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美 정계 네트워크가 힘 발휘
유통 대기업의 회장이 미국 부통령의 직접 초청을 받은 배경에는 정 회장의 독보적인 미국 정계 네트워크가 있다. 정 회장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2019년 설립한 정치 후원단체인 '록브리지 네트워크(Rockbridge Network)'의 아시아 총괄회장을 맡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참여하는 이 조직은 한국 본부를 중심으로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지역으로의 글로벌 확장을 추진 중이다.
정 회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트럼프평화연구소에서 열린 '파운드리 스쿨(Foundry School)' 출범식에 참석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행사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 발표가 아니었다.
파운드리 스쿨은 미 국무부와 스탠퍼드대학교가 설계한 인재 양성 프로젝트지만, 그 근저에는 미국의 거대한 경제안보 구상이 깔려 있다. 2025년 12월 미국이 출범시킨 '팍스 실리카(Pax Silica)'라는 경제안보 협의체가 바로 그것이다. 반도체, AI, 첨단 제조, 에너지, 핵심광물 등 기술 생태계 전반을 미국과 우방국 중심으로 구축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싱가포르, 네덜란드, 영국, 이스라엘, UAE 등이 참여 중이다.
파운드리 스쿨은 이 구상을 실제 산업 현장으로 연결하기 위한 첫 번째 실행 과제였다. 제조업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활동할 기업가와 엔지니어 양성을 명목으로, 정부와 대학, 기업이 연계한 인력·기술·산업 기반을 함께 묶겠다는 취지다.
미국 AI 공급망 동맹 핵심 파트너로
행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신세계와 미국 AI 기업 리플렉션AI의 협력이었다. 양사는 지난 3월 한국 내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현재 합작법인 설립과 사업 부지 검토 단계를 진행 중이다.
주목할 점은 이 프로젝트가 미 상무부의 'AI 수출 프로그램'에 공식 편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뢰할 만한 AI의 글로벌 확산'을 내건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사업이 바로 신세계의 250MW급 소버린 AI 팩토리였다. 신세계가 추진하는 데이터센터가 그룹 차원의 신사업을 넘어 미국의 글로벌 AI 인프라 확대 정책과 직접 연결된 것이다.
리플렉션AI는 구글 딥마인드 출신 연구자들이 2024년 초 설립한 글로벌 탑티어 AI 스타트업이다. 미샤 라스킨 CEO와 이오아니스 안토노글루 CTO는 각각 딥마인드의 제미나이 프로젝트 핵심 연구자와 알파고 공동 개발자로 알려져 있다. 2025년 10월 엔비디아 주도의 투자 라운드에서 80억 달러(약 11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으며, 2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번 행사에서 리플렉션AI의 라스킨 CEO는 정 회장을 직접 언급하며 "굳건한 한미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과 동맹국이 실제로 어떻게 함께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제이콥 헬버그 미 국무부 경제 담당 차관도 같은 맥락에서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미 협력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AI 공급망 동맹의 든든한 동반자"라고 평가했다.
AI 인프라로 확장되는 유통기업 포트폴리오
이번 행사 참석은 신세계의 사업 구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 회장은 밴스 부통령, 루비오 국무장관, 미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스티브 스컬리스와 차례로 만났다. 산업계에서 참석한 메타 사장 디나 파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CEO 산제이 메흐로트라,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CEO 개리 디커슨 등과도 의견을 나눴다. 고위 정부 인사와 글로벌 반도체·AI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들과 직접 소통한 것이다.
정 회장은 행사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공급망 동맹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시대의 과업"이라며 "한국과 미국이 힘을 합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로 대표되는 첨단 산업이 발전하려면 우수한 인재는 필수"라면서 "신세계그룹도 쉼없는 창조적 혁신을 통해 인재를 모으고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인 유통 기업으로 출발한 신세계가 AI 인프라 사업 추진사로서 미국 정부의 공식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국내 대기업 중 유통을 주력으로 하면서 AI 인프라 시장에 직접 진입하는 사례는 드물다.
파트너십이 사업성과로 연결될지 관심
하지만 현 단계는 전략적 파트너십 수준이다. 실제 데이터센터 건설과 운영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합작법인 설립과 부지 선정 등 구체적인 사업 진행 과정이 앞에 남아 있다.
미국이 동맹국을 중심으로 AI 공급망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신세계가 확보한 파트너십을 실제 사업 성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정용진 회장의 워싱턴DC 방문이 신세계의 사업 전환점이 되려면, 미국 정부의 공식 무대에서의 인정이 현장의 사업 진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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