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청호나이스는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청호나이스 관계자는 "매각과 관련해 현재까지 확인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만약 이번 매각설이 현실화된다면, 국내 기업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세금 부담이 야기한 현실적 선택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매각 대상은 청호나이스를 비롯해 마이크로필터, 엠씨엠 등 전 계열사를 포함할 것으로 예상되며, 지분 100% 기준 매각가는 8000억 원 수준으로 거론되고 있다. 양측이 상반기 내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목표로 협상 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고인이 된 정휘동 창업주는 지난해 6월 향년 67세로 별세했다. 회장은 30여 년간 절대적 지배주주로서 청호나이스를 이끌어왔으며, 별세 직전 75.1%의 지분을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이 상속받을 지분에 따른 상속세 규모는 3000억 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된다. 유족들은 연부연납 등 다양한 방안이 검토됐지만 지분 매각을 통한 재원 마련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세 규모가 이처럼 막대한 이유는 한국의 세금 체계에 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실효세율은 60%로, 일본(55%), 프랑스(45%), 미국·영국(40%)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 이러한 세율 구조는 창업주 사망 직후 유족들에게 엄청난 현금 압박을 가하게 된다.
IB 업계 관계자들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우량 중견기업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과거 쓰리쎄븐, 농우바이오, 한샘 등 다수의 기업이 창업주 별세 후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사모펀드 등에 경영권을 매각한 바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후계자 부재와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제3자 매각을 고려하는 중소·중견기업은 약 21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 지형 변화 대응 못해 렌털시장 5위로 추락
청호나이스는 국내 렌털 정수기 시장의 선도 기업이었으나, 최근 시장 지형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사는 1993년 설립되어 2003년 세계 최초로 얼음정수기 '아이스콤보'를 출시하며 업계의 혁신자 역할을 해왔다. 한때 코웨이와 함께 국내 정수기 렌털 시장을 주름잡던 강자였다.
그러나 시장 지형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청호나이스의 위상이 흔들렸다. 2017년 이후 역삼투압(RO) 방식 정수기에 물탱크 위생 논란이 불거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물탱크가 없는 직수형 정수기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청호나이스가 기존 RO 방식을 고수하는 동안 LG전자와 쿠쿠홈시스 등 대기업 경쟁사들이 직수형 제품 개발에 먼저 나섰다.
현재 국내 렌털 정수기 시장의 점유율은 코웨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코웨이는 약 4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LG전자(약 15%), SK매직(약 15%), 쿠쿠홈시스(약 13%), 청호나이스(약 6%)가 뒤를 잇는다. 청호나이스는 한때 10% 내외의 점유율을 자랑했지만 지난 수년간 시장 점유율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칼라일, 얼음정수기 노하우에 관심
미국의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이 청호나이스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이 주목된다.
칼라일은 세계 3대 사모펀드 중 하나로,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경험이 풍부하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칼라일이 청호나이스의 고급 정수 필터 기술과 얼음정수기 노하우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인수가 성사될 경우, 칼라일이 청호나이스의 기술력을 활용해 직수형 정수기 라인업을 강화하고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국내 렌털 시장의 포화 상태를 고려할 때, 미국과 동남아 등 해외 시장 진출은 청호나이스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칼라일은 1995년 미국에서 설립된 후 글로벌 기업 인수와 구조조정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온 펀드다. 한국 기업 투자 사례도 풍부한데, 국내 사모펀드들이 주도적으로 한국 기업 인수에 나서는 것과 달리 글로벌 사모펀드가 직접 한국 기업 경영권을 매입하려는 시도로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2012년 웅진그룹이 경영난으로 코웨이를 매각했을 때 칼라일도 인수 후보로 거론된 바 있으며, 당시 최종적으로 매각을 인수한 것은 MBK파트너스였다.
직원들의 불안감, 노조의 우려
칼라일과의 협상이 진행되면서 청호나이스 조직 내에서 고용 불안감이 대두되고 있다. 회사가 공식적으로 매각 사실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호나이스의 자회사 나이스엔지니어링의 노조인 청호나이스지부는 지난달 청호나이스와 나이스엔지니어링에 각각 '청호나이스 지분 인수 및 투자 협상 관련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는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청호나이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호나이스 지분 매각 과정의 투명한 공개, 노사협의체 구성,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했다. 노조는 대주주 지분이 변경될 경우 사업 방향이 바뀔 수 있으며, 이는 자연스레 나이스엔지니어링의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청호나이스의 경우 2018년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자회사 나이스엔지니어링으로 전환 채용했다. 나이스엔지니어링은 청호나이스 계열사 두 곳이 80%가 넘는 지분을 가지고 있고 청호나이스는 지분 19%만 가지고 있다는 구조 때문에 매각 시 고용 연속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주요 우려다. 노조는 매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고용 승계를 보장하는 조건을 명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번 매각이 현실화되면 청호나이스 경영진과 유족들이 지분 매각을 선택한 배경에는 현실적 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상장 기업이라는 특성상 주식을 현금화하기 어렵고, 연부연납의 경우에도 이자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8000억 원대의 매각가는 현재 청호나이스의 사업 규모와 이익 수준을 감안할 때 현실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청호나이스 관계자는 "매각과 관련해 현재까지 확인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협상 진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투자은행 업계와 증권가의 보도에 따르면 상반기 내 SPA 체결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확정되지 않은 단계다.
청호나이스의 매각이 성사된다면 국내 중견기업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부담이 얼마나 무거운 문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외국 사모펀드의 국내 우량 기업 인수 선례가 되어 향후 비슷한 사건들의 포문을 열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업계는 칼라일 체제 아래서 청호나이스가 얼음정수기의 원조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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