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시도, '라라노트'와의 만남
사단법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 회장 추가열)와 OGQ블렌딩(대표 신철호, 사장 손창원)이 체결한 이번 계약의 주인공은 AI 악보 변환 서비스 '라라노트'다. 이 서비스는 음악 이론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사용자도 쉽게 악보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혁신적인 도구로, 기존의 수작업 악보 제작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라라노트의 작동 방식은 놀랍도록 간단하다. 사용자가 원하는 음원을 업로드하면 AI 모델이 이를 자동으로 분석해 악보로 변환하고, 이를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준다. 복잡한 음악 이론을 모르더라도 좋아하는 곡의 악보를 얻을 수 있어,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AI 서비스의 저작권 사각지대, 이제는 정면 돌파
현재 AI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딜레마는 저작권 문제다. 대부분의 AI 서비스는 모델 학습 단계와 소비자 서비스 단계로 나뉘는데, 각 단계에서 저작권 이용 행위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AI가 음악을 학습하기 위해 음원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음악저작물이 데이터로 복제되고, 학습된 결과물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때는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방식의 전송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현재 상당수의 AI 서비스들이 저작권자와의 정식 계약 없이 음악저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AI 산업 전반이 대표적인 저작권 사각지대로 지적받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소송이 본격화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독일 음악저작권협회(GEMA)의 공격적인 법적 대응이다. GEMA는 2024년 11월 OpenAI의 생성형 인공지능 ChatGPT가 노래 가사를 무단 학습·사용한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주요 저작권 단체가 생성형 AI 제공업체를 상대로 한 세계 최초의 소송으로, AI 산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5년 1월에는 Suno 및 Udio에 대해 AI 모델 훈련에 음원을 무단 활용한 사실을 확인하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미국에서도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와 저명한 작가들이 Open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AI와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갈등 상황에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OGQ블렌딩의 계약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저작권 집중관리단체가 AI 서비스를 대상으로 정식 이용허락 계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이기 때문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1964년 설립된 국내 최대 음악저작권 신탁관리단체로,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음악저작권 신탁관리단체 전문기관으로 아시아지역에서는 일본음악저작권협회에 이어 2번째로 많은 회원수를 가지고 있다. 협회를 이끌고 있는 추가열 회장은 2022년 2월 24대 회장에 취임한 후 국제저작권단체의 UN과도 같은 CISAC 이사국에 재당선되는 쾌거를 이뤄내며 협회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번 계약은 AI 산업의 발전과 창작자 권리 보호가 상호 충돌이 아닌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되었다. 특히 AI 서비스가 음악저작물 이용에 대해 정식 계약을 체결한 세계 최초의 사례인 만큼, 앞으로 유사한 서비스들이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AI 악보 변환 시장의 성장과 기술적 발전
AI를 활용한 악보 변환 기술은 최근 들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Klangio의 Piano2Notes, Guitar2Tabs, Melody Scanner 등 다양한 AI 악보 변환 서비스들이 상용화되어 있다. Klangio AI가 음악을 듣고 자동으로 텍스트로 변환하며, 빠르고 정확한 멀티 악기 – 가장 강력한 전사 앱으로 음악을 업로드하고 여러 악기에 대한 노트를 한 번에 받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스트라에서 개발한 AI가 디지털 음악파일(MP3)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컴퓨터 음악규격(미디) 형태로 변환해 주고, 3,4분 길이의 노래 1곡을 미디로 변환하는데 2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술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존 음악저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작권 문제는 이 분야의 핵심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와 AI 산업의 상생을 위한 과제
이번 계약이 성공적인 선례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먼저 AI 서비스 분야의 음악저작물 이용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 음저협은 이번 계약을 기점으로 후속 연구를 추진하고, 국내외 주요 AI 사업자들과의 계약 체결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합리적인 라이선스 체계 구축도 중요하다. GEMA는 AI 시스템을 위한 라이선스 프레임워크를 도입, AI 모델의 순수익의 30%를 요구하고 있으며, GEMA 연구 결과 AI 서비스로 인해 작곡가와 작사가 수입의 27%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해외에서도 AI와 저작권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AI 기업들은 저작권 문제에 대해 '공정이용(fair use)' 원칙을 내세우며 반박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 지방법원은 최근 챗GPT가 생성한 결과물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저작권자들의 저서와 유사하지 않다는 오픈AI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판단은 아직 확정적이지 않으며, 국가별로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황선철 사무총장은 "이번 계약은 AI 산업이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저작권 계약의 선례를 마련함으로써 AI 서비스의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이용허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세계 최초의 계약은 단순히 한 기업과 한 협회 간의 합의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AI 기술의 발전이 창작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협력 모델이 다른 AI 서비스들로 확산되고, 나아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이 제시한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전 세계 AI 산업과 저작권 제도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결국 기술의 진보와 창작자의 권익 보호는 양립할 수 있으며,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이라는 것을 이번 계약이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다른 AI 기업들과 저작권 단체들이 이 선례를 어떻게 따라갈지, 그리고 AI 시대의 새로운 저작권 질서가 어떻게 구축될지 지켜보는 것이 남은 과제다.
[글로벌에픽 신승윤 CP / kiss.sfws@gmail.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