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s View]지배구조 개편 파고, 삼성은 어떻게 헤쳐 나갈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911095227009945ebfd494dd112222163195.jpg&nmt=29)
'삼성생명법'의 핵심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총자산 3%)를 평가할 때 기준을 취득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것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1%의 취득가는 5,444억원에 불과하지만, 시가는 약 30조원에 달한다. 총자산 319조원인 삼성생명의 3% 한도는 9조5700억원이므로, 법안 통과 시 최소 20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이는 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간접 지배력을 급격히 약화시키는 위기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역설적으로 기회이기도 하다. 20조원 매각으로 10조원 이상의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법인세를 제외하고도 상당한 현금이 남는다. 이 자금은 지배구조 개편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현재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직접 지분은 1.6%에 불과하다. 오너 일가 전체를 합쳐도 5%를 넘지 않는다. 이처럼 낮은 직접 지분율을 복잡한 간접 출자 구조로 보완해온 삼성은 이제 근본적인 전환점에 섰다.
즉 삼성생명법은 삼성 지배구조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겨냥했지만 이재용 회장에게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배구조를 단순한 직접 지배구조로 전환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핵심은 20조원에 달하는 자금 확보방안이다.
오너 경영 근간 흔드는 상법 개정안
삼성생명법이라는 첫 번째 파도에 이어, 상법 개정이라는 두 번째 파도도 밀려오고 있다. 이번에는 총수 일가가 낮은 지분율로 그룹을 지배해온 방어벽 자체를 허무는 공격이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들은 오너 경영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며, 자사주 매입 후 1년 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들이다. 특히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그동안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던 관행을 원천 차단하려는 목적이 크다.
삼성전자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총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완료했다. 법안 발의보다 앞선 이 결정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전체 주식 수 감소로 모든 주주의 상대적 지배력이 높아지고, 주당 가치도 상승한다. 더 중요한 것은 법적 강제성이 생기기 전 자발적 실행으로 주주 친화적 이미지를 제고했다는 점이다.
상법 개정 움직임은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소액주주 권익 보호와 투명성 제고라는 시대적 흐름에 삼성은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법적 강제보다 자발적 개선을 통해 변화를 주도하려는 전략이다.
결국 삼성의 10조원 자사주 소각은 단순한 주주가치 제고를 넘어 복합적 전략의 결과물인데 법적 압박에 앞서 자발적 개선으로 주도권을 잡으면서 실질적으로 지배력 방어 효과까지 거두게 됐다.
지배구조 개편의 마스터 키, '삼바' 인적분할
두 개의 외부 파도에 맞서 삼성이 내놓은 해법이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이다. 표면적으로는 사업 전문성 강화지만, 그 이면에는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정교한 전략이 숨어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동안 위탁생산(CDMO) 사업과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동시에 영위하며 고객사들과 이해상충 문제에 직면해왔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해 계약을 꺼리는 문제가 실제로 발생했다.
11월 1일 인적분할로 순수 CDMO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시밀러는 신설 '삼성에피스홀딩스'가 담당하게 된다. 이로써 사업 간 이해상충이 해소되고 각각 독립적인 기업가치 평가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20조원 규모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여기서 새로 설립되는 삼성에피스홀딩스가 핵심 역할을 한다.
바이오 R&D 영역의 고부가가치를 독립된 지주회사로 분리함으로써, 향후 IPO나 대규모 투자 유치, 전략적 M&A를 통해 그룹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생긴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바이오 사업을 통해 우회적으로 마련하는 구조다.
최종 그림은 명확하다.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라는 취약한 구조를 '삼성물산 → 삼성전자'라는 단순하고 투명한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은 바이오 사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립하는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에 필요한 자금과 경로를 확보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재용 회장의 전략은 단순히 지배력 방어에 그치지 않는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그룹의 핵심 사업과 미래 성장동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복합적 해법이다. 삼성생명법과 상법 개정이라는 외부 압박에 맞서, 자사주 소각과 바이오 인적분할이라는 내부 전략으로 대응하는 정교한 설계다.
결국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은 세 번째 파도가 아니라 첫 번째, 두 번째 파도를 넘기 위한 서핑보드다. 사업 개편이라는 명분 하에 지배구조 개편의 마스터키를 확보한 이재용 회장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시장이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삼성이 수동적 대응이 아닌 능동적 혁신을 통해 변화를 주도하려 한다는 점이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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