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에서는 이 간극을 해약환급금준비금 탓으로 돌리며 제도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DB손해보험은 지난달 28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컨퍼런스콜에서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문제의 근원은 준비금 제도가 아니라 업계의 과당경쟁이라는 것이다. 반면 한화생명에 이어 현대해상까지, 두 회사 모두 순이익을 내고도 배당가능이익이 사실상 바닥난 처지에서 하루빨리 제도가 풀리기 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엇갈린 행보의 배경에는 지난 6월 말 기준 58조1천억원까지 불어난 전체 보험업계의 해약환급금준비금이 자리한다. 생·손보 주요 10개사 기준으로는 반년 새 9조원 가까이(25.6%) 늘어난 규모다.
DB손보는 지난달 28일 컨퍼런스콜에서 준비금 완화보다 과당경쟁 자제가 먼저라고 못박았다. 남승형 DB손보 경영지원실장(최고재무책임자)은 외형 성장 위주의 경쟁을 계속 좇으면 단기 회계이익은 좋아 보여도 장기적으로 배당 여력이 훼손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했다.
정병록 DB손보 경리파트장은 “IFRS17 도입 전인 2022년만 해도 손보사 10곳의 회계이익과 배당재원이 모두 6조원대로 큰 차이가 없었다”고 구체적인 숫자로 반박했다. 새 회계기준 도입 이후 회계이익은 9조원대로 불어난 반면, 배당재원은 오히려 급감해 지난해 7천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해 10대 손보사의 회계이익과 배당재원 격차는 8조7천억원으로, 2023년(6조5천억원 안팎)보다 대폭 더 벌어졌다.
DB손보는 이 격차의 근본 원인이 준비금이 아니라 신계약 유치를 둘러싼 과당경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10대 손보사의 사업비율은 최근 4년 새 18.8%에서 26.8%로 뛰었고, 유지율 악화로 보험업권 전체 계약서비스마진(CSM)은 5조6천억원 줄었다. 회계이익과 배당재원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준비금이 늘어나는 것이지, 준비금 제도로 인해 그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정 파트장은 강조했다.
이런 설명에는 기술적 근거도 있다. 한 보험계리 전문가는 "준비금에서 미상각신계약비를 뺀 게 해약환급금"이라며 "신계약비를 많이 쓰면 그만큼 해약환급금준비금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DB손보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계리전문가는 "신계약비가 예전엔 7년 상각이었는데 전 기간 상각으로 바뀌면서 비용 부담이 줄어든 게 최근 문제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배당가능이익 마이너스…한화생명·현대해상 '배당 사각지대'
반면 생명보험업계와 일부 손해보험사의 사정은 정반대다. 시가로 평가한 보험부채가 해약환급금과 보증준비금보다 부족할 때 그 차액을 이익잉여금 내 법정준비금으로 쌓아야 하는 구조 탓에, 장부상 순이익을 내고도 배당가능이익이 상쇄되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한화생명과 현대해상은 올 상반기 기준 배당가능이익이 이미 마이너스이거나 사실상 고갈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 6월 말 해약환급금준비금이 7조1천97억원으로, 이익잉여금(7조3천131억원)의 97.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배당을 중단한 뒤 아직 재개하지 못하고 있는 배경이다. 여기에 기본자본 킥스비율까지 58% 수준으로 낮아져, 내년 시행되는 기본자본비율 50% 규제선에 근접했다는 점도 상당한 부담이다.
현대해상 역시 제도 개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나증권은 당국이 준비금 적립비율을 10%포인트만 낮춰줘도 4천500억~5천500억원 규모의 배당가능이익이 곧바로 확보될 것으로 분석했다.
대량해지율 낮추는 근본개선 착수…금감원은 "확정 안 됐다" 선긋기
공은 금융당국으로 넘어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삼성화재·DB손보·현대해상 등 손해보험사와 한화생명·교보생명·신한라이프 등 생명보험사를 불러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고, 이후 8월 28일까지는 생명·손해보험협회를 통한 추가 의견 수렴도 이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보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도 DB손보는 준비금이 배당 제한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원론적 반대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완화 방향에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으로, 현대해상은 한발 더 나아가 손보사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명보험업계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대부분 완화에 찬성하는 분위기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준비금 산출 시 적용하는 대량해지율(가입자들이 한꺼번에 보험을 해지하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비율) 가정을 현행 80~100%에서 보장성 상품 25%, 저축성 상품 35% 안팎으로 낮추는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 초기엔 적자였다가 나중에 흑자로 돌아서는 계약에 대해서는 준비금을 아예 '0'으로 처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당국 관계자는 내년 기본자본비율 규제 도입에 맞춰, 준비금 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작동하도록 이번엔 근본적인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두 차례 완화 조치가 임시방편에 그쳤다는 지적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이런 적극적인 검토 움직임과는 별개로, 일각에서는 금융위원회가 현재의 준비금 제도를 법인보험대리점(GA) 중심의 과당경쟁을 억제하는 안전판으로 본다는 해석도 있다. 자칫 준비금을 섣불리 낮추면 오히려 경쟁이 재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시장의 기대와 당국의 신중론 사이에는 여전히 시각차가 있다.
한화생명·현대해상, 주가 강세…시장은 이미 '수혜주'에 베팅
그러나 시장은 당국의 신중론과 달리, 제도 완화를 이미 기정사실로 보고 움직이는 모습이다. 지난 7월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연 4.394%까지 오르며 2022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갔다. 시중 금리가 오르면 보험사의 운용자산 수익률이 개선되고 보험부채 할인율 부담도 줄어드는 만큼, 한화생명과 현대해상 모두에 우호적인 여건이다.
문제는 이 같은 우호적인 여건만으로 설명이 안 될 만큼 두 회사의 주가 상승폭이 크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13~20일 일주일 사이 한화생명 주가는 9.54% 올랐고, 현대해상은 13.74% 뛰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0.6%에 그쳤다. 이런 강세는 9월 들어서도 이어져, 지난 3일에는 한화생명이 특별한 공시 없이 하루 만에 5%대 급등하기도 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화생명과 현대해상의 전일 코스피 종가는 5천850원과 5만300원으로 52주 최저가(2천930, 2만6천100) 대비 각각 99.7%와 92.7% 상승했다.
손보업종인 현대해상에는 추가 재료도 있다. 자동차보험 경상환자의 장기 치료 심사를 강화하는 '8주룰'이 오는 10일 시행을 앞두고 손해율 개선 기대감을 키운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금리 상승과 8주룰 같은 공통·개별 호재만으로는 두 회사의 상승폭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준비금이 완화될 경우 배당가능이익이 가장 크게 늘어날 두 회사에 기대감이 유독 쏠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한투자증권은 이와 관련해 준비금 완화 시 배당 재개가 가능하며, 재개 시점이 앞당겨질 경우 업종 내 최고 수준의 배당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업계 전반의 실적과 건전성 개선도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탠다. 올 상반기 국내 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9조1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 늘었고, 지난 3월 말 기준 킥스 비율도 216.1%로 전분기보다 3.8%포인트 올랐다.
업계 전체 체력이 좋아지는 국면인 만큼 당국이 제도 완화에 나설 부담도 그만큼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제도 완화가 현실화하면, 배당가능이익 개선 폭이 가장 큰 한화생명과 현대해상의 주가 상승 여력이 한층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배당 당근'에 사업비 관리 병행할 듯…시소게임 이어질 전망
관건은 당국이 배당 빗장을 풀어주는 대신 어떤 안전장치를 함께 내놓을지다. 준비금 부담이 신계약 확대 경쟁과 맞물려 커진 만큼, 대량해지율 가정을 낮추는 방안과 별개로 사업비 지출에 대한 규제도 한층 촘촘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지난 7월부터 GA 소속 설계사에게도 초년도 판매수수료를 월납보험료의 12배로 제한하는 '1200%룰'이 확대 적용되고 있어, 준비금 제도가 실제로 개편될 경우 사업비 집행 전반에 대한 모니터링이 더 강화될 여지가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밸류업이라는 정부 정책 기조 속에 신규 영업을 확대할수록 적립금도 커져 배당이 어려워지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며, 계약자 보호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결국 주주환원 정상화라는 유인과 엄격한 자본·비용 관리라는 부담이 한 세트로 묶여 발표될 것으로 점쳐진다. DB손보의 정면 반박과 한화생명·현대해상의 제도 개선 요구, 시장의 앞선 베팅이 뒤섞인 가운데, 당국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보험업계의 셈법은 당분간 시소게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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