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는 지난해 12월 17일 두산을 SK실트론 지분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상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지분 19.6%를 포함해 SK가 보유한 지분 70.6%다. TRS는 기업이 주식을 담보로 차입금을 조달하는 금융 구조로, 주식 소유권은 유지하되 배당금과 손실을 금융사와 공유하는 형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지분 29.4%는 SK의 매각이 완료된 후 별도로 협상할 예정이었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칩의 핵심 기초소재인 12인치 웨이퍼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 전문기업이다. 300mm(12인치) 웨이퍼 시장에서는 전 세계 점유율 3위(약 18%)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실리콘 웨이퍼 시장 기준으로는 2025년 5위(11.31%)로 평가받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인프라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7개월 동안 협상 중 … 시장가치 6조 예상도
그러나 공시 이후 SK는 "세부 사항은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당초 예상된 5월 마무리는 물론, 이후 어떤 진전도 공개하지 않았다. 7개월이 지난 지금도 협상은 진행 중이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협상이 지연된 핵심 이유로 반도체 시장의 급변을 꼽고 있다. 협상을 시작한 이후 인공지능 성장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다. 이는 SK와 두산이 기대했던 시장 조건을 완전히 뒤바꿨다.
SK는 원래 SK실트론의 지분 가치를 5조원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협상 초기 반도체 시장호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업 가치 평가가 상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고, 일각에서는 6조원 이상으로 재평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다만 현재 협상 테이블에서는 여전히 지분 가치 5조원대가 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가격 재협상 과정에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협상이 더욱 복잡해진 상태다.
사업전략 달라진 SK … 실트론 매각은 소탐대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SK 자체의 사업 전략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SK는 최근 '인공지능 풀스택 프로바이더'를 사업 비전으로 내세웠다. 이는 반도체부터 메모리칩 생산까지 AI 관련 전체 밸류체인을 통합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비전 아래서 반도체용 웨이퍼의 핵심 제조사인 SK실트론을 매각하는 것은 전략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도 이를 반영하듯 향후 5년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을 2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최근 최 회장은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급증을 직접 '아비규환'에 빗대 표현하며 시장의 호황과 혼란을 동시에 강조했다.
인공지능 성장으로 글로벌 웨이퍼 제조사들의 주가가 40~205%를 뛴 가운데, SK는 반도체용 웨이퍼를 생산하는 핵심 계열사인 SK실트론의 가치가 급등했다는 점도 매각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다.
“우선협상자 선정해 놓고 매각 철회 안돼”
한편, 최태원 회장의 개인 사정도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4일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액이 9440억원으로 결정됐다. 당장 현금이 필요한 최 회장으로서는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SK실트론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반도체 같은 핵심 계열사 매각 논의가 개인의 이혼 소송과 엮일 경우 SK에 미치는 부담이 클 수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자금 조달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설립한 AI 컴퍼니에 약 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도 추가 자금 수요가 여전함을 시사한다.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31일 이사회, 최종 결정의 시간
SK는 31일 이사회를 열 예정이고, 이 자리에서 SK실트론 매각이 안건으로 다뤄질 것이라고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SK와 두산은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고 새로운 가치평가를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이사회까지 남은 시간 동안 두 회사가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추가 협상을 지속할지가 초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 상승에 따라 SK실트론의 기업 가치가 과거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중장기 사업 전략의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해 양측 모두 협상을 빨리 마무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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