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협상 타결 전부터 미국 워싱턴DC에 잇따라 집결해 미 정부 고위급과 접촉하며 정부 협상력에 힘을 보탰다.
조선-반도체-자동차, 산업 3각편대의 완벽한 조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28일 가장 먼저 워싱턴으로 출국해 조선 산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의 구체화 작업에 나섰다.
29일에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워싱턴에 도착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테슬라와 23조 원 규모의 AI 칩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팹 가동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이 회장의 방미는 반도체 분야 협력 확대를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해 워싱턴 현지에서 정부 협상단과 합류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조지아주 차량 생산 확대와 루이지애나주 철강 공장 건설 등 2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 이번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카드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됐다.
3500억 달러 투자패키지의 실체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미국 정부가 소유하고 통제하며 대통령인 내가 직접 선정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미국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앞서 일본이 투자기금 형태로 5500억 달러 상당의 투자를 약속한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한국이 미국에 투자키로 한 3500억 달러 중 1500억 달러가 조선업 협력 부문에 배정됐다고 전해졌다. 나머지 2000억 달러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 확대,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및 철강 산업 투자 등으로 구성될 것으로 추정된다.
관세율 25%→15% 인하 성과
이번 협상 결과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에 당초 예정됐던 25% 대신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일본과 유럽연합이 미국과 합의한 관세율과 동일한 수준으로, 한국이 주요 경쟁국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됐음을 의미한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 지난 4월부터 25%의 품목관세가 부과된 상황에서 일본과 EU가 15%로 인하에 성공했던 만큼, 정의선 회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의 전략적 투자카드들
재계는 이재용 회장이 인공지능(AI) 반도체 협력,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추가 투자 등을 협상 카드로 제안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테슬라의 AI 칩 A16을 테일러 공장에서 생산하는 계약을 수주했는데, 칩 완성을 위해선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연결하는 패키징 시설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의선 회장 역시 앞서 3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조지아주 생산 시설 확대, 루이지애나 제철소 신설 등 210억 달러 규모 '투자 보따리'를 제시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 정부 고위급과 만나 관세에 따른 국내 완성차 업계의 우려를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2주 내 한미 정상회담 개최 예정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이 앞으로 2주 이내에 백악관을 방문해 양자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무역협정 타결을 계기로 한미 관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임을 시사한다.
시장 개방 조치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을 포함한 미국 제품을 자국 시장에 허용하고 수입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라고 설명했다.
민관 협력의 새로운 모델
이번 협상은 정부 차원의 외교와 민간 기업의 경제 외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반도체-자동차 등 한국의 핵심 산업을 대표하는 총수들이 각자의 투자 계획과 기술 협력 방안을 바탕으로 미국 정부를 설득한 것이 협상 타결의 핵심 동력이었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자동차·반도체·조선 등 핵심 산업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총출동한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민간의 진정성과 실질적 기여를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었다"며 "이들의 방미가 미국 내 일자리와 생산기지를 책임지는 한국 기업들의 공헌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2025년 2월 1일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무역전쟁 상황에서 한국이 주요 경쟁국과 동등한 수준의 관세 혜택을 확보한 것은 향후 글로벌 무역질서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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