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과 그 위에 널브러진 생채기가 된 살갗들은 보는 것만으로 견딜 수 없는 참상이었다. 잘려나간 손과 발, 목과 어깨, 그리고 머리까지…. 검붉게 흐르는 피로 흥건한 단칸방은 죽음과 절망의 음산한 공기로 짙게 덮여 있었다. 그 차가운 공간을 조용히 한 바퀴 돌아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문밖으로 나오자, 오랜만에 마주한 햇살이 너무 강렬하여 눈부심으로 통증처럼 다가왔다.
오후 시간, 청량리역까지 향하는 짧은 길에서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방송에서 올해 들어 가장 무더운 날이라 말했지만, 내 신체는 역설에 휘말려 있었다. 땀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내 몸 구석구석은 오싹한 냉기에 떨고 있었다.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 듯 오묘한 혼돈의 감각이었다.
오후 3시.
기차표는 매진이었지만, 막 취소된 표를 간신히 손에 넣었다. 두 시간 뒤 출발하는 열차였다. 역 구석에 앉아 스쳐 가는 사람들을 응시했다. 대부분은 휴가를 떠나는 얼굴이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휴가지만 나는 그저 도망치듯 탈출하고 있을 뿐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무더위와 함께 초조함이 온몸에 배어들고, 마음은 이유 없이 조여왔다. 가슴 한편이 무겁게 눌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내일도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그때 ‘슈호프’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뜬금없지만 내 삶과 겹쳐진 인물이었다. 1950년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의 시베리아 수용소 죄수 슈호프. 그는 권력의 횡포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간신히 붙잡으려 애썼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 작업을 나가지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서 더 먹었다….”
그에게 체념은 일상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는 것이 상책이라 믿는 자, 하루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던 자였다.
그런 점에서 시베리아 수용소의 그의 하루가, 나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정신적 고통이 육체의 고통보다 더 깊이 파고든다. 고통은 상상이 되고, 아무리 지우려 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 상상은, 어느새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상상을 부인하려 해도, 상상은 여전히 살아남아 나를 괴롭힐 것이다.”
나의 하루는 늘 오후 늦게 시작됐다. 아침에 눈 뜨고도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겨우 오후 4시 무렵 힘없이 늘어진 몸으로 겨우 일어난다. 공허함은 내 정신을 꽉 채우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람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거웠고, 약속이 미뤄지면 오히려 안도했다. 나는 점차 세상과 멀어져 갔다.
몸과 마음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체념, 무기력, 절망. 어둠이 내 마음을 삼키고, 빛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시간이 되었나 보다. 사람들이 짐을 들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느릿느릿 열차를 향해 발을 옮겼다.
16시 53분.
붉은 햇살이 내 등줄기를 불태우는 듯했다. 열차에 오르자 창가에 앉아 차창 밖 풍경을 바라봤다. 누군가 나를 끌어내릴 것 같은 마음에 불안했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어느새 수용소 간수로 변하는 망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 잔상은 아직도 내 머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은 곧 그 열차에 오르지 않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소년과 빨간 트렁크에 머물렀다. 그 소년은 10대 후반의 나였다.
장항역에서 출발한 열차, 서울행이었다. 빨간 트렁크 안에는 책과 겨울옷 한 벌이 전부였다.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 자정 무렵 도착하면 역에서 노숙해야 할 수도 있었지만,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출발 시점에 흐르던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 노래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노래는 기차역에서 연인과의 기약 없는 이별을 그린 서정적인 노래였다. 그때 그 노래를 들으면서 홀로 떠나는 삶을 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슬프게도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장항역에서의 열차에 오른 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계절, 나의 첫겨울이었다.
나는 장항역에서 갈림길에 서 있었고, 홀로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아니, 그 길밖엔 보이지 않았다. 삶의 불확실성이 견딜 수 없었던 10대의 나는 ‘확신’이라는 우상에 기대었으나, 그것은 나를 옭아매는 족쇄였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은 위험과 분리될 수 없다. 위험을 피하는 순간, 삶은 가혹한 폭군으로 변한다. 위험 회피는 설리번이 말한 ‘선택적 부주의의 함정’이다. 나는 평생 이 함정에 빠져 있었다. 불안을 피하고자 현실 일부를 외면했고, 그것이 더 큰 위험이 될 줄 몰랐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확신은 허상과 거짓, 인간의 사욕이 만들어낸 우상일 뿐이다. 확신에 매달리는 것은 다름 아닌 우상숭배다. ‘나 외에 신을 두지 말라’는 십계명의 첫째 계명은 바로 이 우상숭배를 경계한 말이다.
17시 08분.
청량리를 떠나기 전 창밖 사람들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누군가 나를 붙잡을 듯 뛰어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안도의 마음과 동시에 오래 봉인했던 소년 시절의 기억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그 기억들은 프로이트가 말한 ‘악으로 가득 찬 지하실’이자, 융이 ‘예지의 보물로 가득한 동굴’이라 정의한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 이제 그곳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
붕괴. 내 삶의 조짐을 알리는 단어였다. 연속되어 온 것이 돌연 파국으로 향하는 그 순간. 지난 7월 주식시장이 무너진 것처럼, 내 삶도 무너졌다.
주식시장 붕괴는 투자자의 두려움과 분노 탓이지만, 내 붕괴는 ‘확신’이라는 우상의 산물이었다. 버리지 않는 미련, 현실 부정, 고집… 그것들이 내 삶의 무너짐을 가져왔다.
주식시장의 붕괴 원인이 두려움이라면, 나의 붕괴는 ‘확신’이라는 우상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붕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틈에서 시작되지만, 아무도 그 시점을 알지 못한다. 특히 자신에게는 변명과 합리화가 많아 더욱 시기를 알 수 없다.
나는 탈출을 결심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섰다면, 나는 잃어버린 ‘혼’을 찾아 나섰다. 시간은 삶의 조각일 뿐이지만, 혼은 운명을 가르는 근본이다. 그래서 이 탈출은 절체절명이었다.
17시 43분.
열차는 용문역을 서지 않고 지나고 있었다.
잘 알고 있던 사람에게서 배신당한 가장 쓰라린 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가 있다는 용문사를 떠올렸다. 용문역에 내린 나는 늦은 시간이라 망설인 끝에 용문사까지 걸었다. 상당한 거리였다. 도착했을 땐 이미 어둠이 깃들기 시작해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깜깜한 산길은 달마저 숨었고 헤드라이트 불빛 하나 없었다. 무거운 어둠 속, 한 걸음 옮기기도 힘들었다. 용문사 입구 상가 불빛이 겨우 보이자 온몸에 땀이 흠뻑 배어있었다.
허름한 여인숙에 짐을 풀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 사이로 막걸리를 마신 기억이 난다. 새벽 무렵 갈증에 잠이 깼다.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이 아니었다. 내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갈증이었다. 나는 비몽사몽 간에 길거리에 나섰다.
거리에는 바람 소리로 가득 찼다. 길가의 은행나무에서 열매가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은행나무 열매가 흩날리는 것이 마치 낙엽처럼 보였다. 거리에 나뒹구는 은행나무 열매를 손에 가득 담아보았다.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속에서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삶의 환희였다.
나는 열매를 배낭에 가득 담았다. 나중에 은행 열매의 고약한 냄새가 배낭에 배어있었다. 그리고는 어이없게도 은행나무 열매가 고약하다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은행나무 열매의 고약한 냄새를 모르듯 나는 세상사는 법을 몰랐다.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 가는 과정이 삶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것을 모르던 나는, 타인의 욕망을 따라 살지도 못한 채 혼자서만 헤매고 있었다. 르네 지나르가 말한 ‘모방욕망’조차 없었던 나는,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자체를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용문사를 찾기 직전 처절한 배신을 당했다. 처절한 배신, 그 배신을 비웃는 자까지. 모든 것이 욕망의 소산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허탈했다.
지금도 가을이면 용문사 입구에 홀로 서서 바람을 지켜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삶에 대한 욕망의 불꽃이 재가 되어 다 타버린 날이다.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남들이 다 갖고 있는 모방욕망이라도 있었더라면, 적어도 삶의 의욕이 사라지는 것도, 타인들에게 배신당하는 것도 어느 정도 막았을지 모른다.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하룻밤은 내가 선택한 계절, 나의 첫가을이었다.
18시 21분.
제천역에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때도 비슷한 시간대였을 것이다.
첫 직장을 그만둔 그해 봄, 무작정 떠난 여정의 첫 기착지였다. 대책 없이 직장을 그만둔 내 선택의 이유는 단 하나, ‘타인에 대한 불신’이었다.
역 앞 식당에서 아줌마 셋이 잡담 중, 배낭 멘 내 등장에 그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혼자 국밥을 먹는 내 모습에 그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타인의 시선이 나를 좁은 방에 가둔 듯, 우울한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게 지옥인 거군. 정말 이럴 줄 몰랐는데…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대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극의 세 사람은 창문도 출구도 없는 방에 갇혀 서로를 감시하며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그날 나는 그 감옥 같은 시선을 몸으로 체험했다.
식사를 마칠 때가 돼서야 나는 가까스로 ‘닫힌 방’의 연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나의 상황이 그래서인지 아줌마도 셋, 극 중 인물도 셋이라는 사실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신발 끈을 조이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나는 ’청풍명월‘까지 걸어간다고 대답했다. 걷기에는 너무 먼 길이고, 어두운 밤에다 날씨마저 험악하다면서 만류했지만, 나는 길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날은 항상 우울했다. 그날도 별들이 보이지 않고, 달만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숨기를 반복했다. 비가 곧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한밤중에 깜깜한 산길을 검은색 잠바를 입은 남자가 홀로 걷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기괴하게 보였을 것이다.
산길 중턱을 걷고 있을 때, 수상한 곳을 지나게 되었다. 정체 모를 칠흑의 눈빛이 번뜩이고, 사자의 영혼을 부르는 망자의 속삭임 같은 기이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의 귀가 쫑긋했다.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그 자리가 공동묘지 부근임을 알게 된 나는 진정 내가 피해야 할 것은 귀신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말하는 속물들이며, 그들을 믿는 내 안의 어리석음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청풍명월로 잇는 다리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청풍명월 다리 위를 검은 구름 사이로 반쯤 숨은 달이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한밤중에 비 올듯한 날씨, 홀로 다리에 서 있는 나는 스스로 지옥의 입구에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스로 지옥문을 걸어 들어가는 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다는 말인가?
베케트의 작품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항아리 속에 몸이 갇힌 채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내놓은 채 끊임없이 독백을 이어가는 화자들이 떠올랐다. 내가 항아리 속 화자와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지옥이었구나.“
달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청풍명월의 다리는 내가 선택한 계절, 나의 첫 번째 봄이었다.
21시 02분.
열차는 동해에 도착했다.
젊은 날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곳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생으로 전국을 장돌뱅이처럼 돌았다. 동해에 도착한 당일 저녁에 나는 인근의 망상해수욕장에 텐트를 펼치면서 ‘이게 나의 마지막 텐트’라는 것을 직감했다. 텐트촌에서 밤새 고함치는 젊은이들의 광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새벽녘에 조그만 1인용 텐트에서 쪽잠을 잤다.
다음날 새벽 고요 속, 하얀 파도 소리와 함께 바닷가를 걸었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커피 한잔 들고 바라보는 것은 내게는 분명 사치라는 생각에 미치자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그때 영원한 이방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삶, ‘지구별을 떠돌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해는 점점 올라가고, 나는 장돌뱅이 짐을 챙겨 바다를 떠났다.
그날, 오전 동해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선 마지막 버스가 떠나고 터미널 전등이 소등될 때까지 터미널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한 유일한 일은 지나가는 사람들, 즉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어디라도 갈 곳이 없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냐?“
동해의 버스터미널에서 하루는 내가 선택한 계절, 나의 첫 번째 여름이었다.
비로소 내가 첫 번째 선택한 겨울 가을 봄 여름 순으로 사계절의 여정은 끝이 났다. 지난 몇 달간 머릿속을 먼지처럼 흩날리던 표상들로 인해 내 삶은 엉망이 되었다. 삶이 붕괴되고 내가 쫓기듯 서울을 떠난 것은 바로 지난날의 기억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절실한 것은 기억의 회복이며, 기억은 내 영혼의 생명수가 될 경험이 되어야 한다. 추억을 단순히 추억으로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빠아앙!“
택시 경적 소리에 지난날의 상념이 깨졌다. 택시 기사의 해수욕장 행을 탑승권유를 무시하고, 나는 동해 버스터미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줄근하게 등 뒤로 땀에 절었지만 나는 전혀 무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나를 혼돈에 빠뜨린, 머릿속에서 난무하는 표상들 때문이었다. 그것은 모조리 확신을 재촉하는 표상들이었다.
확신은 맹목적인 광기이다. 양날의 검처럼 언제 내게 칼날을 들이댈지 모를 위험이다. 그동안 그것을 거둘 생각은 없었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확신으로 선악의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기도 했고, 유황불이 불타는 지옥 길을 맨발로 걸어보기도 했다.
인간 마음속 열정, 즉 재산 권력 명예 등에 대한 확신은 모조리 우상이다. 우상은 우리를 초라하고 연약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육체적 욕망과 죄의 동기)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이니라(골로새서 3장 5절).”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 계명이 우상숭배를 경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만든 ‘확신’이라는 우상에 매달리는 순간, 생은 위태롭고 허망하다. 확신은 인간들의 욕망과 불안을 채우기 위해 만든 어리석은 피조물일 뿐이다.
“이제 나는 진짜 어디로 가야 할까?”
[정보철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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