미적 자유는 다시 사회 속 존재, 실존으로서의 자유의 범주와 갈음된다.
그런 까닭에 김가범의 작품들은 경험을 포괄한 삶의 시간성 및 깊이와 관련이 깊다. 즉 그에게 있어 작품은 존재자로서의 사회와의 호흡이요, 내적인 것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현재를 그러모은 일체의 투영인 셈이다.
그것은 캔버스나 매체에 물감을 뒤섞은 빛과 색의 결정체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 있어 그 자체로 작가 자신의 삶과 존재성, 자신과 바깥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힘겨운 기록이자, 존재와 부재, 알 수 없는 미완의 추상적 인간 삶에 관한 진실한 독백과 다름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독백이 이젠 방백으로 전이된 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평론 중 발췌
위 평론 글처럼 미술평론가 홍경한은 아티스트 김가범의 이번 신작을 두고 “그의 작업에는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욕구로 가득한 예술가로서의 일상과 살아오며 겪어야 했던 삶의 단락에 관한 애증 등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며, 작가의 의지를 높이 사기도 했다.
40대라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붓과 나이프를 들었지만, 갈수록 과감해지는 그녀의 작품과 전시 활동을 보고 있자면 그녀의 의지는 여느 청년 화가 못지않아 보인다.
벌써부터 김가범의 진화된 새로운 작업들이 기다려진다. 이번 아티스트 김가범의 개인은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에 위치한 금호미술관에서 6월 30일부터 7월 10일까지.
김창만 글로벌에픽 기자 chang@asiaar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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