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아 변호사
민법 제816조는 혼인의 취소 사유를 규정하고 있으며, 그중 제3호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혼인’을 명시하고 있다. 사기는 혼인당사자 일방 또는 쌍방에게 허위의 사실을 고지하여 착오에 빠뜨려 혼인의사를 결정하도록 한 것이며, 강박은 혼인당사자 일방 또는 쌍방에게 해악을 고지하여 공포심을 가지게 하여 혼인의사를 결정하게 한 것을 의미한다.
법원은 혼인취소 사유에 대해 일반적인 속임수나 단순 과장 수준이 아닌, 결혼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 고의로 학력이나 직업을 속인 경우 △ 막대한 채무를 숨긴 경우 △ 정신질환이나 범죄 전과 사실을 은폐한 경우 △ 혼인 전력이나 자녀 출산 전력 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기망한 경우 등은 사기결혼으로 인정된 바 있다. 또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하여 의사결정능력 및 판단력이 매우 떨어진 상태에서 한 혼인의 경우도 취소사유에 해당된다.
민법 제824조에 의하여 혼인 취소의 효력은 소급하지 않는다. 즉, 혼인이 취소가 되면 장래를 향하여 혼인이 해소되므로 혼인 취소 전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 출생자가 되고, 혼인당사자 일방이 사망한 후에 혼인이 취소되어도 다른 일방은 이미 취득한 상속권을 잃지는 않는다.
장래를 향하여 혼인이 해소된다는 점에서 이혼과 다르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혼에서는 당사자의 유책성에 대한 판단을 중점으로 둔다면 이혼 취소는 이혼 성립에 대한 기망 여부와 진정한 혼인의사 존재여부가 중심 쟁점이 된다. 그리고 취소청구권이 있는 제3자도 소를 제기할 수 있으며, 당사자의 사망으로 혼인이 해소된 경우에도 혼인으로 인해 존속하고 있는 인척관계를 소멸시키기 위해 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점 등에서 실익이 있다.
절차적으로는 혼인취소소송을 가정법원에 제기해야 하며, 혼인 당시 사기나 강박이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황자료나 진술이 확보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재판을 통해 혼인취소가 인정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위자료나 재산분할청구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정진아 변호사는 “사기결혼은 단순한 부부 간 신뢰 파괴의 문제를 넘어, 혼인이라는 제도 자체가 무너지는 심각한 침해입니다. 법원은 기망행위가 혼인의사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경우, 이혼이 아닌 혼인취소를 통해 구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진정한 결혼은 신뢰를 전제로 한다. 고의적인 기망으로 시작된 혼인은 단순한 파탄이 아니라, 애초에 성립 자체가 무의미한 구조였다면 혼인의 취소로 정리되는 것이 법의 기준이다.
[글로벌에픽 이수환 CP / lsh@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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