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가 37년간 지킨 경영 철학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의 역사는 무노조 경영의 시금석이다. 1987년 창립 이래 현재까지 한 번도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 대만에서 항공업계를 중심으로 파업과 노조 활동이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도 TSMC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이 남긴 말은 그 신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노조가 생기면 단기적으로는 임금이 조금 오르고 근무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회사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사 분규가 미국 자동차 산업을 몰락시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발언은 그의 경영 철학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TSMC의 실제 경영 모습은 더 흥미롭다. 이 회사는 성과급 규모를 노사 협상이 아닌 이사회 주도로 결정한다. 회사의 실적에 따라 객관적으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TSMC는 1조7200억 대만달러(약 80조4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뒤, 성과급 재원으로 2061억 대만달러(약 8조6800억원)를 책정했다. 직원 1인당 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264만 대만달러(약 1억1000만원)에 이른다. 이는 노조 협상으로 얻기 어려운 수준의 보상이다.
인텔도 60년간 무노조 고수…미국 정부도 설득 실패
미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인텔은 삼성전자처럼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두 수행하는 통합 반도체 기업인데, 약 60년간 무노조 경영을 관철하고 있다.
인텔의 무노조 기조는 미국 정부의 압력까지 견뎌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4년 인텔에 195억달러(약 26조원)의 보조금과 대출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노조 활동 보장의 필요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인텔의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미국통신노동자협회(CWA) 회장 클로드 커밍스는 "인텔과의 초기 논의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공개 언급했다. 기업의 경영 방식이 국가 정책보다 우선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마이크론도 노조 설립 극도로 제한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경우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제한적인 수준의 노조만 운영 중이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최근 마이크론이 공장 건설 분야 노조와 협약을 맺은 사례를 두고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는 드문 경우"라고 평가했다. 이 표현 자체가 반도체 산업의 일반적인 무노조 기조가 얼마나 강한지를 방증한다.
반도체 생산 특수성이 무노조 경영 정당화?
생산 과정에서는 극도의 정밀성이 요구된다. 온도와 습도, 먼지 관리가 공차 1mm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세균까지 차단해야 하는 클린룸 환경이 필수적이다. 반도체는 자동차나 가전처럼 각 공정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제조업과 다르다. 연속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한 번 라인이 멈추면 재가동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파업이나 노조 활동으로 생산 라인이 중단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공정에 투입된 웨이퍼(반도체 원판)와 소재를 모두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손실을 넘어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등 전 산업이 반도체 공급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공장의 가동 중단은 용납될 수 없는 리스크다.
업계는 이런 구조적 특수성을 무노조 경영의 근거로 제시한다. 파업의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다. 성과급과 스톡옵션으로 높은 소득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노조 활동을 원천 차단하는 전략이 여기서 탄생한다.
성과급이 노조의 자리를 대체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기업이 보상 체계에서 노조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TSMC의 사례가 단적이다. 노사 협상 없이 이사회 결정만으로 회사 실적 대비 성과급을 책정하는데, 그 규모가 어느 나라의 단체교섭보다 크다. 이는 오히려 근로자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 기업이 잘되면 빠르게 반영되고, 협상 과정에서의 손실이나 지연이 없기 때문이다.
인텔과 마이크론도 유사한 방식을 운영한다. 스톡옵션을 통해 근로자들을 기업의 주인으로 만들고, 회사 성과와 직결된 인센티브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노조의 '단결'보다 '개인의 성과'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글로벌 기준이 되어가는 무노조 반도체 경영
반도체 산업의 이 같은 경영 전략은 단순한 기업의 선택이 아니다. 산업의 구조적 특수성과 글로벌 경쟁 속에서 만들어진 필연이다. TSMC가 37년간, 인텔이 60년간 이 기조를 유지한 것은 이것이 단기적 유행이 아니라 기업 생존의 조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까지 포함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업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성과급과 스톡옵션이라는 '더 강한' 인센티브로 노조의 자리를 채우는 전략이 점점 더 글로벌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반도체 산업 경영의 '조용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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