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이앤씨는 박상신 대표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해 "부산 진해신항 현장에서 선원 한 분께서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시공사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나 표면적인 '안전 최우선' 약속 뒤에서 실질적인 책임자는 누구인가?
'중대재해 최다 기업' 오명 … 반복되는 비극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이앤씨에서는 8건의 중대재해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국내 상위 대기업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2024년 8월에는 자회사 DL건설의 의정부시 공사 현장에서도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후 DL이앤씨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며 관계기관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사고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이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지켰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재래식 사고'라는 점이다. 끼임·깔림·추락 등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그룹 차원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해욱 회장 비상장 회사 통해 '그림자 경영'
DL이앤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해당 현장의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유사 공종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의 작업도 중단했다"며 "전 현장을 대상으로 긴급 안전점검을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근본적인 원인 분석을 통해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재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제 반복되는 패턴을 보면, 매번 DL이앤씨의 대표이사가 나서 공식 사과를 하고, 회사 차원의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정작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최상위 오너인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침묵하거나 거리를 둔다. 이러한 구조적 책임 회피는 과거 국회 청문회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옥상옥 지배구조, 권력은 강화되고 책임은 분산
문제의 근원을 추적하면 DL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에 다다른다. DL그룹은 지주사 DL을 주축으로 하는 건설 특화 집단이며, 동일인 이해욱 회장은 DL의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으나 대림을 통해 지배구조 정점에 올랐다. 그는 2021년 DL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때 비상장사 대림→상장사 DL→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했는데, 이는 옥상옥 구조다.
이해욱 회장의 동일인 지분율은 지난해보다 다소 하락했지만, 대림의 DL 주식 취득을 늘리며 내부지분율을 크게 높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해욱은 2025년 5월 1일 기준 DL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대림 지분 52.26%를 보유하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해욱 회장은 최상위 지배자로서 DL이앤씨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공식적인 경영 책임은 각 계열사의 대표이사나 현장 책임자에게 분산된다.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으면서도 일일이 책임지기는 어렵다는 논리다. 이해욱 회장의 지배력은 커졌지만 경의 책임 소재는 불확실한 측면이 강하다.
국회와 언론이 지적한 '총수 책임' 구조
정치권과 언론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언론에서는 "사고의 궁극적 시스템 책임자는 오너인데, 표면적 사과와 처벌은 대표이사에 국한, 실질적 총수는 책임에서 빠져 있다"는 취지의 비판이 반복적으로 보도된다.
국회 차원에서도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대림이앤씨의 경우 작년에 발생한 중대재해도 조사조차 되지 않았다"며 "아무리 중처법을 완화시키고 싶어도 법이 있는 동안은 수사해야 될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이해욱 DL그룹 회장의 책임을 강조하며 "그룹의 최고 책임자들이, 최고 소유자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현장 관리 미흡'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DL그룹 사고는 대부분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재래식 사고'였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이유는 그룹 차원의 경영 시스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 청문회의 지적을 보면, 국회에서는 "DL그룹의 하도급 구조·최저가 낙찰 등 시스템적 문제가 반복적인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비용 최소화를 위한 경영 방식이 궁극적으로 현장 안전을 외면하는 구조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주요 건설사보다 2년 늦은 CSO 임명
흥미롭게도 DL이앤씨가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임명한 것은 다른 주요 건설사들보다 무려 2년이나 늦었다. 주요 10대 건설사들이 2021년 말 혹은 2022년 초에 일제히 CSO를 선임했던 것과 비교하면, DL이앤씨 및 DL건설이 안전경영 강화에 상대적으로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DL이앤씨가 CSO를 부재했던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약 2년간 무려 7건의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는 이해욱 회장 체제에서 안전 경영을 얼마나 후순위로 취급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가치 극대화에는 열정적이었지만, 현장 노동자의 생명 보호에는 소극적이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실질적 책임 경영이 필요한 시점
결국 문제는 명확하다. DL이앤씨의 반복되는 중대재해와 책임 회피 구조는 복잡하고 불투명한 지배구조에서 비롯된다. 이해욱 회장의 지배력은 커졌지만 경의 책임 소재는 불확실한 측면이 강하고, 현대차그룹, 삼성그룹, SK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른 지배구조 혁신과 사회적 책임 강화에 나서고 있는 만큼 DL그룹 역시 옥상옥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욱 회장이 두 가지 과제, 즉 '복잡하고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단순화 및 투명성 제고'와 '안전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 경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부산항에서 또 다른 생명이 사라진 지금,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총수의 책임'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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