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은 홈플러스 법인을 상대로도 부여되지만 신영증권이 유동화 상품 판매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도 부여돼 전단채 발행의 기반으로 활용된다. 한기평은 오전 중 SPC에 ‘A3′의 신용등급을 매겨 전단채 820억원어치를 발행할 수 있도록 했는데, 같은 날 오후 홈플러스 법인의 등급은 ‘A3-’로 한 단계 내리겠다고 통보한 것이 확인됐다. 한기평은 기업과 SPC에 대한 신용등급 부여는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신평사가 혼란을 오히려 키운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기평은 지난 2월 25일 오후 3시 30분쯤 홈플러스의 단기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하락할 것이라는 정기평정결과를 회사에 통보했다.
그런데 한기평은 이에 앞서 같은 날 오전 신영증권이 전단채 발행을 위해 설립한 SPC의 신용등급을 기존의 A3으로 유지했다. 신영증권은 그동안 SPC를 통해 홈플러스의 카드대금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ABSTB를 발행해 증권사와 투자자들에게 판매해왔다. 즉 홈플러스가 거래처에서 상품을 구입하면 카드사가 구매대금을 정산한 뒤 신영증권의 SPC에 카드대금 채권을 넘기고, SPC가 이를 넘겨 받아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유동화 증권을 발행·판매하는 구조다.
그 중 3000억원은 소매 판매 창구를 통해 개인과 기관 투자자들에게 판매됐는데, 신영증권은 이를 두고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알고도 전단채 발행을 묵인한 뒤 기습적으로 기업 회생을 신청했다”면서 홈플러스를 고소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신영증권이 2월 25일 오전 SPC의 신용등급이 변경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820억원어치 전단채는 발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SPC가 전단채를 발행하기 위해 신용등급을 받아야 하는 경우엔 일반적으로 하루이틀 전 미리 신평사에 요청한다. ‘몇 월 며칠에 전단채를 발행할 예정이니 등급을 달라’는 식이다. 신영증권도 전단채 발행 하루이틀 전인 23~24일쯤 한기평에 이 같은 요청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기평은 25일 오전 신영증권 SPC에 A3 등급을 부여했는데, 이는 같은 날 오후 홈플러스 법인의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그 날 오후 신용평가위원회가 열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텐데, 정말 홈플러스 법인 신용등급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SPC의 신용등급 부여도 미루는 게 정상적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기평 측은 이에 대해 반박하고 나섰다. 우선 홈플러스 법인의 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SPC의 신용등급을 조정할 수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인 신용등급이 조정되면 이를 기반으로 SPC 신용등급을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신용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이 있으니 (전단채) 발행을 미루라는 권고 등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홈플러스와 신영증권이 소통했어야 할 일”이라고 일축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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