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수익률 격차가 발생하는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계약형 퇴직연금은 근로자 개인의 자금만으로 특정 금융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다. 반면 기금형은 여러 근로자들의 자금을 모아 전문가가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자금 규모가 커지면서 개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수익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고, 전문가의 운용으로 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대규모 자금 풀을 운용하므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보장상품에 과도하게 투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기금형 퇴직연금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금융기관이 완충 역할을 하는 계약형과 달리, 기금형은 투자 실패 시 그 손실을 가입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전문가의 실수나 특정 이해관계에 따른 기금 악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주와 같이 기금형 중심으로 발전한 국가들도 과거에는 수천 개의 기금이 난립했지만, 현재는 경쟁력 있는 소수의 기금만이 살아남아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할 때는 바람직한 구조를 갖춘 기금형이 설계되어야 하며, 퇴직연금 가입자들도 신중하게 기금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기금형 퇴직연금의 구조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기금의 고유계정과 퇴직연금 적립금계정이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 기금형과 유사한 구조인, 펀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별도의 사무관리사와 자산관리사를 두어 펀드 가입자의 재산이 자산운용회사의 이익을 위해 오용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퇴직연금 기금도 이와 같은 엄격한 분리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최근 기금형 도입에 관한 논쟁에서는 기금수탁법인의 성격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영리법인으로 할 것인가, 비영리법인으로 할 것인가? 실체가 있는 법인만 허용할 것인가, 페이퍼컴퍼니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원칙—운영과 운용의 분리, 계정의 명확한 구분—이 철저히 보장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하는 중요한 사회안전망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의 도입이 단순히 수익률 제고를 넘어, 더 안전하고 투명한 노후 보장 체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내리는 선택이 미래 세대의 안정적인 노후를 좌우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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