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9.15(화)

추석 선물, 현금으로 준비한 재계

현대차·삼성·포스코·CJ·LG, 협력사에 5조원대 조기 지급

안재후 CP

2026-09-15 14:16:19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현대차, 삼성, 포스코, CJ, LG 같은 대기업들이 협력사의 자금난을 해소하는 데 5조원대를 투입한다. 상품 구매와 현금 선물이 아닌, 예정된 납품대금을 먼저 지급하는 방식이다. 명절을 기다리는 중소 협력사들의 자금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다. 동시에 이 자금이 내수 시장으로 흐르면서 지역경제까지 살리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지원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삼성, 1조3000억원 규모로 선제 지급
삼성그룹은 움직임이 가장 먼저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 13개 계열사가 손을 모아 1조3000억원 규모의 물품 대금을 기존보다 약 7일 앞당겨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추석보다 지원 규모를 1100억원 늘린 것으로, 협력사 지원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납품대금 조기 지급을 보완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장터도 준비 중이다.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추석 맞이 온라인 장터에는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 31곳이 참여해 한우세트와 과일 등 53개 상품을 판매한다. 삼성 임직원들은 매년 설과 추석 명절 기간마다 약 30억원 규모의 물품을 온라인 장터에서 구매하고 있다.

현대차, 협력망 전체로 자금 흐름 확산
현대차그룹은 규모에서 삼성을 능가한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건설,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등 12개 계열사가 6천여 개 협력사를 대상으로 2조2562억원의 납품대금을 최대 23일 앞당겨 지급한다.

주목할 점은 상생의 구조를 설계한 방식이다. 현대차그룹은 1차 협력사에 조기 지급하면서 동시에 2·3차 협력사에도 대금을 조기 지급하도록 권고한다. 대기업에서 출발한 자금이 협력망 전체로 퍼지도록 한 것이다. 명절을 앞둔 중소 협력사들의 자금 부담을 고리 단위가 아닌 전반적으로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도 각각 2조228억원, 2조768억원을 조기 지급한 현대차그룹의 실행 기록은 이번 약속의 가중치를 높여준다.

협력사 지원 외에도 지역사회 상생에 눈을 돌렸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호계시장에서 장보기 행사를 열고 구매한 물품을 저소득 가정과 복지시설에 전달한다. 현대오토에버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가 과일을 수매해 과일칩 4만봉 이상으로 가공한 뒤 취약계층 약 6600가구에 나눈다. 현대위아는 농어촌상생기금을 활용해 '이음마켓'이라는 농산물 직거래 시장을 열고 구매한 물품을 기부한다.

LG, 금융 지원까지 가세
LG는 현금 지급과 금융 지원을 함께 추진한다. LG전자, LG이노텍,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등 8개 계열사가 납품대금 6000억원을 최대 13일 앞당겨 지급한다. 규모로는 삼성과 현대차에 못 미치지만, 협력사의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추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LG는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와 직접 대출 등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와 맺은 상생협약에 따라 동반성장펀드 운용 금액의 10% 이상을 2차 이하 협력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의 범위를 하위 협력사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다.

포스코, 20년 이상 현금 지급 전통 계승
포스코그룹은 거래 대금 조기 지급의 선구자다. 포스코와 포스코플로우, 포스코이앤씨, 포스코퓨처엠, 포스코DX 등 5개사가 총 4368억원 규모의 거래 대금을 최대 13일 앞당겨 지급한다. 포스코와 포스코플로우가 3660억원, 포스코이앤씨가 448억원, 포스코퓨처엠과 포스코DX가 각각 약 130억원을 오는 16일부터 23일 사이에 현금으로 일괄 지급한다.

포스코의 현금 지급 관행은 오래된 전통이다. 포스코는 2004년 12월부터 중소기업 납품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해왔으며, 2017년 11월부터는 중견기업에도 전액 현금 지급을 확대했다. 이를 통해 현금 결제 혜택이 2·3차 거래사까지 자연스럽게 퍼질 수 있도록 구조화했다. 포스코플로우는 출범 직후인 2022년부터 중소 협력사 거래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포스코이앤씨도 2010년부터 중소 협력사에 대해 같은 원칙을 지키고 있다.

포스코는 추석을 맞아 주요 사업장 지역의 취약계층을 돕는 상생 활동도 펼친다. 포항제철소는 부서별로 전통시장 장보기에 나서고, 소장단이 '송도 나눔의 집'을 방문해 배식 봉사를 진행한다. 광양제철소는 전통시장 방문, 지역 장애인 생필품 키트 나눔, 광양만 해양 생태계 정화 활동을 추진한다. 포스코이앤씨 임직원들은 직접 만든 만두를 인천 지역 결식가정 200세대에 전달하고, 포스코퓨처엠은 해양 쓰레기 수거, 무료급식소 배식 지원, 장애인 생활시설 환경정화 등 지역 맞춤형 봉사활동을 전국 사업장에서 진행한다.

CJ, 지원 규모 2배 이상 확대
CJ그룹은 상생의 폭을 가장 크게 넓혔다. CJ제일제당, CJ올리브영, CJ대한통운, CJ ENM 커머스부문, CJ프레시웨이, CJ올리브네트웍스 등 6개 주요 계열사가 총 6600억원 규모의 결제 대금을 조기 지급한다. 혜택을 받는 중소 납품업체는 7400여 곳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지원 규모의 급증이다. 이번 추석 조기 지급 규모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대금은 오는 18일부터 추석 연휴 전까지 각 사별로 지급되며, 기존 지급일보다 평균 2주에서 한 달가량 선 지급된다. CJ는 "협력업체와의 상생 차원에서 매년 추석 납품 결제 대금을 조기 지급하고 있다"며 "명절을 앞두고 중소 협력사들에 일시적으로 가중되는 자금 부담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SK와 한화, 상시화 추세로 확대
명절 때만 지원하는 일회성 대금 지급의 한계를 넘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SK그룹은 명절을 앞둔 일시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상시적인 조기 대금 지급 제도를 운영한다. SK하이닉스는 거래대금 지급 횟수를 월 4회로 늘렸고, SK텔레콤은 대금 지급 승인일로부터 2일 이내 100% 현금 지급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한화도 추석을 앞두고 협력사 납품대금 조기 지급을 준비하고 있다. 상시 제도화 추세가 전 업계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자금 흐름, 순환 구조를 만들다
현대차 2조2562억원, 삼성 1조3000억원, 포스코 4368억원, CJ 6600억원, LG 6000억원. 5개 그룹이 조율한 5조원대 규모의 조기 지급은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선다. 업계 관계자는 이를 "명절을 앞두고 자금 수요가 늘어나는 협력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금의 흐름이다. 대기업에서 협력사로 지급되는 현금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협력사는 이 자금으로 2·3차 협력사에 대금을 지급하고, 임직원들의 명절 지출로 이어진다. 전통시장 장보기, 지역 농산물 구매, 취약계층 지원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포스코의 20년 이상 지속된 현금 지급 전통과 CJ의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지원 규모는 상생 경영이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계의 이번 결정이 내수 시장의 선순환으로 어떻게 작동할지, 명절 이후의 경제 지표가 주목되는 이유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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