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리셉션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한미 우호증진 기여 공로 상 받아
황 CEO는 뉴욕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연례 만찬에서 수여하는 밴 플리트상을 받는다. 1995년 제정된 이 상은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참전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따왔다. 지미 카터,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장인화 포스코 회장, 방탄소년단 같은 저명인사들이 수상했을 정도로 한미 협력의 상징성이 크다.
황 CEO의 수상 배경은 엔비디아가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에서 가진 위상을 잘 보여준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 설계의 선도자이면서 동시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두 한국 반도체 기업이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에 탑재될 메모리 공급을 놓고 경쟁하는 가운데, 황 CEO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미국 선밸리 컨퍼런스에 참석해 글로벌 빅테크 경영진들과의 접점을 넓혔다. 이번 뉴욕 방문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이 회장의 부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도 2006년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 참석의 의미는 단순 축사를 넘어 한미 경제 동맹의 지속성을 확인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최 회장 역시 같은 맥락에서 참석을 결정했다. SK그룹도 부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 회장 본인이 나란히 밴 플리트상을 수상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미 우호 증진에 기여한다는 상의 의의와, 엔비디아와의 협력 강화라는 전략적 필요성이 맞닿은 것이다.
AI 메모리 경쟁, 뉴욕 회동이 전환점이 될까
두 총수가 황 CEO와 만나는 진정한 의도는 축하에 있지 않다. 지난 6월 황 CEO의 방한 당시 두 기업은 AI 메모리와 피지컬 AI, 로봇 등 새로운 사업 협력 확대에 대한 의향을 이미 나눴다. 이번 뉴욕 회동은 그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특히 엔비디아가 조만간 출시할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탑재될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논의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HBM4는 차세대 AI 칩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이다. AI 학습과 추론 속도는 메모리의 대역폭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4 공급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빅테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D램 생산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6년 2분기 현황을 보면 시장 점유율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3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1위 SK하이닉스의 50%와는 여전히 격차가 있지만, 전 분기 대비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다. 이는 삼성이 HBM4 공급에 본격 진출하면서 시장을 재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미 협력에서 비즈니스 경쟁으로
황 CEO의 뉴욕 수상과 두 한국 총수의 참석은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한편으로는 한미 우호 증진과 경제 동맹이 강조되는 무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HBM 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의 무대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라는 공동의 고객 앞에서 협력의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경쟁자다. 지난 수년간 AI 메모리 시장이 성장하면서 이러한 긴장 관계는 더욱 심화되었다. 두 회사 모두 엔비디아의 신뢰를 얻기 위해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번 뉴욕 방문이 단순한 축하 행사에 그치지 않고, 메모리 공급의 미래를 결정짓는 전략 회동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미 우호라는 외교적 레토릭 뒤에는 AI 시대 반도체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현실적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28일 뉴욕의 밀담이 향후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구도를 어떻게 재편할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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